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너는 너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46호 14면

선착장(위)과 슈퍼마켓(아래) 등 일상에서 여러 문자들이 분방하게 어울리고 있는 홍콩의 글자 풍경

선착장(위)과 슈퍼마켓(아래) 등 일상에서 여러 문자들이 분방하게 어울리고 있는 홍콩의 글자 풍경

=

=

“발 없는 새가 있대. 날기만 하다가 지치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쉰대. 새의 몸이 땅에 닿는 건 생애에 한 번, 바로 죽을 때래.”

유지원의 글자 풍경

‘아비정전’의 한 대사다. 영화에서 장국영이 연기한 아비는 홍콩, 아비의 새어머니와 친어머니는 각각 영국과 중국을 상징한다. 이 영화는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어디에도 발 둘 데 없이 애매해진 홍콩인들의 복잡한 심경을 그렸다. 올해 홍콩은 반환 20주년을 맞았다.

중국 글자본 지침서 따라 폰트 만드는 홍콩

홍콩 호텔들에서 제공하던 여행 트렁크 라벨

홍콩 호텔들에서 제공하던 여행 트렁크 라벨

사회주의 중국은 특별행정구인 홍콩의 자본주의 체제를 1997년 이후 50년간 보장할 것을 약속했다. 이 약속은 유명무실해지고 있어, 홍콩에서 만난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은 표현의 자유와 홍콩 고유의 지역 문화를 급격히 잃어가는 데에 문제의식과 갑갑함을 느끼고 있었다.

한자 폰트 디자인에 조예가 깊고 마침 홍콩에 체류 중이던 독일인 로만 빌헬름과 내 보조원이 동행해서 홍콩의 주요 타이포그래피 기관들과 인물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홍콩 호텔들에서 제공하던 여행 트렁크 라벨

홍콩 호텔들에서 제공하던 여행 트렁크 라벨

모노타입 홍콩 지사를 방문했을 때였다. 모노타입은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규모의 폰트 회사다. 평생 한자 번체 폰트 디자인에 투신한 인자한 표정의 로빈 휘가 우리를 맞았다. 로빈은 여러 한자 폰트 작업과 더불어, 중국 교육부에서 발간한 글자본 지침서를 보여주었다. 이 지침대로 만들라는 강제 규정이다. 아마도 교육부의 비전문가들이 만들었을 이 책 속 지침들의 부조리를 일상에서 늘 마주하면서도, 전문가들은 묵묵히 그 지침에 따라 폰트를 만들어야 했다. 본문을 몇 장만 넘겨봐도 글자 본연의 성격과 무관한 터무니없는 지침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로만이 로빈에게 물어보았다. “정부에 개정안을 건의하면 어떤가요?” 로빈이 초연하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런 짓 하면 안 돼요.”

이 말에 우리는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렸으나 그 웃음은 씁쓸한 여운으로 맺어졌다. 아무리 외국계 회사라도 홍콩 역시 중국이었던 것이다. 디자인이 자율적이기에는, 중국 사회 속에서는 글자를 둘러싼 의제들이 심대하고 복잡하여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도사렸다.

홍콩의 디자이너들에게 광둥어와 영어 중 어느 쪽이 구사하기 편한지 물어봤다. 대학 교육을 받은 홍콩인이라면 양쪽 모두에 익숙하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한자는 타이핑이 불편하니 평소에 머리로는 광둥어로 생각하면서 동시에 손으로는 영어로 타이핑을 한다는 답변이었다. 진정한 다국어 도시인들다웠다.

홍콩은 중국과 영국이, 동양과 서양이, 광둥어와 영어가, 한자와 로마자가 만나 공존하는 도시다. 국제 도시인 동시에 지역적 성격도 강하다. 홍콩에 국제적인 그래픽 디자인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경제성장기인 70년대로, 이때 많은 서구 기업들이 홍콩에 지부를 설치했다.

