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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정석] '아날로그 음악의 반격' 나는 LP 만드는 하종욱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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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일 하십니까?"
뻔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열에 여덟아홉은 "그야 물론 돈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말 우리는 밥벌이 때문에 일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이웃들을 찾아가 직접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구두닦이·사육사·버스기사…. 평범한 우리 이웃 14명의 입을 통해 우리가 진짜 일하는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직업의 정석:당신은 왜 일하는가' 열한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번 주인공은 마장뮤직앤픽처스 대표 하종욱(47) 씨입니다./ 특별취재팀


하종욱(사진) 마장뮤직 대표는 달변가다. 음악평론가에서 시작해 기자ㆍ음악감독ㆍ음반 기획자로 지낸 시간들이 그의 말 속에 묻어난다. 우상조 기자

하종욱(사진) 마장뮤직 대표는 달변가다. 음악평론가에서 시작해 기자ㆍ음악감독ㆍ음반 기획자로 지낸 시간들이 그의 말 속에 묻어난다. 우상조 기자


소리의 기억
아무리 애를 써도 아버지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다.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얄궂게도 아버지가 즐겨 듣던 음악은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참 신기한 일이다.
대구 고향 집 거실을 꽉 채우던 소리. 어린 시절 하종욱(47) 마장뮤직앤픽처스 대표 머리에 각인된 그 소리가 무엇인지는 머리가 굵어진 뒤에야 알았다. ‘첼로의 거장’ 파블로 카잘스의 연주였다. 아버지의 유품인 레코드(LP)판에서 흘러나왔던 그 깊고 묵직한 소리. 몇 번의 이사 끝에 아버지의 LP들은 사라졌지만, 그는 지금도 카잘스의 첼로 소리로 아버지를 기억한다.
그리고 40여년이 흐른 지금. 그는 사라졌던 LP 공장을 십수 년 만에 되살려 ‘아버지 소리’를 찍고 있다.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달변가인 하종욱(사진) 대표도 밝히고 싶지 않은 것들이 몇개 있었다. 대학생 때 학사경고를 받던 시절의 방황과 좌절, 그리고 그를 마장뮤직으로 이끈 설립자 대기업 CEO(최고경영자)의 이름이다. 그의 꿈인 '판가게'가 이뤄질 때쯤엔 술술 말해주지 않을까. 우상조 기자

달변가인 하종욱(사진) 대표도 밝히고 싶지 않은 것들이 몇개 있었다. 대학생 때 학사경고를 받던 시절의 방황과 좌절, 그리고 그를 마장뮤직으로 이끈 설립자 대기업 CEO(최고경영자)의 이름이다. 그의 꿈인 '판가게'가 이뤄질 때쯤엔 술술 말해주지 않을까. 우상조 기자

소년 하종욱은 이글스(Eagles)의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를 들으며 자랐다. 중학생 땐 누나가 보던 음악잡지 ‘월간 팝송’을 뒤적였고, 고등학생이 되어선 음악평론가 전영혁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며 야간자율 학습을 했다. 음악은 듣고 싶은데 돈이 없었다. 그는 어머니 눈을 피해 몰래 ‘수학의 정석’이나 ‘맨투맨’과 같은 참고서를 헌책방에 내다팔았다. 그렇게 구한 돈으로 그는 영국 록그룹의 전설로 불리는 레드재플린,에릭클랩튼 음반을 사들였다. 그만큼 음악이 좋았다.

