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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은 악질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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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참여센터장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참여센터장

갑질사회. 구글 트렌드로 ‘갑질’의 검색 동향을 살펴보면 몇 개의 고점(高點)이 관찰됩니다. 2014년 말 소위 땅콩 회항, 백화점 모녀부터 국정 농단, 최근의 대기업 회장, 대장 부부 같은 단어가 떠올리는 갑질의 트라우마. 그 사이사이에 대리점 강매, 인분 교수를 포함한 교수 갑질, 승무원·콜센터 직원 등 감정노동자에 대한 폭력을 비롯해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실은 그 이상으로 우리 일상에 가득합니다. 식당과 편의점 근로자에 대한 반말과 인격적 무시, 직장 상사의 억압적 군기 잡기, 훈육이라는 명분의 가정폭력 등등. 갑질사회로 명명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갑질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상위에 대한 을이자 하위에 대한 갑이 됩니다. 갑을 경계선상의 위태로움. 언제 을로 바뀌어 갑질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갑의 자리에서 공격성으로 드러나는 건지도 모릅니다.

갑질은 시스템과 인격이 공범으로 만들어낸 악 #인간 존엄성 지킬 문명사회의 보호장치가 필요

갑질본색. 갑을관계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관계로 정의됩니다. 몇 유형으로 명명해 보았습니다. 자신의 부하·학생·자녀를 본인 소유물로 생각하는 주인형 갑질. 돈으로 산 물품과 서비스를 넘어 사람까지 샀다고 착각하는 졸부형 갑질. 상명하복의 폭력문화가 대를 물려 반복되는 집단형 갑질. 조직과 자신의 힘을 혼동하는 호가호위형 갑질. 피해자 을이 가해자가 되어 다른 을에 전치하는 을 간 갑질…. 그러면 이것은 구조적 문제인가 개인의 일탈인가? 둘은 공범입니다. 구조 차원에서 과도한 수직적 위계질서, 불투명한 폐쇄형 조직, 돈과 권력이 인간을 앞서는 비인간적 물신 숭배. 개인 차원에서 미숙한 분노 조절 능력, 그리고 갑질의 득실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인지기능 손상이 결합돼 갑질을 만듭니다. 안타깝게도 그 하나하나가 우리 사회의 특징들입니다.

갑질은 봉건시대로부터 근대화되지 못하고 봉건적 신분사회의 주종관계에 고착된 잔재입니다. 인간 존엄과 평등의 민주 가치로 성장하지 못한 시대적 낙오자의 모습이 갑질로 드러납니다. 갑질이 마치 승리의 트로피이자 권력의 상징인 양 과시하지만 미개함과 야만성을 드러낼 뿐입니다.

을이 갑질에 무력한 근본적 이유는 사회안전망의 부재에 있습니다. 한번 세상 밖으로 낙오되면 다음번 기회는 없을 거라는 불안. 유연화된 노동시장에서 안정된 삶은 보장되지 않기에 생존을 인질로 잡힌 을은 때로 병·정이 되는 것마저 감수합니다.

때로 갑은 온화한 척 위로합니다, 인생은 원래 아픈 거라고. 무한한 노력으로 갑이 돼라 등을 떠밀고, 명상과 즐거움을 통해 고통을 잊으라 유혹합니다. 권위에의 순종이 미덕이라고 세상에의 동화가 성숙이라고 세뇌합니다. 가해의 순간조차 갑은 설교합니다, 아픈 만큼 성숙하게 자신이 만들어주고 있노라고. 을은 견뎌내며 불합리하고 병적인 세상에 적응하기를 강요받습니다. 그러나 크리슈나무르티는 말합니다, 건강하지 않은 세상에 잘 적응하는 것은 건강의 척도가 아니라고!

갑이 스스로 개과천선해 선을 베풀기 바라는 자체가 갑을 프레임에 갇힌 사고입니다. 적극적 노력 없이는 갑의 세상이 더욱 공고해질 것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평등하며 갑을관계는 직업적 교환관계에 국한될 뿐이라는 상식이 공유돼야 합니다. 승리하면 갑질권 포함 모든 것을 얻는 듯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은 타인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다양한 삶을 경험하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또한 을의 존엄성을 지키는 문명사회의 보호장치가 필요합니다. 문제를 제기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고 오히려 개인만 위험할 거라는 불신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조금씩 진보시키는 한 명 한 명의 양심과 용기에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갑질은 사회 탓이라고 개인은 사회에 미루고 개인의 일탈 탓이라고 사회는 사람에게 미루지만, 갑질은 시스템과 인격이 공범으로 만들어낸 악입니다. 갑질은 심각한 질병, 악질(惡疾)입니다.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는 병입니다.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참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