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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인스타 성지’ 순례, 필름 카메라 … 2030 나 홀로 즐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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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해방·여유 … 청춘들의 여름휴가

홀로 휴가를 떠나 여유와 일탈을 즐기는 젊은층이 늘고 있다.

홀로 휴가를 떠나 여유와 일탈을 즐기는 젊은층이 늘고 있다.

직장인 이경진(26)씨는 일본 도쿄로 7박8일의 휴가를 떠난다. 27일 시작되는 여행 일정의 절반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이씨는 “혼자서 시간을 갖고 쉬고 싶었어요. 쉬면서 도쿄에서 꼭 하고 싶은 건 ‘마리오 카트’ 운전이에요”라고 말했다. 마리오 카트는 레이싱 게임의 캐릭터 분장을 하고 게임에 나오는 카트를 운전하며 도쿄를 여행하는 관광 상품이다. 지난달 제주도로 휴가를 다녀온 조모(30)씨는 제주도 중문 해변에서 홀로 서핑을 했다. 조씨는 “때론 혼자 가는 게 더 편하더라고요. 눈치 볼 필요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웃었다.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의미)’라는 유행어가 2017년 여름을 접수해서일까.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일탈을 즐기는 ‘나 홀로 여행족’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평소엔 엄두 못 내던 문신 새기려 #휴가 앞둔 직장인 타투숍에 몰려 #답사형 관광 대신 맛집·카페 들러 #눈치 안 보고 자신만의 휴식 만끽 #돌아와 아날로그 필름 현상하며 #여행의 여운 되도록 오래 되새겨

지난 11일 저녁 신촌의 타투·헤나숍에는 퇴근한 직장인과 20대 대학생들로 성황이었다. 직장인 김모(30·여)씨는 홀로 떠나는 여름휴가를 앞두고 있다고 했다. 설레는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리던 김씨는 “뭔가 일탈해 보고 싶었다. 타투는 하고 싶지만 안 지워지니 부담스럽고. 친구가 헤나를 추천해 줘 받으러 왔다”고 말했다. 헤나는 잉크를 넣은 바늘 대신 붓을 쓴다는 점이 다를 뿐 시술 과정은 타투와 유사하다. 보통 헤나는 2~3일 뒤 지워지기 시작해 1주일쯤 후면 모두 사라진다. 딱 휴가 기간 동안만 평소엔 엄두를 내지 못하던 문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신촌의 타투숍에서 타투이스트 A씨가 고객에게 헤나를 시술하고 있다. [여성국 기자]

신촌의 타투숍에서 타투이스트 A씨가 고객에게 헤나를 시술하고 있다. [여성국 기자]

가게 주인인 타투이스트 A씨는 손님들이 평소보다 두 배 정도 늘었다고 했다. 그는 “5월부터 타투 문의를 하는 젊은 손님이 는다. 7, 8월 휴가철을 앞두고는 헤나 시술 문의가 많다. 평상시 두 배인 하루 평균 10명 정도가 시술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며칠 전에는 주요 기관에서 일하는 젊은 경호원이 휴가를 앞두고 헤나를 받았다”고 귀띔했다. 일탈을 꿈꾸며 나 홀로 여행을 떠나는 2030들은 유적지 앞에서 사진을 찍는 ‘답사형’ 관광보다는 자신만의 휴식을 선호한다. ‘인스타 성지’에 방문해 도시를 즐긴다. 인스타 성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서 많이 알려진 장소로,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카페·상점·거리 등이 있다. 외국의 클럽만 쫓아다니기도 한다. 기존 관광객들의 관광 필수 코스와는 동선이 다르다.

◆관광지 대신 ‘인스타 성지’에서 인증샷=일본 오사카로 여름휴가를 떠난 임모(25·여)씨는 지난 16일 나카자키초 카페 거리를 방문했다. 오후 3시쯤 카페 거리에서 기자와 만난 임씨는 오사카의 신사나 유적지를 돌아다니는 관광 대신 도심에서 휴식을 택했다고 했다.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여러 번 사진을 찍었다. 그는 “인스타나 SNS에서 카페 거리가 예쁘다고 해서 와 봤어요. 날도 더운데 굳이 오사카성은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신사이바시 근처 유명한 카페에 가고 백화점에서 쇼핑하면서 보냈어요”라고 말했다. ‘성지’ 중 하나인 교토의 한 카페에서도 젊은 한국 여행객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커피를 받은 뒤 ‘인증샷’을 남겼다.