복학생 하종욱 분투기
대학 진학과 함께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갖게 된 방 한 칸. 아르바이트를 해서 처음 '전축'을 샀다. 학교 앞 거리에서 최루탄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그의 친구들은 민주주의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학생회를 함께 하는 친구들로부터 ‘팝음악을 듣는 것은 미국의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쁘띠부르주아나 하는 일’이란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음악을 끊을 수는 없었다. 친구들의 눈을 피해 몰래몰래 록밴드 도어즈, 롤링스톤스의 음악을 들었다.
1996년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며 본격적인 ‘수집가’의 길에 들어섰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밑천 삼았다. 밥 먹는 것, 옷 사는 것보다 음반 수집이 더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클래식-재즈 잡지인 ‘레코드포럼’에 신인평론가를 뽑는다는 공고가 떴다. 부상이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 음반세트였다. 당시 돈으로 20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음반이었다. 하종욱은 순전히 부상이 탐나서 공모전에 참가했다. 신춘문예 도전하듯 진지하게, 난생처음 작심하고 글을 썼고, 당선이 됐다. 학사경고만 4번 받았던 복학생 하종욱의 인생은 그때부터 달라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100m를 뛰듯 마라톤을 한 셈이다. 그러다 일 때문에 방문했던 독일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독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녹음을 하지 않을 땐 악보 밑에 깔아둔 책을 집어 들었고, 텃밭에서 키운 야채들로 도시락을 꾸려왔다. 음악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진짜 좋아하는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디지털 음원에 자리를 빼앗긴 아날로그 음악을 되살리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우상조 기자

대학을 졸업하고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100m를 뛰듯 마라톤을 한 셈이다. 그러다 일 때문에 방문했던 독일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독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녹음을 하지 않을 땐 악보 밑에 깔아둔 책을 집어 들었고, 텃밭에서 키운 야채들로 도시락을 꾸려왔다. 음악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진짜 좋아하는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디지털 음원에 자리를 빼앗긴 아날로그 음악을 되살리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우상조 기자

기자, 방송작가, 기획자, 감독… 나를 부르는 수많은 단어
대학 졸업을 앞두고 대기업에 입사지원서를 냈다. 어떻게든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지만, 고향에 계신 어머니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었던 때문이다. 운 좋게 합격통보를 받았는데, 신입사원 소집을 하루 앞두고 전화가 걸려왔다. 그가 글을 쓰고 있던 클래식 재즈잡지 ‘레코드 포럼’의 대표였다. “하종욱씨 기자해 봅시다.”
전화를 끊고 고민에 빠졌다.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넥타이 매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살 것인가. 하종욱은 대기업보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다. 고향에 계신 홀어머니의 실망한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한번 사는 인생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바이닐팩토리의 심장. LP판의 원료인 검은색 폴리염화비닐(PVC) 덩어리는 이 틀에서 '음악의 골'을 새긴 음반으로 태어난다. 우상조 기자

바이닐팩토리의 심장. LP판의 원료인 검은색 폴리염화비닐(PVC) 덩어리는 이 틀에서 '음악의 골'을 새긴 음반으로 태어난다. 우상조 기자

20년의 질주, 그리고 바이닐팩토리
1997년 ‘레코드 포럼’ 기자로 시작한 사회생활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음악평론을 하는 인력이 많지 않았던 터라 다양한 제안을 받았어요. 느닷없이 일감들이 주어지기 시작했죠.”
색소폰 연주자인 이정식의 앨범 ‘화두’를 제작해달라는 의뢰가 시작이었다. ‘앨범 제작을 맡기로 했던 사람이 갑작스레 빠졌으니 대신 앨범 제작과 프로듀싱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1999년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회사를 나왔다. 난생 처음 무턱대고 음반 제작과 공연 연출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월간 ‘객석’에 ‘재즈의 영웅들’이라는 그의 고정 코너가 생겼고, EBS ‘스페이스 공감’의 음악감독까지 맡게 됐다. 일이 몰아쳤다.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로 꼽히는 가수 한대수의 앨범을 마무리 하느라 신혼여행마저 포기했다.
“2001년 성당에서 결혼식을 정신 없이 올리고 그냥 원래 살던 집으로 아내와 함께 들어가 살았어요. 일거리를 거절하는 것이 결례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하루 하루를 숨가쁘게 살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그땐 무모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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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음원으로 음악을 들어버릇한 요즘 아이들은 이 LP판을 보면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레코드판의 가는 선에 음악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하종욱 대표의 일이다. 우상조 기자

디지털 음원으로 음악을 들어버릇한 요즘 아이들은 이 LP판을 보면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레코드판의 가는 선에 음악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하종욱 대표의 일이다. 우상조 기자



