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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프린세스 다이애나 20주기...어록으로 돌아본 36년 생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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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은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파파라치에 쫓기다 교통사고를 당한 그의 생애는 파란만장했다. 두 아들의 엄마이자 패션 아이콘, 그리고 자선활동가로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았던 프린세스 다이애나. 그가 남긴 주옥같은 말들을 통해 강인한 여성으로 살았던 그의 36년 생을 돌아본다.

1981년 7월29일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열린 다이애나와 찰스의 결혼식. 데이비드&엘리자베스 엠마누엘이 디자인한 아이보리색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중앙포토]

1981년 7월29일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열린 다이애나와 찰스의 결혼식. 데이비드&엘리자베스 엠마누엘이 디자인한 아이보리색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중앙포토]

“나는 자유로운 정신을 갈망해요. 그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나인걸요.”

결혼식에서 남편인 찰스 왕세자에 복종한다는 결혼 선서 전통을 거부하고, 대신 자신의 말로 사랑을 맹세했던 다이애나. 그는 스무살에 낳은 윌리엄 왕세손을 유모 손에 맡기지 않았다. 직접 모유로 아이를 키우며 영국 왕실의 오랜 관습들을 바꿔나갔다. 전기작가인 폴 존슨에 따르면 다이애나는 그가 만난 그 어떤 인물보다 직감이 뛰어나고,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런던의 놀이공원 소프파크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다이애나와 해리, 윌리엄 왕자(왼쪽부터) [중앙포토]

런던의 놀이공원 소프파크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다이애나와 해리, 윌리엄 왕자(왼쪽부터) [중앙포토]

“내 아이들은 사람들의 감정과 불안, 고뇌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사람들과 희망, 그리고 꿈도 나눌 수 있기를…”

그는 두 아들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가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보통 사람들과 같은 경험을 하길 바랐다. 다이애나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맥도날드 햄버거에서 식사를 하고, 홈리스 보호시설에도 다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백화점에서 열린 산타클로즈와의 만남 행사, 그리고 미국 디즈니랜드에서 그는 두 아들이 일반인들과 함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게 했다.

1991년 4월,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요양시설에서 에이즈 환자와 악수를 나누는 다이애나.[중앙포토]

1991년 4월,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요양시설에서 에이즈 환자와 악수를 나누는 다이애나.[중앙포토]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다이애나는 병원과 홈리스 보호시설 등에서 왕실 규정인 장갑을 착용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교감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HIV 감염자와 그 자녀들을 품에 안는 다이애나의 모습은 “가벼운 접촉만으로도 에이즈에 감염될 수 있다”는 당시 세상의 편견과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는 계기가 됐다.

1984년 9월, 런던 세인트메리 병원 앞에서 차남 해리왕자를 언론에 첫 공개했다. [중앙포토]

1984년 9월, 런던 세인트메리 병원 앞에서 차남 해리왕자를 언론에 첫 공개했다. [중앙포토]

“어린 남자아이가, 자신의 엄마가 단 한 번도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둘째아들 해리왕자를 낳을 무렵 다이애나와 찰스 부부는 이미 갈라선 상황이었다고 한다. 다이애나는 결혼 당시부터 남편 찰스가 카밀라와 불륜관계였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각종 출판물과 언론보도를 통해 이런 내용이 세상에 폭로되면서 계속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1985년 4월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한 다이애나. 화려한 핫핑크 드레스와 톤온톤으로 매치한 백이 돋보인다.[중앙포토]

1985년 4월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한 다이애나. 화려한 핫핑크 드레스와 톤온톤으로 매치한 백이 돋보인다.[중앙포토]

“누구에게나 행복한 순간들이 있어요.”

다이애나를 행복하게 한 것들. 그는 왕실전속 요리사인 대런 맥러디가 만든 레이즌 브레드 앤 버터푸딩을 즐겨 먹었다. 분홍색 드레스가운을 즐겨 입었고, 발레공연을 좋아했다. 다이애나에게 마음의 안식과 행복을 준 것들이다.

