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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교육부의 수능 개편안 불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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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만 사회1부 기자

윤석만 사회1부 기자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지난 21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모임 ‘더좋은미래’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범 교육평론가가 발제자로서 한 말이다. 대선 때 문재인 캠프의 교육공약 입안에 깊이 관여한 그가 쓴소리하게 된 이유는 뭘까. 바로 교육부가 밀어붙이는 수능 개편안 때문이다.

“이른바 금수저가 몇백만원짜리 컨설팅을 받아 ‘좋은 학생부’를 만드는 게 공공연한 현실입니다. 입시의 큰 틀을 바꾸지 않고 단순히 수능 평가 방식에만 초점을 맞춰 개편하는 건 노무현 정부의 정책 실패를 답습할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는 여론의 뭇매에도 불구하고 2008학년도에 수능 9등급제를 밀어붙였다가 역풍을 맞았다. 정권 말기 민심이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는 말이 나왔다. 9등급제는 결국 1년 만에 폐지됐다.

교육부의 수능 개편안을 두고 찬반이 엇갈리는 가운데 개편 일정 연기 요구가 거세다. [신인섭 기자]

교육부의 수능 개편안을 두고 찬반이 엇갈리는 가운데 개편 일정 연기 요구가 거세다. [신인섭 기자]

여권 내에서도 위기감이 감돈다.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행진이지만 유독 교육 분야 지지율은 35%(17일 한국갤럽 ‘정부 출범 100일 평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사회분과 위원을 맡았던 유은혜 의원은 “여당에서조차 교육부 수능 개편안에 의문을 표한다”고 전했다.

정치권뿐만이 아니다. 지난 23일 전국 5500여 명의 진로·진학 담당 교사는 ‘수능 개편안을 새로 만들자’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같은 날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발표 시점을 연말로 미루고 고교 교육정책과 학생부종합전형 보완책부터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지난 10일 교육부가 발표한 수능 개편 1안(일부 과목 절대평가)과 2안(전 과목 절대평가) 중 어떤 쪽도 부작용과 문제점이 크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렸다.

그런데 교육부는 어찌 된 일인지 요지부동이다. 예정대로 31일 개편 시안 중 하나를 택하겠다는 입장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앞서 네 차례 공청회에서 주로 1, 2안 중 한쪽을 찬성하는 패널들을 토론자로 내세워 ‘제3안의 대두 가능성’을 차단했다는 뒷말까지 나온다.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애초부터 제3안 논의를 피한 것이 잘못이다. 충분한 토론과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취임 일성은 ‘소통의 강화’였다. 현 정부의 핵심 국정운영 철학 역시 ‘소통’이다. 그런데 장관 취임 한 달 만에 양자택일의 수능 개편안을 내놓고 3주 만에 결정하라는 게 진정한 소통인지 의아하다.

윤석만 사회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