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치료 법률 금지 한국 유일” vs “생명체 설계도 바꾸는 건 문제”

중앙선데이

입력 2017.08.27 01:42

업데이트 2017.08.27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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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호 11면

과학계 핫이슈 유전자 가위
인간 배아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주입하고 있는 모습. 이 유전자 가위는 한국 기초과학연구원이 만들었지만 실험은 미국에서 진행됐다. 국내에선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이 허용되지 않아서다. [사진 미 오리건보건과학대]

인간 배아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주입하고 있는 모습. 이 유전자 가위는 한국 기초과학연구원이 만들었지만 실험은 미국에서 진행됐다. 국내에선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이 허용되지 않아서다. [사진 미 오리건보건과학대]

유전자 교정으로 탄생한 상추. [사진 IBS]

유전자 교정으로 탄생한 상추. [사진 IBS]

근육을 강화한 돼지, 병충해를 이겨내는 상추, 혈우병 발병 요인을 제거한 세포. 셋의 공통점은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유전자 가위는 세포 속 유전자 중 일부를 골라내 새로운 유전자로 대체하는 기술이다. 과학 저널 사이언스는 ‘2015년을 빛낸 과학 성과’ 1위로 크리스퍼 가위를 꼽았다. 매년 노벨상 후보로 꼽히는 유전자 가위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조지 처치 교수와 바이오 기업 이제너시스 루한 양 박사는 지난 11일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돼지 고유의 바이러스를 없앤 복제 돼지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바이러스를 없앤 돼지의 장기는 면역 거부 반응이 없어 사람에게도 이식할 수도 있다.

‘개당 1만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생명과학 수퍼스타로 떠올라
활용처 늘자 윤리 논쟁 깊어져
특허 전쟁도 세계적으로 확산세

 사실 유전자 가위의 역사는 깊다. 1980년대 무렵 관련 연구가 처음으로 시작됐다. 1세대 징크핑거와 2세대 탈렌 유전자 가위 기술이 개발됐지만 비용이 높고 정확도가 낮아 주목받지 못했다. 3세대로 분류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2012년 처음으로 등장해 생명과학계 수퍼스타로 단숨에 떠올랐다. 정확도가 높고 비용이 저렴해서다. 크리스퍼 가위 하나를 만드는 비용은 1만원 수준이다. 이런 이유로 관련 연구가 많이 이뤄졌고 발전 속도가 빨랐다. 그 속도만큼 유전가 가위를 둘러싼 논쟁은 과학을 벗어나 생명윤리와 특허전쟁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인간 배아 편집 가능한가

유전자 가위 활용처가 넓어지면서 생명 윤리에 대한 논쟁도 깊어지고 있다. 유전자 가위가 식물과 동물을 넘어 인간으로 확산되면서다. 논쟁의 핵심은 “인간 배아에 유전자 가위를 들이댈 수 있느냐”다. 이는 2005년 황우석 사태로 촉발된 배아 줄기세포 논쟁과도 결이 다르다. 유전자 교정이 생명체의 설계도 그 자체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계에선 유전자 가위의 배아 적용을 놓고 논쟁 중이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 단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체내 유전자 치료를 법률로 금지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세계적으로 인간 배아를 이용한 임상 적용에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고려해 엄격히 제한하고 있지만 연구는 허용되는 추세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우월한 유전자를 넣어주는 맞춤형 아기 연구까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고장 난 유전자를 건강한 유전자로 바꾸는 연구와 맞춤형 아기 연구는 엄격하게 구분하면 된다”고 말했다.

 반면 유전자 가위의 배아 적용을 반대하는 쪽에선 장기적인 위험과 부작용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방욱(강릉원주대 생물학과 교수) 아시아생명윤리학회장은 “기술 발전에 맞물려 생명윤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난치병과 희귀질환에 대한 연구가 부분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실험을 위한 배아를 생성하도록 법을 전면 개정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유전질환은 1만 가지가 넘는데 이를 완전히 정복하려면 몇 개의 배아가 필요하겠나. 유전자 가위 연구가 갖고 올 수 있는 장기적 위험과 부작용도 함께 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장 규모 2022년엔 2조5921억원

유전자 가위를 둘러싼 윤리 논쟁은 세계적이다. 중국 광둥성 중산(中山)대 황쥔주 박사팀이 인간 배아에서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빈혈 유전자를 제거했다고 2015년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미국 노벨상 수상자 데이비드 볼티모어와 폴 버그 박사는 그해 월스트리트저널에서 “과학계가 기술과 윤리적 차원에서 우리 행동의 의미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배아 속 유전자를 편집하기 전에 잠시 멈춰서 생각해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유전자 가위 연구 확산 도미노를 막진 못했다. 영국은 지난해 2월 인간 배아에 대한 유전자 편집 연구를 허용했다. 일본도 지난해 기초 연구에 한해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을 허용키로 결정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둘러싼 특허전도 확대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특허에 따른 잠재적 가치가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유전자 가위 세계 시장은 2014년 2억 달러(약 2254억원)로 추산됐다. 전문가들은 유전자 가위 시장이 2022년 23억 달러(약 2조5921억원)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특허전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니퍼 다우드나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 연구팀은 그해 5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바이러스 유전자의 특정 부분을 편집하는 데 성공했고 이를 특허로 출원했다. 매사추세츠공대(MIT) 펭 장 교수팀은 그해 12월 인간 세포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작동함을 밝혔다. 장 교수는 인간 세포에 적용한 유전자 가위를 2014년 4월 세계 최초로 특허 등록했다. 이에 UC버클리 연구팀은 2015년 4월 미국 특허상표청(USPTO)에 저촉심사 요청 소송을 제기했다. 누가 먼저 유전자 가위를 발명했는지 가려 달라는 것이었다.

 미 특허상표청은 올해 2월 MIT 연구팀의 손을 들어줬다. 미 특허상표청은 두 기관의 특허 기술이 다르다고 판단했다. 이는 서로 다른 기술로 양쪽의 특허가 모두 유효하다는 뜻이다. 특허상표청은 “이번 판결은 인간 세포에 유전자 가위를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입증한 MIT의 특허권을 인정한 것으로 UC버클리가 앞서 낸 특허 출원이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다우드나 교수는 소송 결과가 나온 뒤 “이번 소송 결과 장 교수팀은 녹색 테니스공에 대한 특허를 갖게 됐지만 우리는 모든 테니스공에 대한 특허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UC버클리는 올해 4월 특허상표청의 결정에 불복하고 연방항소법원에 항소를 제기해 특허권을 둘러싼 논쟁은 이어지고 있다.

 UC버클리는 유럽에서 반격에 나섰다. 유럽특허청(EPO)은 두 기관의 특허전에서 올해 3월 다우드나 UC버클리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EPO는 암과 각종 유전병 등 인간 질병 치료와 관련된 유전자 가위 활용에서 UC버클리의 특허를 폭넓게 인정했다. 이에 따라 유럽 38개국 기업 및 연구소 등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암과 유전병 치료약을 연구하거나 개발할 경우 특허료를 지불해야 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둘러싼 특허 소송은 중국과 일본 등에서도 진행되고 있고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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