직장인 김기태(26)씨가 휴가를 떠나기 전 찍은 여권과 카메라. [사진 김기태]

직장인 김기태(26)씨가 휴가를 떠나기 전 찍은 여권과 카메라. [사진 김기태]

이날 오후 11시30분쯤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오사카의 한 클럽 앞에서 만난 이지환(28·가명)씨는 한껏 들떠 있었다. 이씨는 “점심 먹을 때쯤 일어나서 밥 먹고 쇼핑하다가 저녁은 맛집을 찾아가요. 밤에는 SNS에서 핫한 클럽이나 펍에 가서 매일매일을 불태우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틀 연속 클럽에 춤을 추러 왔다는 그는 “한국 사람이 엄청 많아요. 저 같은 사람들이겠죠. 근데 어제 보니 여기도 남자가 훨씬 많더라고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구글맵 보며 여행하고 ‘필카’ 사진 찰칵=관광지 대신 ‘인스타 성지’를 방문하고, 유적지 대신 도시의 문화를 즐기는 이들은 ‘구글맵’을 통해 그때그때 여행 장소를 찾아 돌아다닌다. 디지털 문명의 편리함을 만끽하면서도 아날로그 감성을 추구하기도 한다. 스마트폰 카메라 이외에도 필름 카메라를 준비하는 여행객이 적지 않다. 신중하게 사진을 찍어 여행의 순간을 담고, 한국으로 돌아가서는 필름 현상하면서 여행의 여운을 길게 느낀다.

직장인 윤운산(29)씨가 혼자 울릉도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 삼각대로 찍은 사진. [사진 윤운산]

직장인 윤운산(29)씨가 혼자 울릉도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 삼각대로 찍은 사진. [사진 윤운산]

직장인 김기태(26)씨는 올여름 휴가 때 삼촌이 쓰던 10년 넘은 필름 카메라를 챙겨갔다. 김씨는 “필름 수가 한정돼 있어 신중하게 바라보고 내가 원하는 순간을 기다리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면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되고 여행을 다녀와서도 사진을 기다리는 설렘이 여행지에서의 기분을 되살아나게 한다”고 말했다.

오사카 도톤보리의 할인 상점에서는 일회용 카메라를 대량 구입하는 한국인이 적지 않다. 일회용 카메라를 5개나 구입한 여행객 양모(29)씨는 “일본은 일회용 카메라 가격이 한국의 절반 정도다”며 “한국에서 일회용 카메라를 사달라고 부탁한다는 친구도 많고, 여행 중 찍은 사진들을 현상해 간직하려고 일회용 카메라를 잔뜩 사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엔 아날로그 감성을 적용한 디지털카메라 애플리케이션(앱)도 등장했다. 사진을 찍은 뒤 3일이 지나야 사진을 확인을 할 수 있는 ‘구닥’이라는 앱은 5주째 국내 아이폰 앱스토어 유료 앱 부문에서 1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달 7일 출시된 이 앱은 20일까지 한 달 반 만에 42만5000명이 내려받았다.

2030이 홀로 일탈을 꿈꾸며 휴가를 떠나고 디지털을 역행해 아날로그 감성을 즐기는 것은 왜일까.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날로그의 기다림이 주는 재미도 있지만 속도와 기술 문명에 대한 피로감이 휴가 기간에 아날로그 감성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긴 근로시간과 권위적인 기업 문화에 시달린 젊은이들은 규범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일탈을 꿈꾸는 나 홀로 여행이 많아지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일본 클럽 여행을 즐기던 이씨는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어딜 가서 뭘 하든 내가 좋으면 되는 거니까요. 이 도시에 가면 꼭 여길 가야 한다 이런 것도 압박인 것 같아요. 최소한 휴가 기간만은 나 하고 싶은대로 흘러가고 싶어요. 내 맘대로 즐기고 자유롭고 싶어요. 길어야 1주일인데. 저는 춤추러 들어가 볼게요.”

[S BOX] 나 홀로 여행족 2년 새 두 배로 … 인터넷 언급도 급증세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나 홀로 여행객’이 급증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6월 국민여행 실태조사를 토대로 재구성한 자료에 따르면 나 홀로 여행객 비중은 2013년 4.7%에서 2015년 10.3%로 늘었다.

산업연구원 이순학 연구원은 “싱글 라이프 추구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 향후 1인 여행객의 증가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고 분석했다. 빅데이터 트렌드 분석업체 다음소프트가 인터넷상 버즈량(언급량)을 분석한 결과 ‘나 홀로 여행’ 관련 언급량이 크게 늘었다. 2015년 1만4073건에서 2016년 1만9706건, 2017년 상반기(1~7월) 기준 1만139건을 기록했다. 혼자 여행하는 행위에 대한 감정 분석 결과도 긍정 비율이 75%였다.

‘관광’보다는 ‘휴양과 휴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다음소프트 분석에 따르면 ‘관광’ 관련 언급량은 2015년 35만2367건에서 2016년 34만3776건으로 줄었다. 2017년 상반기엔 16만108건으로 감소세다. 반면에 ‘휴양’ 관련 언급은 2015년 5만798건에서 2016년 5만4698건, 2017년 상반기 기준 2만6704건으로 늘고 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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