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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읽는 북한(6)] 유치원생부터 반미교육…미국을 '승냥이'에 비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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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유엔이 대북제재 결의안 2371호를 만장일치로 통과되자 북한은 그 원인을 모두 미국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지난 7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해 “철두철미하게 미국 때문에 생긴 문제이고 미국 때문에 오늘의 이 지경으로 번져진 문제이며 그 책임도 전적으로 미국에 있는 문제”라고 밝혔다. 2371호의 주요 내용은 북한산 석탄·철·철광석·수산물 등의 수출금지와 신규 해외 노동자 송출 차단이다. 이를 통해 북한의 연간 수출액 30억 달러 가운데 3분의 1 규모인 10억 달러를 차단할 것으로 예상한다.

北, 모든 문제의 출발점을 미국으로 규정 #신천박물관, 푸에블로호 반미교육으로 활용 #6.25~7.27 반미공동투쟁월간으로 설정 #유엔 제재안 2371호에 평양 10만명 반미 시위 #반미교육의 출발점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 #김일성 증조부를 우상화 기회로 활용 # #

평양시민들이 지난 9일 김일성광장에서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2371호에 반대하며 군중집회를 열고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평양시민들이 지난 9일 김일성광장에서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2371호에 반대하며 군중집회를 열고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은 같은 날 정부 성명을 통해서도 “미국은 정상적인 무역활동과 경제교류까지 전면차단하는 전대미문의 악랄한 제재결의를 꾸며내 우리의 사상과 제도, 우리의 인민을 말살하려는 흉악한 속심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제재결의안의 원인인 화성-14형의 발사에 대해서는 “나라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정정당당한 자위적 조치”라고 부연 설명했다.

이처럼 북한은 모든 문제의 출발점을 미국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선악의 개념으로 미국을 쳐다보고 있다. 북한은 미국을 ‘불구대천의 원수이며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백 년 숙적’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로 북한은 조총련 월간지 ‘조국’ 2015년 3월호에서 “미국이 삼천리 강토를 둘로 갈랐고 피로 물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특히 6·25전쟁 때 자신들이 한 행동은 언급하지 않고 미군이 38선 넘어 북한에서 저지른 ‘만행’들만 부각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미군이 50년 10월 17일부터 52일간 황해남도 신천군에 머물면서 군민의 4분의 1에 달하는 주민 3만5383명을 학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이를 ‘반미교육’의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해 1960년 미군들의 ‘만행’이라고 주장하는 자료들을 전시한 신천박물관을 개관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2014년 11월 황해남도 신천박물관을 방문해 김기남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왼쪽 둘째)에게 반미학습 강화를 지시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2014년 11월 황해남도 신천박물관을 방문해 김기남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왼쪽 둘째)에게 반미학습 강화를 지시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하지만 북한의 선전과 달리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에 쫓겨 패퇴하던 북한군이 신천군에 남아 있던 지주·자본가·기독교인 등 우파 성향의 민간인들을 대량학살했다는 주장과 당시 점령지 관리를 맡게 된 신천지역 반공청년단에 의한 학살 등 다양한 견해가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2015년 7월 이곳을 방문해 “피는 피로써 갚아야 하며 미제와는 반드시 총대로 결산해야 한다”고 거칠게 말했다. 아울러 김정은은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들이 ‘반제반미교양’을 강화하는 것이 조국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차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올해 1월부터 5월초까지 주민 11만여명이 신천박물관을 참관하도록 했다. 조선중앙방송은 지난 5월 8일 “내각 사무국과 체신성 등 1100여개 단체에서 11만4000여명에 달하는 근로자들과 인민군 장병들, 청소년 학생들이 신천박물관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98년 11월 이 곳을 방문했다. 그는 “미제가 달러와 사탕으로 유혹하고 있는데 지금 대학생들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그들의 야수성과 악랄성, 잔인성, 교활성을 똑똑히 인식하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신천박물관을 청소년 학생들과 인민군 군인들에게 다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대학생·군인들은 의무적으로 신천박물관을 방문한다. 주로 반미공동투쟁월간(6월25일~7월27일)에 몰린다. 이 기간 동안 하루 평균 5000여명에 달하는 참관자들이 신천박물관을 찾는다. 북한은 52년 6월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 결정으로 6월 25일을 반제반미투쟁의 날로 설정하고 대미 적개심을 고취하기 위한 내부행사만을 전개했다. 그러다가 70년 7월 반미공동투쟁월간으로 지정하고 내외에서 다양한 반미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2016년 반미공동투쟁월간에 제작한 북한 우표. [중앙포토]

2016년 반미공동투쟁월간에 제작한 북한 우표. [중앙포토]