마장뮤직과 레코드공장
 마장뮤직과의 인연은 2010년 시작됐다. 마장뮤직의 전신은 마장스튜디오다. 1968년 세워진 마장스튜디오는 가수 조용필과 나훈아, 산울림 등의 작품을 녹음했던 곳이다. 2010년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인수하며 지금 이름으로 바뀌었다. 2001년부터 알고 지내던 '음악 친구'였다. 그 무렵이었다. 마장뮤직에서 하종욱에게 "LP 공장을 짓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처음엔 안 된다고 했어요. 돈이 안되는 일이고, 성공 못한다고요. 국내에 남아있던 마지막 LP 공장이 문 닫은 게 2004년 일이예요. 그 정도로 LP는 소비자들에게 잊혀진 것이었어요.”
하지만 2014년 6월 그는 마음을 바꿔먹었다. 사람들이 LP의 기억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2011년만 해도 1년 동안 팔린 LP는 고작 1만여 장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만에 판매량이 20만장 대로 뛰었다.

‘새로운 가능성’을 엿본 그는 서울 성수동 공장지역 한 복판에 ‘바이닐 팩토리’를 세우는 일에 합류하기로 했다.국내 유일의 LP 공장이었다. 바이닐(vinyl)은 LP의 원재료인 폴리염화비닐(PVC)을 가리키는 단어로, 외국에선 LP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그는 마장뮤직의 월급쟁이 대표이사가 됐다.
하지만 LP공장을 다시 돌리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공장의 핵심은 기계인데, 기계가 낡아 양질의 생산품이 나오질 않았다. 거기다 외국산이라 부품 구하기도 힘들었다. 하종욱은 알음알음 전문가를 영입해 기계를 직접 만들었다. 그렇게 수십 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정비한 뒤, 음악의 생명인 음질 테스트에만 3만장의 판을 썼다. 그리고 지난 6월 영업을 개시했다.

마장뮤직의 성수동 공장 '바이닐 팩토리'엔 4명의 직원이 있다. 이들의 손에서 아날로그 음악이 탄생한다. 우상조 기자

마장뮤직의 성수동 공장 '바이닐 팩토리'엔 4명의 직원이 있다. 이들의 손에서 아날로그 음악이 탄생한다. 우상조 기자

찰나의 감동, 아날로그의 매력
“사람들이 물어요. 왜 다시 LP공장을 열었냐고요. 시대역행적이라는 이야기죠. 저는 음악감상이라는 ‘행위’를 알리고 싶어서 이 일을 선택했어요. 오랜 시간동안 ‘음악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요. 스마트폰을 터치해서 음악을 듣는다는 거, 재미없잖아요.”
하종욱에게 음악은 추억이고 기억이다. 친구와 이어폰 한쪽씩 나눠끼고 들었던 노래, 힘들었던 순간 나를 위로해준 곡들은 모두 시간·공간·사람을 담고 있다. 요즘 음악은 그게 아니란 얘기다.
“턴테이블에 LP를 올려놓으면 ‘지지직’하는 소리가 들리잖아요? 불과 4~5초도 안되는 그 순간의 설레임까지도 포함해야 진짜 음악감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누가 언제 연주한 건지도 모르고 음악을 들어요. 음악이 그저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streaming) 것이 됐죠. 저는 그런 방식의 음악감상을 보면, 한 권의 책이 낱장으로 뜯어져서 소비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본래의 음악감상이란 행위를 복원하는 일, 아날로그의 반격을 도모하는 것이 제 일이에요.”

하종욱은 "기술 덕에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음악감상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사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고 했다.
“오디오로 음악을 들었을 때를 상상해보세요. 볼륨 조절을 할 때 다이얼로 ‘4와 5 사이’의 볼륨을 선택할 수 있었어요. 미세한 조절이 가능하니까요. 예를 들어 카라얀의 음악을 선택하고, 내 귀에 가장 듣기 좋은 소리 크기를 선택하면 나만의 음악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스마트폰에는 그런 차별성이 없어요. 버튼으로 일률적으로 소리 크기를 정하니까요. ‘소비자들에게 좋은 음악이 지닌 힘을 유포하자’ 그런 생각으로 공장을 차렸어요. 좋은 음악을 널리 알리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제 소명이에요.”

