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우아한 욕망극 '매혹당한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2017.08.28 10:08

업데이트 2017.08.28 10:31

'매혹당한 사람들'

'매혹당한 사람들'

[매거진M] 남북 전쟁 4년째인 1864년, 미국 남동부의 버지니아주 어느 숲에 북부군 한 명이 다리에 피를 흘리며 나무에 기대앉아 있다. 버섯을 따러 갔던 소녀 에이미(우나 로렌스)가 그를 발견하고 근처의 ‘마사 판스워스 여자 신학교’로 부축해 데려간다. 그의 이름은 존 맥버니(콜린 파렐). 마사(니콜 키드먼) 원장과 교사 에드위나 모로우(커스틴 던스트)가 에이미를 비롯해 총 다섯 학생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곳이다. 전쟁이 한창인 시기, 여자들만 지내는 이곳에 피를 철철 흘리는 건장한 사내가, 아니 적군 병사가 들어온 것이다. 바로 그 순간부터, 뜨거운 매혹이 피어오른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 ‘마리 앙투아네트’(2006)로 유명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 ‘매혹당한 사람들’(원제 The Beguiled, 9월 7일 개봉)은 그렇게 시작한다.

일곱 여자와 한 남자, 그 매혹의 파국

'매혹당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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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한창인 시기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 그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갔는지 탐구하는 이야기는 별로 없다. 이 영화에서 코폴라 감독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한다. 여성들의 우정 그리고 고독에 대해서 말이다.” ‘매혹당한 사람들’로 코폴라 감독과 다섯 번째로 호흡을 맞춘 앤 로스 미술감독의 말이다. 이 이야기를 가장 먼저 생각해 낸 이는 따로 있다. 토머스 P 컬리넌이 1966년 펴낸 소설 『어 페인티드 데블(A Painted Devil)』이 원작이다(출판 당시 제목은 ‘어 페인티드 데블’이었는데 이후 제목을, 이 영화의 원제와 같은 ‘The Beguiled’로 바꿨다). 우리말로 하면 ‘가장한 악마’쯤 된다.

이 소설을 영화화한 것 역시 코폴라 감독이 처음이 아니다. 1971년에 이미 돈 시겔 감독이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을 선보였다. 코폴라 감독의 ‘매혹당한 사람들’이 원작 그리고 돈 시겔 감독의 영화와 다른 건, 이 이야기가 그리는 ‘매혹’이 다름 아닌, 여덟 명의 인물 ‘각자의 마음속’에서 피어오른다는 점을, 더없이 은밀하고 우아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매혹당한 사람들'

'매혹당한 사람들'

존이 신학교 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일곱 여성들, 그러니까 마사 원장과 에드위나 선생 그리고 다섯 학생들은 존을 향한 여러 입장과 욕망 사이에서 고민한다. 북부군인 그를 남부군에 인계할 것인가. 한다면 언제 어떻게? 지금 당장 그를 남부군에 넘기면 필시 죽을 텐데, 기독교인으로서 우선 사람을 살리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소문에는, 북부군이 남부 여자들만 보면 강간하려 든다는데 존이 기운을 차리면 무슨 일을 벌일 것인가. 여자들끼리만 신학교 안에 갇혀 살 듯하다, 이렇게 가까이서 남자를 본 게 얼마 만인가.

