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평범성’ 아렌트 사상 핵심은 노력해야 평등한 세상 된다는 것

중앙선데이

입력 2017.08.27 00:14

업데이트 2017.08.27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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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호 08면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

[김환영의 지식 톡톡톡] 한국아렌트학회 김선욱 회장
김선욱

김선욱

나치 독일이 저지른 만행은 사유와 연구, 설명을 요구했다. 대중적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긴 성과로는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1900~80)의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가 제시한 ‘루시퍼 효과’, 사상가 한나 아렌트(1906~75)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 있다(인간 행동을 운위할 때 ‘억압으로부터의 도피’나 ‘천사 효과’ ‘선(善)의 평범성’도 충분한 설득력을 확보할 것이다).  최근 일각에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으로 국정 농단, 촛불시위의 실마리를 찾는 흐름이 부상했다. 한국아렌트학회(회장 김선욱)와 한길사(대표 김언호)가 공동 기획한 ‘한나아렌트학교’는 31일부터 내년 2월 1일까지 아렌트의 사상을 우리 맥락에서 응용하고 재해석한다.  독일 출신 유대인 철학자 아렌트가 21세기 한국에 어떤 화두를 던지는지 궁금해 이번 강의 시리즈를 기획한 김선욱(숭실대 교수) 한국아렌트학회장을 e메일로 인터뷰했다.

아렌트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상가다.
“저는 절대적으로 동의하지만, 반대할 분도 많이 있을 것이다. 아렌트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정치에 대한 서구의 전통적 생각에 여러 면에서 근본적 반성을 제기하고 새로운 사유의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첫째, 플라톤부터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정치를 ‘철학적’으로 접근해 답을 찾으려 했던 시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정치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라 ‘의견’의 영역에 속한다. 아렌트는 정치가 어떤 명확한 준거에 따라 진리 주장이 이루어지는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 이 점은 20세기 정치철학에 크게 기여했다.

우리가 촛불 정국 통해서 느꼈듯
평등한 세상 저절로 존재하지 않아

권력=합의로 형성하는 공동의 힘
막스 베버와는 다른 정의 내려

자신 행동의 의미 생각하지 않는
기계적 명령 순응이 악의 평범성

개인적 아닌 ‘정치적 용서’ 통해
상생의 정치 구현하자고 주장

둘째,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적절히 설명했다. 아렌트의 설명에 따르면 정치는 경제의 도구가 아니다. 정치는 경제의 작용 원리와는 전혀 다르게 움직인다. 하지만 정치적 판단을 통해 경제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방식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

셋째, 권력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막스 베버에 따르면 권력은 ‘다른 사람을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아렌트는 권력을 ‘사람들이 합의를 통해 형성하는 공동의 힘’으로 설명한다. 권위주의적 정치나 ‘현실정치·권력정치’의 맥락에서는 베버의 권력 개념이 잘 맞는 것 같지만, 민주화에 따라 시민의 힘이 정치권력의 토대라는 생각이 점차 강화될 때에는 베버의 권력 개념은 ‘참된 권력’이 아니라 ‘폭력’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때 우리는 새로운 권력 개념을 요구하게 된다. 아렌트의 권력 개념이 대안이다.

정치·경제·권력·헌법·자유·평등 등 중요하지만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민주주의의 핵심 개념들을 아렌트 사상이 우리로 하여금 곱씹어 보게 만들어준다. 이 점에서 아렌트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위대한 사상가다.”

일반인들이 아렌트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게 있다면.
“지난 국정 농단 사건, 촛불시위와 가장 밀접한 철학 개념은 ‘악의 평범성’이라고 생각한다. ‘악의 평범성’은 ‘자신의 행동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명령에 순종하는 경우’에 적용된다. 또한 사유가 작동하지 않는 ‘무사유(無思惟)’ 상태에서는 언어가 대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까지 지적하는 개념이다. 그렇게 보면 ‘악의 평범성’은 남을 비판하는 데뿐만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데까지 활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우리는 모두 불평등한 상태로 태어나지만, 정치 공동체를 만들고 그 안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가자고 약속한다. 평등한 세상은 저절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만 유지될 수 있다. 이것이 아렌트 사상의 핵심이다. 우리가 촛불 정국을 통해 느꼈던 바이기도 하다.”

아렌트 사상의 장점은. 단점이 있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아렌트의 책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 공감한다. 아렌트의 책은 우리에게 어떤 내용을 강요하고 전달하는 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와 더불어 생각하고 우리의 현실을 고민하게 이끈다.

