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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호의 이나불?] 송선미 남편 빈소에 몰래카메라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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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호의 이나불?]은 누군가는 불편해할지 모르는 대중문화 속 논란거리를 생각해보는 기사입니다. 이나불은 ‘이거 나만 불편해?’의 줄임말 입니다. 메일, 댓글, 중앙일보 ‘노진호’ 기자페이지로 의견 주시면 고민하겠습니다. 이 코너는 중앙일보 문화부 페이스북 계정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24일 MBC '리얼스토리 눈'은 송선미 남편 살인사건을 다루며, 몰래카메라로 남편의 빈소를 촬영했다. [사진 MBC]

24일 MBC '리얼스토리 눈'은 송선미 남편 살인사건을 다루며, 몰래카메라로 남편의 빈소를 촬영했다. [사진 MBC]

지난 25일 MBC '리얼스토리 눈'은 배우 송선미의 남편 살인 사건을 소재로 다뤘다. '리얼스토리 눈'은 각종 사건 사고들을 소재로 사건 경위를 다루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다. 여신도를 암매장한 교주 사건을 다루거나 누드 펜션의 실체 등을 다루는 식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송선미와 남편의 11년 전 결혼식 장면에서부터 남편에 관해 얘기하는 송선미의 이전 인터뷰 영상, 그리고 남편 살인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는 여러 장면을 방송에 담았다.

송선미 남편 살인사건 화제 삼은 MBC #빈소에 몰래카메라까지 들고가 송선미 촬영 #방송사의 공적 책임 잊으면 존재 이유 없어

송선미 남편의 살인사건은 유명인의 가족에 관한 일이며, 대낮에 강남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라 대중의 관심이 쏠린 사건이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이 높다는 사실 자체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명분으로 활용해 어떤 내용이라도 자유롭게 방송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해당 방송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국민 정서를 해치지 않으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는지, 유족과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지는 않는지,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지는 않는지 등 여러 사안을 고려해야 방송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리얼스토리 눈의 접근은 이러한 고민 자체가 거의 없어 보인다. 둘 사이에 딸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거나, "동맥이 끊어졌는데, 피가 얼마나 나왔겠어"라고 얘기하는 현장 관계자 인터뷰를 여과 없이 그대로 방송하는 등 그저 대중의 관음증적 욕구를 자극하고, 이를 통해 시청률을 높이려는 수준 낮은 의도가 읽힐 뿐이다.

24일 MBC '리얼스토리 눈'은 몰래카메라로 송선미 남편의 빈소에서 울고 있는 송선미의 모습을 촬영해 방송했다. [사진 MBC]

24일 MBC '리얼스토리 눈'은 몰래카메라로 송선미 남편의 빈소에서 울고 있는 송선미의 모습을 촬영해 방송했다. [사진 MBC]

가장 황당했던 부분은 장례식장의 몰래카메라 영상이다. 이는 명백히 방송 윤리에 어긋난 행위다. '리얼스토리 눈'의 제작진은 송선미 남편의 장례식장까지 몰래 찾아갔다. 대부분 블러(탈 초점) 처리된 영상 속에서 조문을 위해 찾은 엄태웅 등 연예인과 그들이 보낸 근조 화환을 그대로 방송했다. 특히 MBC는 초췌한 모습으로 울고 있는 송선미의 모습까지 전파에 내보냈다.

'리얼스토리 눈'이 몰래카메라로 논란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5년 11월 '두 여자는 왜 1인 8역에 속았나', 지난해 1월 '시흥 아내 살인사건', 지난해 4월 '환갑의 소매치기 엄마' 편을 촬영하기 위해 교도소 등에서 몰래카메라 촬영을 활용했다. 이 때문에 이를 촬영했던 외주 제작사의 PD 4명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및 건조물 침입’ 혐의로 기소돼 2명은 각각 벌금 300만원, 2명은 각각 벌금 100만원씩을 선고받았다. 당시 한국PD협회는 "교정시설 재소자에 대한 무리한 취재를 지시하고 방조한 MBC 본사의 CP는 정작 아무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MBC 본사가 이러한 선정적이고 비윤리적인 취재를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는 얘기였다.

타방송사도 마찬가지다. 지난 10일 K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속보이는 TV 인사이드'도 미성년자인 故 최진실 씨의 딸 최준희 양과 외할머니 사이의 갈등을 방송하려 했다. 방송 직전, 최양이 방영에 대한 거부의사를 표명해 아직까지 방송되지 못 하고 있다. 이런 장면들은 2012년 종합편성채널이 생겨나 개국하던 초기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종편채널들은 개국 당시 주목을 받고 화제를 끌기 위해 선정적인 내용들을 잇따라 다루며 '누가 더 막 나가나'식 경쟁을 했다. 물론 지금도 일부 종편채널은 그런 행태를 답습하고 있지만 상당 부분 개선되는 상황인데, 공영방송과 지상파가 오히려 그 같은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각종 OTT(Over The Top·인터넷 기반의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이 쏟아지고, 볼거리들이 풍부해지면서 지상파 시청률은 잠식당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지상파는 더 절실하게 시청률에 매달리고 그런 잣대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정도 또한 심화되고 있다. 하지만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다. 공중파 방송상의 공적 책임은 언제나 시청률이나 수익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그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지상파 방송사의 존립 근거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지상파가 공짜로 사용하고 있는 방송 전파는 공공재(公共財)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잊은 것 같아 하는 말이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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