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 적이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29일 만나 문재인 정부의 외교ㆍ안보 정책을 우려한 뒤 헤어지면서 서로를 꼭 껴안았다. 전날(28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날 때와는 사뭇 달랐다. 당시 민주당 대표실을 둘러본 안 대표가 “오랜만에 왔다. 저에게는 익숙한 곳”이라고 하자 추 대표는 “민주당도 그동안 촛불 정국에서 면모를 일신했다”고 답해 서로 자기 얘기만 했다. 안 대표는 당 대표로 취임(27일)하며 11번이나 ‘싸우겠다’는 말을 했다. 문재인 정부를 향해서는 “벌써 독선에 빠졌다”며 전면전을 선언한 상태다.
정치권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 안 대표와 홍 대표가 그렇다. 지난 대선 때 두 사람은 격한 비난을 주고받았다. 안 대표는 "대한민국 보수는 품격을 중요시하는데 (홍준표 후보는) 보수에게도 부끄러운 후보"라며 대선 후보직 사퇴를 공개 요구했다. 홍 대표 역시 "문재인 후보보다 안철수 후보가 더 위험하다"며 "여기 왔다 저기 갔다 하는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고 안 대표를 공격했다.
서로를 깎아내리는 선거 프레임도 똑같이 동원했다. 홍 대표 측은 ‘안찍문’(안철수를 찍으면 문재인 대통령 된다)이라는 구호로 보수 표심을 공략했다. 안 대표 진영도 ‘홍찍문’(홍준표 찍으면 문재인 대통령)이란 프레임으로 역공했다.
하지만 이젠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70%를 오가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동의 공격 목표가 됐다. 야당 대표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정치적 생존을 위해서다. 내년 지방선거를 놓고 자유한국당 일각에서 나오는 야3당 수도권 단일 후보론도 성사 가능성과 관계없이 필요하면 적과의 동침도 고려해야 한다는 카드의 하나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과 안 대표는 한때의 동지 관계를 끝낸 지 오래다. 지난 2012년 9월 안철수 대표는 '안철수 태풍'을 만들며 대선 출마에 나섰지만 이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단일화 압력이 거세지자 11월 불출마를 선언했다. 다음달 ‘광화문 대첩’으로 불렸던 공동 선거유세에서 목도리를 선물하는 장면까지 보여줬다. 하지만 대선 당일(12월19일) 미국으로 출국하며 논란을 불렀다. 문 후보 지지자들은 “도망쳤다”며 비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출간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많은 아쉬움들이 있지만 (왜 떠났는지) 알 수는 없다”고 썼다. 이에 안철수 대표는 “도와줬는데 그런 말을 한 건 짐승만도 못한 것”이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내놨다.
두 사람은 2014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는 한 식구였다. 안철수의 새정치연합과 문재인의 민주당이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통합하면서다. 안 대표는 당의 초대 대표를 맡았지만 같은해 재ㆍ보궐선거에서 패한뒤 자리에서 물러났고, 문 대통령이 뒤를 이어 대표가 됐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를 놓고 '화성 재인, 금성 철수’라는 말이 돌았다. 결국 2015년 12월 안철수는 당을 떠나며 “대통령 후보를 양보했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통합했지만 정권교체는 실패했고 정치 혁신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을 남겼다. 문 대통령은 당시 탈당 당일 새벽에 안 대표의 집을 찾아가 40여분간 기다렸지만 만나지 못했다.
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