문자 간 이질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로마자 논리 중심 다국어 타이포그래피

문자 간 이질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로마자 논리 중심 다국어 타이포그래피

한편, 한자와 로마자 등 둘 이상의 문자를 병기해서 디자인하는 것을 다국어 타이포그래피라고 한다. 대학 디자인 교육에서는 두 문자 간의 이질성을 최소화하는 연습을 기본으로 한다. 두 문자 간의 차이를 대비시키는 것은 이것이 익숙해진 후에 시도한다. 이렇게 균질하고 위생적이며 체계적인 방식은 20세기 중반 구축된 이른바 중립적인 ‘스위스 타이포그래피’에 연원을 둔다.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이 탈역사적이고 탈지역적인 양상을 환영하며 받아들였고, 이를 ‘국제주의 양식’이라고 부른다.

이 방식이 오늘날까지도 다국어 타이포그래피 교육에서 기본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물론 장점이 많아서다. 하지만 표준화는 다양성을 희생시킬 수 있고, 필연적으로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주도하게 된다.

한자와 로마자가 홍콩에서 공존하는 방식

홍콩의 한 건물 위 다문자 배열

홍콩의 한 건물 위 다문자 배열

홍콩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아직 국제적 그래픽의 영향을 받기 전, 영국령 시절에 한자와 로마자가 공존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서는 서로 성격이 균질적이지 않은 한자와 로마자 글자체를 골라 썼다. 한 공간을 구획해서 글자를 배열하는 논리도 한자와 로마자에서 각각 달랐다. 디자인 교육의 기본 원리들을 거스르면서도, 어설프지 않고 충분히 농익어 있었다. 로만과 나는 거리에서 이런 풍경들을 볼 때마다 “이게 왜 멋있지?”하고 멈춰 서서, 이렇게 ‘이론적으로 말도 안 되는데’ 말이 되어 보이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보곤 했다.

홍콩 디자이너들은 홍콩인의 실용주의 때문일 거라며 웃었다. 한자가 더 익숙한 사람은 어차피 한자만 읽고, 로마자가 더 익숙한 사람은 로마자만 읽으니, 서로 어울리든 말든 각각 취향에 맞는 글자체를 쓰면 될 일이지 홍콩에선 두 문자 간의 조화 같은 데엔 사람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쪽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는 건 양쪽 모두에 익숙해져 있다는 방증일 터다. 내게는 양쪽 문자 모두에 익숙해서 어느 쪽에도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 이 내적인 충만함이 창백한 원칙이며 논리들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고 보였다.

서로 구조가 어울리지 않는 한자와 로마자 글자체들이 나름 조화를 이루는 것은 같은 재질과 기법을 공유해서이기도 했다. 물성이 박탈된 매끈한 디지털 도구로 이 글자체들을 함께 썼으면 이상해 보일 것이다. 홍콩에서는 글자에 스텐실 기법을 유독 많이 쓴다. 얇은 판에 글자를 뚫어 스프레이를 분사하는 기법이다. 이렇게 개성이 뚜렷한 기법을 쓰고 기술적 환경이 같은 아날로그 재질의 공간에 놓이니, 글자의 구조가 상당히 달라도 공존의 어색함이 덜했다.

무엇보다도 한자와 로마자가 한 공간을 분할할 때, 각각의 영역에 서로 다른 구조와 논리가 주어졌다. 배치 방법이 서로 달랐다. 이 풍경은 편안하고 홀가분해 보였다.

이것은 가령 한 건물이 한식과 양식의 공간을 모두 갖고 있어서, 같은 건물을 쓰더라도 각각 익숙한 공간을 택하면 되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었다. 억지로 하나의 방식으로 통일해서 똑같이 맞추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홍콩에서 로마자와 한자가 공존하는 방식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낯설고 이질적인 타자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갈 때 어떤 태도와 관계를 취하면 좋을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 “너도 나처럼 하면 더 좋아”가 배려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타자의 방식이 다소 이해가 가지 않고 불편해 보여도 “너는 너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라고 존중하는 것, 각자가 각자의 영역에서 편한 대로 부대끼며 살아가면 또 어떤가. 그 풍경에는 묘한 해방감과 자유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

유지원
타이포그래피 연구자·저술가·교육자·그래픽 디자이너. 전 세계 글자들, 그리고 글자의 형상 뒤로 아른거리는 사람과 자연의 이야기를 전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