특별취재팀=김현예·정선언·정원엽 기자, 사진 우상조 기자, 디자인 김은교, 영상 조수진,개발 전기환·원나연 hykim@joongang.co.kr

갓 만들어진 레코드판을 들고 있는 하종욱(왼쪽) 대표와 LP판 생산을 지휘하고 있는 백희성(오른쪽) 엔지니어. 우상조 기자

갓 만들어진 레코드판을 들고 있는 하종욱(왼쪽) 대표와 LP판 생산을 지휘하고 있는 백희성(오른쪽) 엔지니어. 우상조 기자

나는 왜 일하는가

 하종욱 대표가 공장 한켠 사무실에 놓인 오디오 전원을 켰다. 귀를 꽉 채우는 풍성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요한나 마르치가 연주한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였다. 1955년에 발매된 음반으로 원판은 1000만원도 넘는 고가에 거래된다. 전세계 수집가들이 찾는 음반 중 하나인데, 마장뮤직이 판권을 사서 '바이닐 팩토리'에서 새로 찍고 있다고 했다.
왜 일하는가란 질문을 던지자 그가 이렇게 답했다.

확인하고 싶어서 일을 하는 것 같아요. 나의 노력과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어딘가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받기 위해서요. 거창하게 말하면 내 한계와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다는 욕구도 있어요.

요즘 회사 직원들과 함께 꾸고 있는 꿈이 있어요. ‘판가게’를 차리는 거에요. 지금 우리 시대의 대세는 디지털이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속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소통하는 곳을 만들고 싶어요. 상상만해도 행복해요. 예컨대 이층 가게를 차려 빵을 팔고, 술도 마시고, 회식도 하는 상상이요. 기약 없는 약속이기도 하고 몽상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다 함께 아날로그적인 삶을 상상하는 것이 새로운 출발이 되리라고 생각해요.

서울 한복판에 남아있는 유일한 공장지대인 성수동. 그 골목에 마장뮤직의 LP공장인 '바이닐 팩토리'가 있다. 공장 한 귀퉁이 사무실에서하종욱(사진) 마장뮤직 대표가자신이 제작한 음반을 들어보이고 있다. 우상조 기자

서울 한복판에 남아있는 유일한 공장지대인 성수동. 그 골목에 마장뮤직의 LP공장인 '바이닐 팩토리'가 있다. 공장 한 귀퉁이 사무실에서하종욱(사진) 마장뮤직 대표가자신이 제작한 음반을 들어보이고 있다. 우상조 기자

[책소개]아날로그의 반격으로 본 LP산업

캐나다의 논픽션 작가인 데이비드 색스는 LP판이 우리 곁에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해『아날로그의 반격』을 묶어냈다. 얇고 검은 폴리염화비닐(PVC) 판에 소릿골을 새겨 넣어 만드는 LP판을 알고 있는 요즘 세대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하지만 책에 따르면 사망선고를 받았던 LP 산업에 심폐소생술을 한 주역은 의외로 디지털 세대였다.

나이 든 소비자가 디지털 CD를 구울 수 있게 되고 아이팟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레코드판에 대한 향수 어린 관심이 시들해지는 바로 그 시점에 손자 세대가 LP에 빠져들기 시작했다.(『아날로그의 반격』중에서 일부 발췌)

'아날로그의 반격' 표지

'아날로그의 반격' 표지

턴테이블을 만져보거나, 그 위에 LP를 올려놓아본 경험이 없는 디지털 세대가 '색다른'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CD에 비해 값이 비쌌지만 소비자들은 과감히 지갑을 열었다. 데이비드 색스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싱글 앨범 하나가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려면 12만7000장이 판매돼야 하는 디지털 다운로드와 비교해 보라. "CD는 평균 도매가가 6달러에요. 아이튠즈에서는 심지어 60센트에도 살 수 있지요 하지만 LP의 도매가는 10~12달러로도 올릴 수 있어요. 다른 모델에 비해 상당히 수익성이 높은 겁니다."'(『아날로그의 반격』중에서 일부 발췌)

작가는 디지털 혁신의 중심지인 실리콘 밸리에서 '몰스킨 수첩'이 유행하고,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오프라인 서점이 다시 등장하는 이유로 '경험'을 꼽는다. 디지털로 포장된 가상의 것들이 많아질 수록 우리가 손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주는 기쁨이 특별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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