아렌트가 우리의 생각을 자극할 때 두 가지 방향성이 있다. 하나는 사회적으로 억눌리고 소외된 자의 관점에서 사회를 생각하게 하는 방향성이다. 또 다른 하나는 시민의 관점에서 소통과 공동체를 생각하게 하는 방향성이다. 단점에 대해서도 두 가지를 들고 싶다. 첫째, 아렌트가 우리를 깊은 생각으로 인도하지만, 구체적 정책 형성의 길로 이끌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점이 아렌트가 비판하는 막스 베버의 이론이 아렌트의 이론보다도 더 힘 있고 또 현실성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둘째, 아렌트의 권력 개념이 때로는 이상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과 ‘활동적 삶(vita activa)’은 서구 철학사에서 어떤 의미인가. 아렌트는 두 개념을 어떻게 재구성했는가.
“철학의 특성을 설명하는 ‘올림픽 이야기’가 이 질문에 대한 길잡이가 된다. 올림픽 게임에는 경기에 임하는 행위자와 구경하는 관찰자, 그리고 구경꾼에게 장사를 하는 상인 등 세 부류의 인간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중 행위자는 정치가를 의미하고, 관찰자는 철학자, 상인은 이익을 추구하는 세속적 인간이라고 해석한다. 이 이야기는 철학자이자 종교인이자 수학자인 피타고라스가 만든 우화다. 피타고라스에 의하면 세상의 일을 관찰하고 관조하는 철학자의 삶이 가장 뛰어나다. 영광을 얻기 위해 경쟁에 임하는 정치가는 그보다는 한 수 아래의 존재로 여긴다. 우열의 기준은 ‘자신의 행위가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그 행위 자체로 완결되는가’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상인과 정치적 영예를 추구하는 정치가를 포함한 ‘활동적 삶’을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중심으로 노동·작업·행위로 나눈다. 노동·작업·행위는 인간적 삶을 위해 모두 필요한 각기 특성 있는 활동으로 설명된다. 피타고라스 이래 전통적으로 ‘활동적 삶’은, 철학이나 종교를 통해 이루는 ‘관조적 삶’보다는 낮은 단계의 것으로 간주됐다. 아렌트는 이런 위계를 인정하지 않고 정치적 삶을 복권시키려고 노력했다. 현대사회의 문제는 정치적 지평의 망각에 기인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또 철학이 정치의 우위에 서서 정치 영역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렌트는 대학 시절에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고 철학과 신학에 주로 관심이 있었다. 나치가 등장하고 유대인에 대한 핍박으로 유럽에 정치적 위기가 오자 자연히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됐다. 철학과 정치를 구분하고 정치를 복권시키려는 취지는 시대적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그가 철학에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0년 그는 아이히만 재판을 접하고 사유와 언어의 중요성을 다시금 숙고하게 되었다. 그 이후 철학적 사유가 정치에 어떻게 개입돼 책임과 윤리의 문제가 정치의 문제가 되는지를 따져 보게 된다. 이 부분은 아렌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집중하다가 미완으로 남긴 『정신의 삶』에 이르러서야 분명하게 나타난다.

정치와 철학의 관계에 대해 이런 꼬임이 아렌트에게 나타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 속에서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이론을 전달해 주는가는 여전히 미완의 답으로 남아 있다.”

김선욱 한국아렌트학회장은 “전체주의와 악에 대한 아렌트의 설명은 촛불집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을 지녔다”고 말한다. [중앙포토]

김선욱 한국아렌트학회장은 “전체주의와 악에 대한 아렌트의 설명은 촛불집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을 지녔다”고 말한다. [중앙포토]

아렌트는 현재의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 최근 직접·간접 민주주의 논란이 일고 있다.
“아렌트는 미국의 건국기에 형성된 공화국의 정신을 주목한다. 그는 헌법이 시민의 합의에 기초함으로써 권력의 담지자가 되고, 권력이 법적 체계를 통해 빼대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정부가 다양한 층위로 구성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경우는 ‘타운홀 미팅’처럼 작은 단위에서 직접적 토의·합의를 이룰 수 있는 정치체가 작동한다. 미국처럼 규모가 큰 국가에서는 직접 민주주의가 불가능하지만, 근본적으로 직접 민주주의적 장치가 토대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결국 우리의 경우에도 낮은 단위에서 민주주의적 실천이 이루어지는 체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렌트를 통해 생각해 볼 부분이다. 물론 아렌트는 다수결주의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깊이 의식하고 있다.

아울러 아렌트가 『공화국의 위기』에서 다루고 있는, 정치에서 거짓이 작동하는 문제, 그리고 시민불복종운동의 정치적 의의, 권력과 폭력의 구분 등도 우리의 경험들을 반추하기 위해 꼭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다.”

정치적 양극화에 대해서는 아렌트가 어떤 해법을 제시하는가.
“통일에 대비해야 하는 우리는 한국 내부 갈등, 남과 북의 이질화, 분단의 강화를 고민하게 된다. 아렌트와 함께 생각해 봐야 할 주제는 ‘용서’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용서를 통한 화해와 통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로 ‘용서’가 우리에게 중요한 화두가 되었던 적은 없다. 이 화두는 언제나 ‘아직도 성급한’ 주제로 간주됐다. 아렌트는 용서가 없으면 정치공동체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가 말하는 용서는 개인적이거나 종교적인 용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용서’다. 우리 정치에는 ‘죽임의 정치’가 만연했다. 정치적 용서 없는 상생의 정치는 없다.”

‘한나아렌트학교’를 위해 김비환(성균관대)·신충식(경희대)·이진우(포스텍)·홍원표(한국외대) 교수 등 아렌트 전공 학자 11명이 나선다. 강의는 31일부터 매주 목요일 서울 중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열린다. 수강료는 강의당 2만원, 전체를 들을 경우 38만원이다(문의 031-955-2009).

김환영 논설위원
kim.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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