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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정석]"칭찬은 코끼리도 말하게 한다" 나는 코식이 아빠 김종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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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일하십니까?"
 뻔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열에 여덟아홉은 "그야 물론 돈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밥벌이 때문에 일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이웃들을 찾아가 직접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구두닦이·사육사·버스기사…. 평범한 우리 이웃 14명의 입을 통해 우리가 진짜 일하는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직업의 정석: 당신은 왜 일하는가' 다섯 번째 주인공은 세계 유일의 말하는 코끼리 '코식이' 아빠 김종갑 씨입니다. / 특별취재팀


코식이(왼쪽)는 김종갑(사진) 사육사를 아빠처럼 따랐다. 멀리서 건초를 먹다가도 '코식아'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달려와 인사를 한다. [사진 에버랜드]

코식이(왼쪽)는 김종갑(사진) 사육사를 아빠처럼 따랐다. 멀리서 건초를 먹다가도 '코식아'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달려와 인사를 한다. [사진 에버랜드]

“마치 한 마리의 홍학 같습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다가와 이렇게 사랑 고백을 한다면 여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장미 꽃다발에 반지를 내밀어도 시원찮을 판에 홍학이라니.

 하지만 남자의 사랑법은 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와 남자의 직업은 사육사. 홍학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여자 귀엔 ‘홍학 같다’는 고백이 최고의 사랑 노래처럼 들렸다. 홍학 고백으로 결혼에 골인한 남다른 사랑꾼, 김종갑(49) 사육사를 지난달 21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만났다.

 “아내와 딸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동물원에 오면 동물 생각 밖에 안 해요. 사육사는 동물에 대한 애정과 헌신이 있어야 하는 직업이거든요. 사랑하지 않으면 동물들이 건강하게 지낼 수 없거든요. 집에 가면 딸이 좋고 동물원에 오면 코끼리 아들 ‘코식이’가 좋지요. 가족들이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칭찬은 코끼리도 말하게 한다
 김종갑 사육사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코식이를 만나러 갔다. “코식아, 코식아!” 먼발치에서 그가 부르자 건초를 먹던 코식이가 고개를 돌린다. 기분이 좋은 듯 코를 좌우로 흔들며 걸어온다.

 코식이는 올해 27살 아시아 코끼리다. 코끼리 평균 수명이 60~70년이니, 사람으로 치면 가장 팔팔한 청년기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몸무게는 5t. 최근 결혼도 했다. 한참 연하인 16살 ‘하티’가 코식이에게 시집왔다.

 "코식아, 좋아?" 입으로 코를 가져간 코식이가 소리를 낸다. “좋아~좋아~.” 묵직한 저음이지만 분명한 발음이다. 코식이는 ‘누워, 아직, 발, 앉아’와 같은 짧은 단어 7~8개를 말한다. 독일 생물학자와 오스트리아 코끼리 음성전문가가 코식이의 말을 연구한 논문이 세계적인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리기도 했다. 코식이는 왜, 말을 하게 된 것일까.

아시아 코끼리인 코식이는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났다. 3살에 엄마 아빠와 떨어져 에버랜드로 왔다. 올해 27살이 된 코식이는 몸무게가 5t에 달하는 어른이 됐다. 최근엔 11살 연하인 여자 코끼리 '하티'와 결혼도 했다. [사진 에버랜드]

아시아 코끼리인 코식이는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났다. 3살에 엄마 아빠와 떨어져 에버랜드로 왔다. 올해 27살이 된 코식이는 몸무게가 5t에 달하는 어른이 됐다. 최근엔 11살 연하인 여자 코끼리 '하티'와 결혼도 했다. [사진 에버랜드]


시골소년과 수탉
 김종갑 사육사는 경북 상주시 내서면 속리산 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농사를 짓던 부모님은 3남2녀 중 둘째였던 그에게 소를 맡겼다. 학교를 돌아와 소 먹이를 줘야 하는데, 수탉이 대문 앞을 거닐고 있었다. 사람을 공격할 정도로 성질이 대단한 싸움닭이었다. 닭은 무섭고, 집에는 들어가야겠고. 어떻게 하면 닭을 따돌릴 수 있을까? 어린 김종갑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동물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한 게. 닭을 유인해 내는 법, 소를 잘 돌보는 법을 익히며 동물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커졌죠.”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간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은 그에게 별천지였다. 아프리카 코끼리가 너무 멋있어 하루 종일 쳐다봤다. 사육사가 되고 싶어 김천농공고(현 김천생명과학고)에 진학했고, 1986년 12월 학교 선생님 추천으로 꿈에 그리던 자연농원에 입사했다.