1994년 두 아들과 런던의 홈리스 시설을 방문한 다이애나. 두 왕자는 소외된 이웃과 항상 함께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지금도 잘 실천하고 있다. [켄싱턴궁 인스타그램]

1994년 두 아들과 런던의 홈리스 시설을 방문한 다이애나. 두 왕자는 소외된 이웃과 항상 함께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지금도 잘 실천하고 있다. [켄싱턴궁 인스타그램]

“다른 사람에게 베푼 친절에 대가를 바라서는 안됩니다. 당신도 많은 사람으로부터 대가 없는 친절을 받고 있는 걸요.”

1992년 홈리스를 지원하는 단체인 ‘센터 포인트’ 후원을 시작한 다이애나. 어린 아들 윌리엄과 해리를 센터 포인트에 데려가 봉사활동을 하도록 했다. 훗날 어머니에 이어 이 단체의 후원을 맡은 스물세 살의 윌리엄 왕세손은 “어머니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해준 분”이라고 말했다.

해리 왕자(오른쪽)의 첫 등교일. 두 왕자는 런던 노팅힐의 명문 남자 사립학교인 웨더비스쿨 출신이다.[중앙포토]

해리 왕자(오른쪽)의 첫 등교일. 두 왕자는 런던 노팅힐의 명문 남자 사립학교인 웨더비스쿨 출신이다.[중앙포토]

“나는 두 아들을 위해 살고 있어요. 아이들이 없다면 방황하게 될 거예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다이애나는 두 아들에게 만큼은 같은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외로운 결혼생활 속에서도 아이들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했다. 런던에 있는 사립유치원에 어린 아들을 등·하교 시키는 모습이 종종 카메라에 잡혔다.

신혼여행지 스코틀랜드에서. 두 사람은 키가 같았지만(178cm) 언론에 배포된 공식 사진에선 찰스가 항상 다이애나보다 한 뼘 크게 나왔다. [중앙포토]

신혼여행지 스코틀랜드에서. 두 사람은 키가 같았지만(178cm) 언론에 배포된 공식 사진에선 찰스가 항상 다이애나보다 한 뼘 크게 나왔다. [중앙포토]

“값비싼 선물은 필요없어요.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어요. 이미 모두 가졌는 걸요. 다만, 누군가 내 곁에 있어줬으면,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사람이요.”

디올·베르사체 등의 화려한 옷으로 치장하고도 마음속에서는 끝없이 사랑을 갈구했던 다이애나. 남편과의 불륜관계에 있던 카밀라와 한 파티장에서 만났을 때 “당신은 모든 걸 손에 넣었잖아요. 더 원하는 게 뭐죠”라고 묻는 카밀라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 남편이요.”

1986년 스페인 방문 당시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와 이야기를 나누는 다이애나. 어린 윌리엄 왕세손, 해리 왕자도 함께했다. [중앙포토]

1986년 스페인 방문 당시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와 이야기를 나누는 다이애나. 어린 윌리엄 왕세손, 해리 왕자도 함께했다. [중앙포토]

“나는 여자의 직감을 믿어요.”

다이애나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내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다이애나와 친했던 팝스타 조지 마이클은 “다이애나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누구나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섬세한 감성과 여성 특유의 직감은 다이애나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다이애나는 결혼 전 "허리가 조금 통통한 것 같다"는 찰스의 말 한마디에 섭식장애를 겪게 됐다고 훗날 고백했다. [중앙포토]

다이애나는 결혼 전 "허리가 조금 통통한 것 같다"는 찰스의 말 한마디에 섭식장애를 겪게 됐다고 훗날 고백했다. [중앙포토]

“우리 결혼생활은 항상 3명이 함께였어요. 그래서 어디서나 늘 비좁았죠.”

이혼 후 BBC 인터뷰에서 카밀라 파커 볼스와 남편 찰스의 관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 다이애나. 지난 4월 출간된 『Prince Charles:The Passions and Paradoxes of an Improbable Life』에서는 찰스 왕세자가 카밀라를 잊지 못해 다이애나와의 결혼 전날 밤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결혼식을 마친 뒤 마차를 타고 시가행진 중인 찰스와 다이애나. 전 세계 7억5000만 명이 TV중계를 시청한 세기의 결혼식이었다. [중앙포토]

결혼식을 마친 뒤 마차를 타고 시가행진 중인 찰스와 다이애나. 전 세계 7억5000만 명이 TV중계를 시청한 세기의 결혼식이었다. [중앙포토]

“프린세스가 된다는 것이 생각만큼 멋진 일은 아니랍니다.”

