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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증오의 광풍 막을 방패, 웃음만이 희망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
오노 히로유키 지음
양지연 옮김, 사계절

나흘 차이로 태어난 콧수염 두 남자 #세기의 익살로 세기의 폭군 무력화 #사랑에 굶주린 자만이 남을 미워해 #평화 선동가 메시지 지금도 유효

나비넥타이 모양의 콧수염으로 비슷한 두 남자는 악연이었을까. 나흘 상관으로 태어난 찰스 스펜서 채플린(1889~1977)과 아돌프 히틀러(1889~1945)는 20세기의 빛과 그림자로 비유된다. 영국 출신의 희극배우이자 영화감독으로 세태 풍자의 거장으로 남은 채플린, 게르만 민족주의를 앞세워 유대인 학살과 제2차 세계대전의 괴물이 돼 독재자의 대명사가 된 히틀러. 두사람은 이미지가 강력한 힘으로 떠오른 시기에 이 신무기를 들고 미디어라는 전쟁터를 누빈 공통점이 있다.

일본 채플린협회 회장이자 영화·연극 연구자인 오노 히로유키(大野裕之)는 단연 채플린의 손을 들어준다. 채플린이 1940년 발표한 영화 ‘위대한 독재자’를, 나치당 당수로 취임한 뒤 총통이 된 히틀러의 선전용 필름 ‘의지의 승리’와 비교하며 “세기의 익살꾼은 세기의 권력자에게 승리했다”고 판정했다. 특히 ‘위대한 독재자’의 마지막 연설 대목은 관객의 능동적 참여를 호소한 명대사이자 명장면이라고 분석한다.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명석한 판단으로 현실을 직시하면서 ‘영원한 현재성’이라 부를 수 있는 진심과 사랑을 웃음으로 퍼뜨린 덕이다.

독자가 책장을 열자마자 읽게 되는 6분 남짓 연설 대본은 채플린이 세계를 향해 던진 숭고한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함을 웅변한다. “탐욕이 양심을 짓밟아 미움의 벽을 쌓았고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문명의 발달 속도는 소외된 계급을, 경제성장은 빈곤한 계층을 만들었으며 지식은 인간을 교활하게 만들었습니다. 생각할 뿐 느낄 줄을 모릅니다. 물질보다는 정신이, 지식보다는 진실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 미워하지 맙시다! 사랑에 굶주린 자만이 남을 미워합니다.”(9~14쪽)

찰리 채플린은 아돌프 히틀러보다 나흘 먼저 태어났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세상을 꿈꿨다. [사진 사계절출판사]

찰리 채플린은 아돌프 히틀러보다 나흘 먼저 태어났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세상을 꿈꿨다. [사진 사계절출판사]

채플린의 이미지가 히틀러의 이미지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지은이는 “전 세계 사람들이 웃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오직 우직함과 유머만이 ‘히틀러적인 것’에 대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위대한 독재자’는 가르쳐준다는 설명이다.

“채플린은 자신을 ‘평화 선동가(Peacemonger)’라고 칭했다. ‘전쟁 선동가(Warmonger)’를 풍자한 조어인데 ‘평화주의자(Pacifist)’라고 말하지 않았던 점이 흥미롭다. 평화를 부르짖은들 전쟁을 부추기는 치들의 독(毒)에는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전쟁을 부추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평화를 부추기면 된다.”(316쪽)

오늘도 지구 곳곳에서는 ‘채플린적인 것’과 ‘히틀러적인 것’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 샬러츠빌에서 벌어진 백인우월주의 시위대와 인종차별 반대 단체의 충돌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닌 채플린적인 것과 트럼프 현 대통령이 보인 히틀러적인 것을 새삼 생각하게 만들었다. 백인 유권자에게 유색인종과 이민자에 대한 증오의 불을 지른 트럼프에 맞서 오바마는 트위터에 올린 한마디로 채플린적인 투쟁을 이어간다. “피부색이나 배경 또는 종교 때문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도록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고난의 시대가 닥쳐왔는가. 채플린은 말했다. “지금처럼 세상에 웃음이 절실한 때는 없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웃음은 광기에 대항하는 방패입니다.” 책의 결론으로 위안을 삼아보자. “우리에게는 채플린의 웃음이 있다. 그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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