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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5000만 지키자] 문화유산 살리고, 유기농 실천하니 활력..고령화 이겨내는 마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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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마을'로 알려진 홍천군 모곡4리로 들어가는 길. 빼곡하게 심어진 무궁화나무가 가장 먼저 손님을 반긴다. [사진 무궁화마을]

'무궁화마을'로 알려진 홍천군 모곡4리로 들어가는 길. 빼곡하게 심어진 무궁화나무가 가장 먼저 손님을 반긴다. [사진 무궁화마을]

 강원 홍천군 서면 모곡4리로 들어가는 길목엔 무궁화 나무가 빼곡하다. 점심 시간이 지날 즈음엔 머리가 하얗게 샌 노인들이 마을회관에서 무궁화 차를 준비한다.

'막내가 59세 ' 홍천 모곡4리, 무궁화 내세워 #어르신들 적극 참여해 지역 문화유산 살려 #마을 인지도 오르며 농산물 판매·인구 증가 #홍성군 홍동마을, 인구 50% 귀농·귀촌인 #유기농 특화한 '살고싶은 마을'…젊은층 몰려 #자율성·자생력있는 농촌 마을 공동체 롤모델 #강진군, 7800만원 투자해 '고3 농업인 인턴' #취준생에 일자리 제공, 농장은 인력난 해소 #"학생·업체 만족도 높아…젊은층 정착 도움"

 회관 한켠엔 무궁화 꽃 모양 '모빌'을 만들 재료도 마련돼있다. 무궁화 체험프로그램을 위해 마을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서다. 연간 2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모곡4리의 다른 이름은 ‘무궁화마을’이다.

 이 곳엔 30~40대 주민은 없다. 막내인 청년회장이 올해로 59세다. 마을의 모든 사업은 노인들이 주도한다. 마을 사업체인 '무궁화영농조합'을 세웠고 부녀회·노인회가 중심이 돼 관광객을 맞이할 식당을 운영한다.

 이들이 직접 문화체험 강사로 나서고 '다듬이 공연단'을 구성해 문화 공연도 진행한다.

청소 등 소일거리도 많아 집에서 쉬는 노인이 거의 없다. 거동만 가능하면 밖으로 나와 일을 한다. 마을에 아이와 젊은이 하나 없어도 활력이 넘치는 이유다.

마을 어르신들로 구성된 '다듬이공연단'이 모곡4리를 찾은 손님들 앞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무궁화마을]

마을 어르신들로 구성된 '다듬이공연단'이 모곡4리를 찾은 손님들 앞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무궁화마을]

 무궁화마을은 농·어촌 고령화 극복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일제 강점기에 한서 남궁억(1863년∼1939년) 선생이 무궁화 보급운동을 시작한 지역이라는 역사문화적 특징을 살린 덕분이다.

 2004년 장수마을 선정을 계기로 홍천강과 모곡 밤벌 유원지, 한서 남궁억 선생 기념관을 연계한 관광 상품을 만들었다. 무궁화 공원, 묘목 분양, 무궁화 차 등을 통해 마을의 브랜드도 관리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인구 증가다. 2014년 65~70호 정도였던 가구 수가 현재 100호로 늘어났다. 마을 인지도가 올라가고 인구 유입이 늘어나면서다. 활발한 홍보 활동에 따라 농산물 직거래가 늘어나면서 주민 소득 역시 증가했다. 단지 노인이 많다는 이유로 '마을 소멸' 위기를 겪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무궁화마을 노인들이 한데 모여 돌복숭아 나무를 심고 있다. 노인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하는 돌복숭아 농축액 판매 사업을 위해서다. 복숭아를 키워 열매를 따고 세척해서 효소를 만드는 모든 과정에 노인들이 직접 참여한다. 연간 2000병을 판매한다. [사진 무궁화마을]

무궁화마을 노인들이 한데 모여 돌복숭아 나무를 심고 있다. 노인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하는 돌복숭아 농축액 판매 사업을 위해서다. 복숭아를 키워 열매를 따고 세척해서 효소를 만드는 모든 과정에 노인들이 직접 참여한다. 연간 2000병을 판매한다. [사진 무궁화마을]

  이강목(61) 모곡4리 이장은 "나이 드신 분들은 농사를 짓기 힘들어지면 결국 고향을 떠나는 경우도 생긴다. 노인이 중심된 사업을 개발해야 마을을 활성화하고 소멸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자생력 있는 마을 공동체…"귀농인 많으니 집이 부족할 지경"

  갈수록 심화되는 고령화는 농·어촌이 다함께 고민하는 문제다. 하지만 무궁화마을처럼 이를 이겨내는 곳도 적지 않다. 특히 귀농·귀촌을 장려하면서 인구 유입에 힘쓰는 곳도 많다.