장차 영국의 국왕이 될 13살 연상의 남편 찰스는 항상 공무로 바빴고, 부부가 함께 지내는 시간은 적었다. 궁 밖에서는 24시간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쫓겼고, 궁 안에서는 왕실의 딱딱한 규범에 시달렸다. 중압감과 남편의 불륜에 지친 다이애나는 10년간 섭식장애를 겪었다고 훗날 고백했다.

보스니아 내전이 치러졌던 사라예보를 1997년 방문, 현지 아이들과 만났다. 흰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캐주얼 차림이었다. [켄싱턴궁 인스타그램]

보스니아 내전이 치러졌던 사라예보를 1997년 방문, 현지 아이들과 만났다. 흰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캐주얼 차림이었다. [켄싱턴궁 인스타그램]

“프린세스 다이애나가 아닌, 다이애나로 불러주세요.”

왕실 가족이면서도 언제 어디서나 소탈한 품성이 돋보였던 다이애나. 어느 날 한 고급 부티크에 예고없이 나타난 다이애나에게 직원이 지나치게 예를 갖추자 그에게 말했다. “보통 사람들처럼 쇼핑하고 싶어요. 다른 분들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거든요.”

안전마스크를 쓰고 지뢰 위험지역을 걷는 다이애나. 이 장면은 1997년 BBC 다큐멘터리에서 방영됐다. [중앙포토]

안전마스크를 쓰고 지뢰 위험지역을 걷는 다이애나. 이 장면은 1997년 BBC 다큐멘터리에서 방영됐다. [중앙포토]

“사람은 누구나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누구나 남에게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뢰제거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97년 방영된 BBC 다큐멘터리에선 지뢰 제거 작업이 바로 끝난 위험지역을 다이애나가 걷는 모습이 방영되기도 했다. '결코 공부에는 소질이 없었다'고 말하는 다이애나.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지식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줬다.

대인지뢰로 다리를 잃은 앙골라 아이들과 만난 다이애나. [중앙포토]

대인지뢰로 다리를 잃은 앙골라 아이들과 만난 다이애나. [중앙포토]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그를 위해 어떤 노력이라도 할거예요.”

다이애나의 자선활동에 대한 열정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다이애나 사후  ‘다이애나 메모리얼 기금’이 설립돼 1억4500만 달러(약 1630억원)가 불우이웃을 위해 쓰였다. 지금은 아들인 윌리엄 왕세손이 기금을 관리하고 있다.

1983년 5월, 생후 11개월 된 윌리엄 왕세손과 뉴질랜드를 방문한 찰스 앤 다이애나 왕세자 부부. 모유로 아이를 키웠던 다이애나는 '왕위계승자가 같은 비행기에 동승할 수 없다'는 왕실규정을 깨고 아들을 데려갔다. [중앙포토]

1983년 5월, 생후 11개월 된 윌리엄 왕세손과 뉴질랜드를 방문한 찰스 앤 다이애나 왕세자 부부. 모유로 아이를 키웠던 다이애나는 '왕위계승자가 같은 비행기에 동승할 수 없다'는 왕실규정을 깨고 아들을 데려갔다. [중앙포토]

“사람들은 내가 남성(남편)을 통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공식업무를 하면서 행복을 느껴요.”

남편 찰스 왕세자와는 공통의 취미도, 대화도 없었다. 봉사활동에 열정을 쏟았던 다이애나의 유명한 발언이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사랑을 갈구했던, 갈등으로 가득했던 생이었다.