 사육사 실습은 혹독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구보도 했다. 체력이 있어야 동물을 돌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몸무게가 15㎏나 줄었지만 그는 버텨냈다. 꿈에 그리던 일이니까, 그만큼 절실했으니까.

코식이는 코를 입에 집어넣어 소리를 만든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좋아". 씻겨주고 만져주는 '아빠' 목소리를 닮았다. [사진 에버랜드]

코식이는 코를 입에 집어넣어 소리를 만든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좋아". 씻겨주고 만져주는 '아빠' 목소리를 닮았다. [사진 에버랜드]

이 남자의 사랑법

 1993년 아시아 코끼리 한 마리가 그의 동물원에 왔다.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3살짜리 아기, 지금의 코식이였다. 그가 담당 사육사가 됐다. 어릴 때부터 꿈꿔온 코끼리를 맡게 되다니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처음 만난 코식이는 애처로워보였다.

 “코끼리치고는 눈이 컸는데, 긴장해서 그런지 충혈됐더라고요. 많이 불안해하는 느낌이었어요. 부모를 떠나 낯선 곳에 왔으니 그랬겠죠. 거기다 코식이는 겁이 많고 소심했어요. 키 2m의 코식이가 그땐 너무 작아보였어요. 안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침낭을 구해와 코식이랑 먹고 자기로 했어요.”

 결혼한지 얼마 안 된 신혼이었지만 아내에게 양해를 구했다. 손주를 기다리는 부모님께도 “급할 것 없다”며 아이갖기를 미루겠다고 했다. 그만큼 코식이와 친해지고 싶었다.

“모든 게 궁금했어요. 사람도 낮과 밤이 다르잖아요. 도대체 코끼리는 몇시에 자고, 몇시에 일어나는 걸까? 밤에는 뭐할까?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했죠.”

김종갑 사육사는 '손자'보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코식이(사진)가 최근에 11살 아래인 여자 코끼리 하티와 백년가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임신기간이 2년에 달하고, 새끼를 돌보는 기간이 3년에 달한다. 평생 많이 낳아야 5~6마리의 새끼 코끼리를 낳는다. 김 사육사는 "코식이가 저와 함께 있는 동안 2세를 보는 것이 유일하게 제가 바라는 소망"이라고 했다.[사진 에버랜드]

김종갑 사육사는 '손자'보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코식이(사진)가 최근에 11살 아래인 여자 코끼리 하티와 백년가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임신기간이 2년에 달하고, 새끼를 돌보는 기간이 3년에 달한다. 평생 많이 낳아야 5~6마리의 새끼 코끼리를 낳는다. 김 사육사는 "코식이가 저와 함께 있는 동안 2세를 보는 것이 유일하게 제가 바라는 소망"이라고 했다.[사진 에버랜드]

 코식이는 새벽 1시나 되어야 잠이 들었고,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그는 코식이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다. 그러다 보니, 코끼리도 코를 골고, 잘 때는 코를 둘둘 말고 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함께 먹고 자자, 코식이는 아주 천천히 곁을 내줬다. 그는 아침에 눈을 뜨면 손에 침을 발라 코식이 입에 넣어줬다. 코끼리는 애정을 표현할 때 자신의 코를 상대 코끼리의 입에 넣어주는데, 그에겐 긴 코가 없으니 손으로 코를 대신한 거다. 그러자 코식이도 '답례'처럼 코로 애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코식이와 둘도 없는 사이가 됐다.

 “아침에 일어나면 코식이 기분이 좋은지 확인하는데, 코식이도 저를 체크하더라고요. 제가 기분이 좋으면 장난을 치려들어요. 기분이 좋지 않아보이면 곁에 오질 않죠. 저는 코식이 기분 맞추는 걸 가끔 틀리는데, 코식이는 한 번도 안틀려요. 코끼리 지능이 어린아이 4~5살 수준이래요.”

