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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고강도 규제에 고민 깊은 다주택자] 임대사업 등록하면 양도세 줄지만 준조세 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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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갭투자 막고 임대시장 안정 도모 … 주택 수, 보유 기간 고려해 선택해야

정부가 다주택자를 압박하고 있다. 집을 팔든지, 임대사업용 주택으로 등록하라는 주문이다. 8·2 부동산 대책은 그 일환이었다. 집을 여러 채 갖고 있으면서도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으면 투기꾼으로 보고 각종 제재를 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시한은 내년 4월까지다. 내년 4월 이후 다주택자가 집을 팔면 최고 60%의 양도소득세율을 적용한다. 주택을 정리하거나 임대사업용 주택으로 등록하지 않으면 보유세를 인상할 수도 있다는 시그널까지 주고 있다.

여당의 제2정책조정위원장인 박광온 의원은 8월 18일 라디오에 출연해 “다주택자는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적절한 규제를 받고 세금을 내야 한다”며 “이것이 안 됐을 때의 다음 단계가 보유세를 많이 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어 “내년 4월까지 시간을 줬는데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지 않는다면 임대소득을 탈루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가 다주택자에게 집을 팔거나 임대사업자 등록을 압박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이른바 ‘갭투자’를 통해 시세차익을 얻으려는 다주택자가 주택시장 과열의 원인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갭투자는 높은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을 이용해 적은 돈으로 집을 산 후 집값이 오르면 이를 되팔아 시세차익을 남기는 방식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갭투자는 집을 거주 공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투기 수단으로 보는 신종 수법”이라고 규정했다.

두 번째 이유는 임대시장 안정이다. 다주택자가 보유한 주택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면 임대주택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임대주택을 늘리는 게 서민 주거 안정에 실질적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 계약갱신청구권이나 전월세 상한제로 가기 위해선 주택가격, 경과연수, 규모 등 실제 임대료를 체계적으로 파악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반드시 다주택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월세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택 임대료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취득세·재산세 등 감면

그런데 정부는 무조건 임대사업자 등록을 압박하는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당근책도 마련해 놓고 있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취득세와 재산세 등 지방세 감면 혜택을 준다. 또 소득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일정 기간 장기 임대하면 양도세 감면과 종합부동산세 비과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다주택자는 많지 않은 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 등록된 민간 임대사업자 수는 13만8000명으로 이들이 임대주택용으로 등록한 주택은 68만224가구다. 이는 전·월세 세입자가 살고 있는 민간임대주택 전체 가구 수 642만 가구(2015년 말 기준)의 10%가 조금 넘는 수치다.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 등록을 꺼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업자 등록을 하면 세원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임대 소득세를 탈루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건강보험료·국민연금 등의 준조세 부담이 확 늘어난다. 실제 다주택자로 임대소득이 연 1500만원 정도인 사람은 지금보다 건강보험료 부담액이 66% 늘어 난다. 건보료가 연간 최대 228만원(내년 7월 이후 309만7000원)까지 부과될 수 있다.

피부양자(직장이 없는 사람)가 사업자 등록을 내 독립된 세대주로 나오게 되면 내지 않던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을 내야 하는데, 이 역시 부담이 만만찮다. 은퇴한 A씨가 아파트 두 채를 임대주택용으로 등록한다고 가정해보자. 아파트 두 채의 과세표준액이 9억원이라면 보유자산에서 발생하는 월 건강보험료만 17만4000원이다. 여기에 아파트 한 채에서 임대소득이 월 250만원 수준으로 발생한다면 17만6000원대 건보료가 추가된다. 결국 월 35만원, 10년이면 4200만원의 건보료를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이 돈은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으면 안 내도 되는 돈이다.

여기에 임대사업용으로 등록한 주택은 일정기간 팔 수 없다. 임대의무기간이 설정되는 것이다. 임대의무기간을 어기면 그동안 감면 받은 세금은 물론 과태료도 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다주택자 입장에선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게 나을까. 양도세 폭탄을 맞기 전에 집을 처분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소득세와 준조세를 부담하더라도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는 게 나을까. 다주택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실제로 요즘 임대사업자 관련 문의가 크게 늘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따르면 8·2 대책 이후 임대사업자 신청자가 평소의 두 배가 넘는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8·2 대책 직후 임대사업자 신청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양도세는 물론 재산세·법인세·취득세 등 다양한 세금 감면의 혜택이 있지만 훗날 매매시 시세차익이 없는 경우 세금만 더 낼 수도 있어 다주택자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서울·경기·세종·부산 등 청약 조정대상지역의 6억원 이하 주택을 여러 채 가진 다주택자라면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한다. 한 세무사는 “기준시가 6억원 이하, 전용면적 85㎡ 이하의 주택은 임대소득의 소득·법인세 감면 대상이 되기 때문에 해당 주택을 여러 채 갖고 있다면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는 것이 세제 혜택 등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셈법 복잡해진 다주택자

