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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와 일해 보니 … “변호사 지원 가능해도 대체는 못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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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래직업 리포트 ① 13년 앞으로 온 ‘AI 쇼크’

“이제 변호사마저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시대가 왔다.” 지난해 5월, ‘인공지능 변호사’로 알려진 로스가 뉴욕 로펌에서 ‘근무’를 시작했다는 뉴스는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로스는 IBM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개발됐다. 특기는 법률 문서 검토. 초당 1억 장의 판례를 검토해 사건에 맞는 가장 적절한 판례를 추천하는 게 주요 업무다. 지난해 미국 뉴욕의 대형 로펌 ‘베이커드앤드호스테들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십 곳의 로펌이 로스를 도입했다.

AI와 근무한 변호사 3명의 평가 #사흘 걸리는 서류 검토, AI는 2시간 #남는 시간에 더 많은 가치 창출 가능 #AI, 판사·배심원 설득 전략 못 세워 #단순 법률지식만 제공 땐 생계 위협 #새 법률 시장 열려 소비자엔 호재

로스가 본격 등장한 지 1년여. 로스와 함께 일해 본 변호사들은 이런 전망을 어떻게 평가할까. 중앙일보가 로스와 근무해 본 미국 변호사 세 명을 e메일로 인터뷰했다. 덴버 소재의 법률회사 브라이언케이브의 캐서린 드보드(이하 드보드) 변호사, 뉴욕에 본사를 둔 코브레앤김의 마이클 김(이하 김) 대표 변호사, 듀크대 법률전문대학원에 재직 중인 제프 워드 교수다. 이들은 모두 “인공지능은 변호사 업무를 지원할 뿐 결코 변호사를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변호사의 일이란 게 너무 복잡한 데다 설득·공감·직관 등 인간이 잘할 수 있는 역량이 너무 중요하다는 얘기다. 다만 “법조문을 외우는 것 외에 큰 강점이 없는 변호사라면 기계 때문에 생계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들은 로스가 특기인 법률 문서를 검토하는 작업에선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성과를 낸다고 평가했다. 로스를 도입한 덕에 변호사들이 꽤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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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변호사는 “법이 너무 복잡해졌기 때문에 경력이 뛰어난 변호사도 문서를 검토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며 “로스가 판례를 검토해 주는 덕에 우리 변호사들은 고객을 위한 서비스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로스의 역량이 발전한다 해도 문서 검토를 넘어 직업 전체를 대신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진 않을 거란 게 이들의 전망이다.

“인간 변호사가 인공지능에 밀려날 가능성은 없느냐”는 질문에 드보드 변호사는 “로스도 그런 주장엔 동의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판단하고, 분위기를 알아채고, 공감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 역시 “로스는 변호사의 역할을 발전시킬 테지만 대체하진 못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AI가 변호사 대체? 로스도 동의 안 할 것”

그는 “인간은 항상 논리적이거나 냉정하지 않고, 변호사는 그런 인간을 설득해야 한다”며 “로스가 판사와 배심원을 설득할 전략을 세우거나 고객에게 복잡한 조언을 건넬 순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호사 중 일부는 로스 같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위협을 받을 거란 게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미국에선 리걸줌(Legal Zoom)이나 터보택스(Turbo Tax) 같은 법률 자문 인공지능 서비스가 출시됐다. 송사나 세금과 관련한 법률 지식이 궁금할 때 질문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답변을 제공한다. 워드 교수는 “기술의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고 단순한 법률 지식을 제공하는 변호사라면 이런 서비스 때문에 일자리를 위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를 출시 직후부터 지켜본 ‘얼리어답터’인 이들은 다른 변호사들에게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변호사라면 인공지능의 등장이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변호사는 특정 지역의 법률을 기반으로 양해각서를 작성하는 업무를 예로 들었다. 그는 “예전 같으면 해당 지역의 법률을 검토하는 데 하루, 양해각서 문서를 작성하는 데 사흘을 매달릴 일이지만 인공지능에 이를 맡기면 2시간 만에 법률 검토와 양식 작성을 끝낼 수 있다”며 “기술을 활용하는 변호사는 남는 시간에 훨씬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자신이 몇 시간이나 근무했는지를 따져 고객에게 돈을 받는 변호사라면 인공지능이 자신의 업무시간을 단축시켜 주는 것을 반기지 않을 수 있다”며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한 대가를 받는 변호사라면 이런 일을 빠르게 해낸 것을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로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드 교수도 “인공지능 기술은 변호사가 훨씬 더 고차원적이고 보람찬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이 사실 확인이나 법률 검토, 단순한 법률 문서 작성 같은 일들을 대신해 주면 변호사는 판단이나 전략 수립, 인간관계 구축 같은 고차원적 일에 매달릴 시간이 늘 거란 기대다.

기술의 확산은 무엇보다 법률시장 소비자들에게 호재가 될 거란 전망이다. 드보드 변호사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많은 소비자가 스스로를 변호할 방법을 찾게 됐다”고, 워드 교수는 “기술로 인해 기존엔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던 이들이 시장에 발을 들임으로써 새로운 시장이 빠르게 열릴 거라 본다”고 평가했다.

◆ 특별취재팀=임미진·최현주·정선언·김도년·하선영 기자, 홍희진(미국 스탠퍼드대 1학년)·곽연정(연세대 국제대학원) 인턴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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