무릎을 굽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다이애나. 며느리인 캐서린 미들턴 왕세손빈도 어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어김없이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춘다. [중앙포토]

무릎을 굽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다이애나. 며느리인 캐서린 미들턴 왕세손빈도 어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어김없이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춘다. [중앙포토]

“현대사회에 만연한 가장 심각한 질병은 사람들이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다이애나는 사생활에서는 남편과 부모의 사랑에 평생 굶주렸다. 그가 HIV 감염자나 홈리스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민 것은 아마도 그들의 고독감과 불안감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친정인 스펜서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티아라를 쓴 모습. 다이애나는 영국 명문 귀족가문인 스펜서 백작의 딸로 20살에 왕실의 며느리가 됐다. [중앙포토]

친정인 스펜서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티아라를 쓴 모습. 다이애나는 영국 명문 귀족가문인 스펜서 백작의 딸로 20살에 왕실의 며느리가 됐다. [중앙포토]

“사랑하기로 했다면 그 사랑을 지키세요. 그리고 운 좋게 사랑을 받게 된다면 그 사람을 지켜내세요.”

2013년 개봉된 영화 ‘다이애나’에서는 심장외과 의사인 하스나트 칸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이 그려졌다. 파키스탄의 대가족 안에서 자란 칸과의 결혼까지도 생각했다. 다이애나는 칸의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홀로 파키스탄으로 향했을 만큼 정열적인 면모도 갖고 있었다.

97년 파리에서의 사고 후 런던 헤롯 백화점에 세워진 다이애나와 연인 도디 알 파예드의 추모사진. 도디 알 파예드의 아버지 모하메드 알 파예드는 당시 이 백화점을 운영하던 이집트 재벌이다. [중앙포토]

97년 파리에서의 사고 후 런던 헤롯 백화점에 세워진 다이애나와 연인 도디 알 파예드의 추모사진. 도디 알 파예드의 아버지 모하메드 알 파예드는 당시 이 백화점을 운영하던 이집트 재벌이다. [중앙포토]

“나는 그를 사랑해요. 이렇게 행복했던 적은 없었죠. 진정한 사랑이예요.”

1997년 함께 교통사고를 당한 연인 도디 알 파예드를 두고 한 말이다. 사랑없는 결혼생활과 이혼을 거쳐 찾아낸 진정한 사랑. 사고당일, 도디 알파예드는 다이애나에게 청혼할 예정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1965년, 4살때의 모습.어린 다이애나를 돌봤던 유모 메리 클라크는 영국 언론에 "다이애나빈의 어릴적 꿈은 대가족을 일구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중앙포토]

1965년, 4살때의 모습.어린 다이애나를 돌봤던 유모 메리 클라크는 영국 언론에 "다이애나빈의 어릴적 꿈은 대가족을 일구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중앙포토]

“인생, 하나의 여정에 불과해요.”

20세에 영국 왕세자와 결혼해 세기의 프린세스가 된 다이애나. 하지만 1996년 찰스 왕세자와의 이혼에 이어 97년 8월31일 연인 도디 알파예드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했다. 36세.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두 아들이 어머니를 추모하며 켄싱턴궁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윌리엄과 해리 왕자는 20주기를 맞아 어머니가 살았던 켄싱턴궁 정원에 다이애나 조각상을 세우기로 했다. [켄싱턴궁 인스타그램]

두 아들이 어머니를 추모하며 켄싱턴궁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윌리엄과 해리 왕자는 20주기를 맞아 어머니가 살았던 켄싱턴궁 정원에 다이애나 조각상을 세우기로 했다. [켄싱턴궁 인스타그램]

“나는 사람들 마음속 프린세스이길 원합니다. 이 나라의 프린세스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윌리엄과 해리 왕자는 어머니의 기일을 하루 앞둔 30일 추모행사를 열었다. 에이즈 환자 지원단체인 '내셔널 에이즈 트러스트'와 홈리스 지원단체인 '센터 포인트' 등 어머니 다이애나가 후원했던 6개 단체와 병원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날 만남은 다이애나의 거처였던 켄싱턴궁의 화이트가든에서 이뤄졌다. 자선단체인 ‘다이애나 어워드’는 다이애나의 뜻에 따라 남을 위해 행동하는 기념일 ‘내셔널 카인드니스 데이(National Kindness day)’를 제정했다. 그의 인도주의 활동과 봉사정신은 지금도 세계인의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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