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시각각

자유한국당, 해체가 답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요즘 자유한국당 소속 시장·군수들은 “한국당 국회의원 XX들”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지방선거가 목전에 다가오는데 당 개혁은 이뤄진 게 하나도 없고 지지율은 바닥을 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대구·경북(TK)을 제외한 전국에서 한국당 지자체장이 멸종할 것이란 괴담이 진담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당 금배지들은 천하태평이다. 임기가 3년 가까이 남아 있으니 절박감이 없는 거다. 자신들 배에 칼을 대는 개혁은 지방선거 결과를 보고 난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는 속내다. 오직 선거가 코앞에 다가온 지자체장들만 발을 동동 구를 뿐이다. “우리가 실험용 쥐냐”고 이들은 절규한다. 내년 선거에서 자신들이 죽는지, 사는지 지켜본 뒤에야 개혁 여부를 정하겠다는 한국당 의원들이 그렇게 미울 수 없다는 거다.

박근혜 퇴출만으론 민심 못잡아 #자진 해산과 당사 반납이 돌파구

한국당 지도부도 이런 아우성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꺼낸 게 박근혜 출당 카드다. 하지만 이미 ‘정치적 사체’가 된 박근혜에게서 당원증을 반납받는 걸로 개혁을 퉁치고 가겠다면 소가 웃을 일이다. 출당론을 꺼낸 동기부터 천박하다. 무너진 보수의 가치를 재건하겠다는 진정성은 찾아볼 수 없고 “박근혜를 퇴출하면 바른정당이 절로 기어들어와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정치공학만 춤춘다. 민심을 얕봐도 너무 얕본다. 친박들의 행태는 더 가관이다. 박근혜 탄핵에 따른 당연한 후속조치인 출당조차 도끼눈 부릅뜨고 가로막고 있다. 시신 유골에 애착을 느끼는 네크로필리아 환자들 같다. 구제불능이다.

한국당이 살길은 진정성 없는 미봉책인 박근혜 출당이 아니라 보수의 재구성이다. 스스로 자신을 해체하라. 그리고 친박 적폐세력을 빼고 생각 있는 보수들을 결집시켜 새 정당을 창당하라. 한국당이 사심없이 이런 결단을 내린다면 바른정당은 오지 말라고 해도 합류할 거다. 단, 비례의원 17명이 신당에 합류할 수 있도록 당 해체 전에 이들을 출당시켜야 한다. 안 그러면 이들은 의원직을 잃기 때문이다.

공룡급 제1 야당의 자진해산이 쉬운 일은 아니란 건 안다. 당장 의원총회에서 격론이 벌어질 것이다. 친박들은 “당이 싫으면 너희나 나가라”며 고성을 지를 것이다. 당을 해체하면 재산가치가 수백억원에 달하는 전국 시·도당 당사들을 나라에 넘겨야 하는 문제도 논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오히려 한국당에 기회가 될 수 있다. 노무현 정권 초반 ‘차떼기당’으로 몰려 고사 직전까지 갔던 한나라당이 어떻게 했나. 중앙당사를 국고에 헌납하고 천막당사에서 풍찬노숙한 끝에 오명을 벗고 재기에 성공했지 않았나. 그때 남겨둔 자산인 시·도당 당사들을 이번 기회에 국민에게 돌려주고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빈사상태의 보수가 회생할 희망은 반드시 생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80%를 넘나든다. 41% 득표로 집권한 대통령의 지지율이 두 배로 불어난 건 한국당의 기여가 결정적이다. 문 대통령이 싫지만, 그렇다고 친박들이 판치는 한국당을 지지하는 건 자존심상 용납이 안 되는 보수들이 무당층으로 이탈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를 ‘물 만난 고기’로 만들어 준 책임의 8할은 한국당에 있다. 달랑 박근혜 한 명 쫓아낸 걸로 민심을 되찾을 생각일랑 꿈에도 하지 말라. 그나마 친박과 공존하는 현재의 한국당 체제로는 박근혜 출당 하나 성사시키기도 쉽지 않다. 자진 해산을 통해 친박과 확실히 단절하고 개혁보수를 재조직하는 것만이 살길이다. 수명이 다한 유신 보수, 골통 보수, TK 기득권 보수를 역사의 뒤안길로 던져버리고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보수로 거듭나라.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