유기농법을 내세워 귀농·귀촌 인구 유입을 적극 유도하는 충남 홍성군 홍동마을 풍경. [사진 주형로]

유기농법을 내세워 귀농·귀촌 인구 유입을 적극 유도하는 충남 홍성군 홍동마을 풍경. [사진 주형로]

  충남 홍성군 홍동마을(홍동면)은 대표적인 '귀농·귀촌 1번지'다. 인구 3400여명 중 절반이 도시에서 왔다. 노인 비율이 34.7%로 적지 않지만 그만큼 젊은이도 많다.

 어린이집부터 초·중·고교까지 모두 있는데다 폐교 걱정은 전혀 없다. 주정모 홍동마을 주민자치위원장은 "마을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많은데 집이 부족한 지경"이라고 말한다.

  주형로 홍동마을 지역센터마을활력소 대표는 높은 고령화 지수에도 불구하고 마을이 활력을 잃지 않는 이유에 대해 "교육·유기농·협동조합의 3박자가 맞춰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의 지원도 있지만 마을 주민들의 협력과 연대가 마을을 살려냈다는 의미다.

홍동마을 지역센터마을활력소 홈페이지에 올라온 그림 지도. 마을에서 운영하는 각종 협동조합·마을사업 등 단체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사진 홍동마을 지역센터마을활력소]

홍동마을 지역센터마을활력소 홈페이지에 올라온 그림 지도. 마을에서 운영하는 각종 협동조합·마을사업 등 단체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사진 홍동마을 지역센터마을활력소]

  이 지역엔 유기농(농약을 안 쓰는 농사)을 가르치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가 있다. 58년 개교한 이래 졸업생들이 지역에 정착하고 유기농법을 개발, 실천하면서 서서히 마을 이름도 알려졌다.

 이후 유기농에 관심있는 젊은 귀농인들이 홍동마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90년대 초반 오리를 이용한 농사도 여기서 처음 시작됐다.

홍동마을에서는 90년대 초반 해충을 없애기 위해 청둥오리를 논에 풀어놓는 친환경 오리농법을 처음 도입했다. [중앙포토]

홍동마을에서는 90년대 초반 해충을 없애기 위해 청둥오리를 논에 풀어놓는 친환경 오리농법을 처음 도입했다. [중앙포토]

홍동마을의 논에서 기르는 오리들. 오리는 논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해충을 잡아 먹고 잡초가 뿌리내리지 못하게 한다. [사진 주형로]

홍동마을의 논에서 기르는 오리들. 오리는 논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해충을 잡아 먹고 잡초가 뿌리내리지 못하게 한다. [사진 주형로]

  주민들은 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이다. 협동조합을 만들고 그물코출판사·풀무우유 등 70여개 마을기업을 운영한다. 주 대표는 "새로 유입된 인구만 젊은층을 채우는 게 아니라 자녀 세대 대다수가 그대로 남는다. 자율적이고 자생적인 마을 공동체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고 말했다.

젊은 예비 농업인에 양질 일자리로 '정착' 유도

  노인 비율이 31.5%인 전남 강진군은 올해 처음 '농업인 인턴제'를 대안으로 내놨다. 군내 농업계 고교인 전남생명과학고 3학년을 대상으로 군비 7800만원을 투입한다. 고령화로 인력난을 겪는 농촌에 젊은 인력을 투입하고 청년들에게 마을에 정착할 동기를 부여한다는 취지다.

농업인 인턴제를 통해 지역 내 농장에서 일을 시작한 전남생명과학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사진 강진군청]

농업인 인턴제를 통해 지역 내 농장에서 일을 시작한 전남생명과학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사진 강진군청]

 이달 1일부터 고3 학생 12명이 지역 내 농업법인과 농산물 가공 회사로 출근하고 있다. 이들은 6개월간 월 160만원을 받고 일한다. 일반적인 농고 3학년생이 현장실습을 나가서 받는 최저임금(135만2230원)보다 높은 수준이다. 4대 보험도 지원된다. 강진군은 인턴제를 거친 학생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도록 꾸준히 지원할 계획이다.

  강진군청 친환경농업과 김걸 팀장은 "젊은 층이 강진을 떠나지 않고 관심사를 살릴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전문 지식이 있는 학생들이라 처음 일을 배우는 성인보다 낫다며 만족하는 업체도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고령화로 활력을 잃어가는 마을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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