지금은 주택 수와 상관없이 다주택자가 집을 팔 때 양도차익에 따라 6~40%의 기본 세율을 매긴다. 하지만 내년 4월 이후엔 청약 조정대상지역에서 2가구를 가진 다주택자라면 기본 세율에 10%포인트를 더해 양도 차익의 16~50%, 3주택 이상 보유자는 20%포인트를 더해 차익의 26~60%까지 세금을 내야 한다. 이 금액에 10%의 지방소득세도 내야하고, 3년 이상 보유시 보유 기간에 따라 받을 수 있었던 10~30%의 장기보유 특별공제에서도 배제된다. 특히 투기지역의 집을 3가구 이상 가졌다면 10%의 양도세 가산세율까지 적용된다.

하지만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거주 주택에 대해서는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고, 기준시가 6억원,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은 소득세와 법인세가 감면된다. 60㎡ 이하면 최초 분양 때는 취득세가 감면된다. 재산세도 줄고, 양도세 중과에서도 제외되며 10~30% 이상의 장기보유 특별공제도 지금처럼 그대로 적용된다. 준공공임대사업자가 되면 보유 주택 모두 양도세 전액 감면 혜택도 받는다.

그런데 기준시가 6억원 이상, 전용면적 85㎡ 초과 중대형을 갖고 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남수 팀장은 “서울에선 기준 시가 6억원을 초과하거나 전용면적 85㎡ 이상 중대형이 적지 않은데 이런 주택을 갖고 있으면 임대사업자가 되더라도 세제 혜택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보유 중인 주택의 가격이 내려가 나중에 양도차익이 얼마 나지 않은 임대사업자의 경우 양도세는 줄더라도 법인세나 종합소득세 등 다른 세금을 더 낼 가능성이 크다. 경우에 따라 개인사업자 등록으로 내야 할 건강보험료가 양도세 감소분보다 더 커질 수도 있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임대소득이 과세표준 금액에 포함돼 소득세가 늘어날 수 있다. 부동산 임대소득은 종합과세 대상으로 분리과세 없이 소득세 대상 소득에 합산된다. 소득세는 누진세라 과표 구간이 넘어가는 경우 소득세가 배가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 앞서 설명한 것처럼 직장 의료보험 피부양자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지역 가입자로 바뀌게 돼 안내던 건강보험료를 내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직장을 다니고, 직장 없이 주택 여러 채로 임대소득을 받는 부인이 본인 이름으로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남편의 직장 의료보험과 별개로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

양도차익이 별로 없는데 임대소득자로 등록하면 양도세를 절약하는 것보다 임대소득에 따른 소득세 증가분이 더 커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과세표준 3억~5억원 소득자라면 급여소득까지 합산돼 세율이 급격히 뛸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주택임대사업자로 등록한다고 해서 무조건 세제 혜택을 본다고 여기면 안 된다”며 “보유 주택 수와 면적, 공시지가 등 각자의 상황을 고려해 먼저 계산을 해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팔리지 않으면 증여도 고려할 만

임대사업자 등록 카드를 버린다면 남는 건 팔거나 증여 정도다. 매각할 때는 처분 시점에 따라 수익률이 크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만큼 언제 팔지가 관건이다. 2주택자라가 양도를 고려한다면 내년 4월 1일 이전에 파는 게 유리하다. 양도세를 덜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주택을 3채 이상 갖고 있다면 이미 양도세 중과 대상이므로 양도 차익이 적고,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는 주택을 먼저 매각한 후 순차적으로 처분하는 게 유리하다.

증여도 시점이 중요하다. 주택 가격이 하락세일 때가 유리한데, 동일 세대가 아닌 향후 세대 분리가 가능한 자녀가 있다면 이 자녀를 통해 주택 수를 분산하는 게 유리하다. 그러나 매매를 가장한 증여는 편법이므로 하지 않는 게 좋다. 정부도 양도세를 피하기 위해 친족 등 특수관계자에게 싼 값으로 집을 팔았다고 신고한 이들을 집중 감시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8·2 대책 이후 자녀에게 매매 형식으로 편법 증여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부모와 자녀 등 특수관계자 사이의 거래는 특히 주의해서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특수관계자 간 거래는 원칙적으로 증여로 추정, 증여세를 물린다. 물론 집을 산 사람이 돈을 벌어 집을 판 사람에게 지급한 증거가 확실하면 매매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정상적인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매매를 가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 국세청의 판단이다. 편법 증여가 확인되면 시가를 기준으로 양도세를 부과하는 한편 과소신고 가산세 10%도 물어야 한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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