북한은 내부적으로 평양·개성을 비롯한 주요도시에서 반미 군중집회 및 복수결의모임을 개최해 주민들의 반미 적개심을 고취시킨다. 또한 외부적으로 해외공관·친북단체 등을 앞세워 기자회견이나 각종 회의 및 성명· 담화를 통해 주한미군철수 등을 선전하고 있다. 올해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열린 지난 3월에도 군인들과 청소년 학생들이 신천박물관을 찾았다.대학생때 이곳을 방문한 탈북민 김천일씨는 “102명의 어린이들을 불태웠다고 선전하는 화약창고에 들어가면 피비린내를 연상시키는 냄새가 나며 어린이들이 ‘살려달라’고 벽에 그은 손가락 자국 등이 반미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신천박물관과 함께 반미교육장으로 활용되는 것이 대동강에 전시된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다. 푸에블로호는 68년 북한 원산항 앞 공해상에서 북한군에 납치됐다. 북한은 푸에블로호 사건을 “6.25전쟁에서 패한 미국이 제2의 조선전쟁을 도발하기 위해 무장간첩선을 침투시킨 것”이며 “미국과의 협상에서 김일성·김정일의 뛰어난 지략으로 ‘항복서’를 받아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어릴때부터 반미교육을 집요하게 받는다. 유치원때부터 시작해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의 운동회나 초급중학교(중학교)·고급중학교(고등학교) 야유회 등 각종 놀이에서도 미군 죽이기 놀이 게임을 한다. 유치원생들은 군사놀이 때 몽둥이로 허수아비로 된 미군을 때려눕히는 놀이를 밥 먹듯이 한다. 포스터를 그려도 미국을 때려 이기는 장면, 그림을 그려도 미국의 ‘만행’을 고발하는 그림을 그린다. 게다가 소학교부터 각종 교과서에 반미사상 교육이 포함된다. 북한은 특정 과목에 한정하지 않고 자연·지리·예술 등 여러 과목에 반미 교양 소재를 활용하고 있다.

북한 유치원생이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화살로 맞추고 있다. [우리민족끼리 홈페이지]

북한 유치원생이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화살로 맞추고 있다. [우리민족끼리 홈페이지]

소학교의 경우 ‘미국놈 때려잡기도 함께 합니다’라는 제목과 함께 미국인을 형상화한 눈사람에 어린이들이 눈덩이를 던지는 그림이 실려있다. 고급중학교의 경우 ‘미제 침략자들을 영원히 쓸어버리자’‘잊지말자 승냥이 미제를’ 등의 선전화를 가르치고 있다.

이런 탓에 북한 학생들은 미국인들을 침략자와 승냥이로 인식하고 있다. 평안남도 영원군 마산협동농장에서 근무한 탈북민 김경철씨는 “북한 주민들은 유치원부터 미국 사람들을 ‘정신착란증에 걸린 미친놈들이며 두발 가진 승냥이’라고 교육을 받는다”고 밝혔다. 승냥이는 개과의 포유동물로 여우와 늑대를 합친 것 같이 생겼다. 북한은 미국을 승냥이로 자주 비유한다. 김씨는 “승냥이는 사냥감을 바로 죽이지 않고 창자를 꺼내 죽일 정도로 잔인한 짐승인데, 신천박물관에서 전시된 자료들을 보면 ‘미제=승냥이’로 연상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못 살고 어려움을 겪는 근본적인 원인이 미국에 있다고 선전해 왔다. 사회적 모순을 발생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을 미국 탓으로 돌림으로써 체제의 정당성을 찾으려고 한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외부 정보가 들어오면 올수록 사상적인 선전과 주입이 필요하니까 교과서에 미국을 살인범·테러범으로 묘사할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반미교육을 다양한 방법을 하고 있다. 조총련 월간지 ‘조국’은 2015년 3월호부 터 2016년 4월호까지 14회에 걸쳐 ‘세기를 이어온 미제의 조선침략’을 연재했다. 이 연재는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부터 시작한다. 이 사건은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평양에 이르러 통상을 요구하다가 군민의 화공으로 불타버린 일이다. 북한은 이 사건을 반미교육의 출발점으로 잡고 있다. 그 이유는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의 연해를 측량하고 평양성 관리들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불법 침입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물리친 것을 반미투쟁에서 거둔 첫 승리로 정의하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염소목장에서 근무한 탈북민 장은영씨는 “북한이 제너럴셔먼 사건을 교육시키면서 김일성의 증조할아버지 김응우가 앞장서 제너럴셔먼호를 화공전술로 전멸시킬 것을 발기했으며 군민을 반침략투쟁에로 힘있게 불러 일으켰다고 선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백악관을 공격하는 북한 포스터. [중앙포토]

미국 백악관을 공격하는 북한 포스터. [중앙포토]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화염과 분노’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이에 북한은 미국령 괌에 대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고 대응했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가 점점 거칠어짐에 따라 연일 반미교육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지난 9일 김일성광장에서 평양시 군중집회를 열었다. 평양시안의 내각, 공장·기업소의 일꾼들, 청년학생 등 10만여명이 참석해 ‘미국과 적대세력들의 조작해낸 제재결의를 전면 배격한다’‘우리를 건드리는자 죽음을 면치 못한다’등을 외쳤다. 김기남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우리의 명줄을 물어 뜯어려고 악착하게 달려드는 승냥이(미국)들을 절대로 살려둘 수 없다”며 “미국이 선불질한다면 지구상에서 미국이라는 땅덩어리는 영영 없애버리겠다”고 연설했다.

인민무력성의 군인 집회도 지난 10일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교양마당에서 열렸다. 북한은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른다. 6.25전쟁이 북한의 기습 남침전쟁이라는 것은 국제적으로 확인된 사실이지만 북한은 “미국이 남조선 괴뢰도당을 사촉하여 불의에 북한을 전면 무력침공한 전쟁”이라고 왜곡하고 있다. 이날 행사장에서 이명수 총참모장은 “지금 백두산총대로 날강도 미제의 사상최악의 제재압박과 도발 책동을 단호히 짓부셔버리고 반미대결전을 총결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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