코식이의 밥은 건초다. 하루 80~90kg의 건초를 먹는다. 김종갑 사육사는 코식이 건강을 체크하느라 변의 개수를 세기도 하고,무게도 달아본다. [사진 에버랜드]

코식이의 밥은 건초다. 하루 80~90kg의 건초를 먹는다. 김종갑 사육사는 코식이 건강을 체크하느라 변의 개수를 세기도 하고,무게도 달아본다. [사진 에버랜드]

칭찬의 기적
 2004년 어느 날, 코식이가 있는 곳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우~웅’하는데, 얼핏 들으면 사람 고함 소리 같기도 했다. 그 소리가 '단어'로 들리게 된 건 2006년부터다. 코식이는 입에 코를 집어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가 평소 만져주고 씻겨주며 ‘좋아?’하고 묻고 했는데, 코식이가 그 소리를 따라한 것이었다. 코식이가 세계 최초의 ‘말하는 코끼리’가 된 데에는 김종갑 사육사의 정성이 있었던 셈이다.

 코식이 말고 다른 경사도 있었다. 그가 돌보던 기린 ‘장순이’가 세계 최다 출산 기록을 세웠다. 총 18마리의 새끼를 낳아 ‘세계에서 가장 새끼를 많이 낳은 기린’으로 2013년 국제 종(種) 정보시스템에 이름을 올렸다.

 “장순이는 제가 봐도 참 멋있는 엄마에요. 다른 기린이 자기 새끼를 공격하려 들면 자기 몸을 내밀어요. 그리고 공격하려는 기린에게 가서 몸을 비벼요. 마치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상대방을 얼르는 거죠. 장순이의 모성애는 사람이 배워야 할 정도로 감동적이에요.”

특별취재팀=김현예·정선언·정원엽 기자, 사진 우상조 기자, 디자인 김은교, 영상 조수진 hykim@joongang.co.kr

김종갑 사육사는 "코끼리가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동물"이라고 말한다. 길어야 4시간 정도 자고 나머지 20시간은 항상 활동한다는 것이다. [사진 에버랜드]

김종갑 사육사는 "코끼리가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동물"이라고 말한다. 길어야 4시간 정도 자고 나머지 20시간은 항상 활동한다는 것이다. [사진 에버랜드]

나는 왜 일하는가

저는 행복하기 위해서 일을 합니다. 힘든 일을 한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에요. 생각해보세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할까요? 

 만약 제가 일을 하지 않으면 누가 제 이름을 불러줄까요?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라는 것도 없을테지요. 제가 코식이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코식이가 저를 알아보지도 않았을 거잖아요.

사육사는 힘들어야 해요. 그래야 동물이 행복하니까요. 동물이 행복하면 저도 행복해져요. 

 식상한 말로 들릴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후배들에게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해요. 제가 오늘 해야 할 일을 미뤘다가 후회한 적이 있었거든요. 입사 초기에 낙타를 돌볼 때였어요. 우리 안에 위험해 보이는 물건이 있었는데 ‘내일 보수하면 되겠지’하고 퇴근을 해버렸어요. 다음날 출근해보니 낙타가 다리를 다친 거에요. 그날 저녁 소주를 마셨어요. 미안해서 많이 울었어요. 동물이 저 때문에 다친거니까요. 내가 보호를 못해줘서 다친거니까…. 사육사가 편하면 동물이 힘들어요.

 사육사는 사랑을 나눠줘야 해요. 동물이 잘 먹고 있는지 아프지 않은지 관심을 계속 가져야 하죠. 동물들은 아프면 본능적으로 숨겨요. 약육강식의 세계에선 약한 모습을 보이면 생존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계절에 따라 동물들이 얼마나 먹는지, 변은 얼마나 보고 눈빛은 어떤지 매일 관찰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죠.

 저는 제 직업이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동물에게 해준 것보다 동물들로부터 받은 사랑이 더 많으니까요. 세계를 통틀어서 저보다 더 행복한 사육사는 없을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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