이 고민은 이 여성들의 삶에 오랜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다들 몰래 존이 머물고 있는 방을 기웃거리며 그의 상태를 살피고, 기운을 차린 존과의 저녁 식사에서 별것 아닌 일에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존의 다정다감한 태도가 그 활력에 불을 지핀다. 일곱 여성들이 각자 그의 방에 드나들 때마다 존은 아주 살가운 태도로 말을 걸고, 그들의 관심에 답한다. 물론, 그 와중에도 존을 하루빨리 남부군에게 넘겨줘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하는 제인(앵거리 라이스) 같은 소녀도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코폴라 감독의 ‘매혹당한 사람들’이 이 모든 이끌림과 감정, 관계를 은밀하고도 인간적으로 그린다는 점이다. 원작 소설, 돈 시겔 감독의 영화와 가장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스릴러 성향이 강했던 원작 소설과 돈 시겔 감독 영화의 인물들이 마치 욕망을 나타내는 음표처럼, 그 파국으로 서슬 퍼렇게 달려가는 것과 다르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그들이 욕망의 노예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응당 그럴 만한 감정을 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미국 격주간지 ‘뉴욕 매거진’이 평한 대로 “어느 누구도 완전히 선하거나 악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매혹당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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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코폴라 감독의 장기다. 첫 장편 연출작 ‘처녀 자살 소동’(1999)부터 다섯 번째 장편 ‘블링 링’(2013)까지 그의 영화는 인물의 내면에 자리 잡은 고독과 불안, 비뚤어진 욕망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한 번도 그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않았다. 매스 미디어와 소셜 미디어에 사로잡힌 10대 청소년들의 욕망을 풍자적으로 다룬 ‘블링 링’도 마찬가지였다. 그 인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그 마음을 인간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매혹당한 사람들’ 역시 그렇다. 마사 원장이 존을 두고 이성의 매력을 느끼면서도 남부군에 넘겨야 할까 고민하고, 에드위나 선생이 그에게 사랑을 느끼고, 학생 중 제일 나이가 많은 알리시아(엘르 패닝)가 그에게 성적 호기심을 드러내고, 에이미가 자신이 그와 가장 각별한 사이라고 생각하는 것 모두가 인간적인 차원에서 그려진다. 존이 그 모두에게 호감을 표하는 것 역시, 살길을 찾으려는 꾀바른 노력과 다정한 성격, 그 경계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보인다. 극 후반 벌어지는 참극과, 그로 인한 극의 결말이 더욱 끔찍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어느 누구를 대놓고 극악하거나 음탕하다 욕할 수 없지만, 인간의 여러 욕망과 마음이 얽혀 처참한 사건이 벌어진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 세상의 비극이다. ‘매혹당한 사람들’은 바로 그 점을 짚는다.

'매혹당한 사람들'

'매혹당한 사람들'

더구나 이 영화는 기존 인질극의 성 역할을 과감하게 바꾼 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존이 여성들을 보다 교활하게 현혹하는 것으로 그리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마사 원장을 비롯한 ‘여성’ 일곱 명이 ‘남성’인 존을 감금하고, 치료하고, 보호하고, 두려워하는 동시에 매혹을 느낀다. 기존 인질극의 인질과 그를 데리고 있는 인물들의 성별을 바꾸었을 뿐인데, 그들 사이에 전혀 다른 관계가 싹튼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협과 매혹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그 감정이 충돌하는 순간 상황이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그 매혹과 욕망, 위협과 파국의 인간 드라마가 코폴라 감독 특유의 우아한 화면 속에 펼쳐진다. 피터 위어 감독의 우아한 미스터리 시대극 ‘행잉 록에서의 소풍’(1975)과, 초상화로 유명한 미국의 초기 인상주의 화가 존 싱어 사전트(1856~1925)의 그림을 떠오르게 하는 감미로운 영상은, 그 아래 숨은 욕망들을 더욱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코폴라 감독의 여성들은 고독과 불안 속에서 욕망을 드러낸다. 그의 영화는 그것들을 도덕적으로 판단하거나 단죄하지 않는다. 더없이 우아하게 우리를 그 욕망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그래서 그것을 인간적으로 탐구하게 한다. ‘매혹당한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지난 5월에 열린 칸국제영화제가 이 영화로 코폴라 감독에게 감독상을 수여한 이유일 것이다. 러시아(당시 소련)의 율리야 솔른체바(1901~89) 감독이 ‘불타는 시절의 이야기’로 1961년(14회) 감독상을 차지한 지 무려 56년 만에 말이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UPI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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