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2m5cm 이상인 선수만 비즈니스석을 탄다고? 이게 국가대표에 대한 적절한 대우인가?’ 한국 남자농구대표팀은 지난 22일 아시아컵을 마치고 레바논에서 귀국했다. 당시 12명의 대표선수 중 3명만 비즈니스석을 이용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한 농구팬은 포털사이트에 이런 댓글을 남겼다.
일본 꺾고 아시아컵 3위 올랐는데 #선수 12명 중 3명에만 비즈니스석 #좁은 자리서 다리 못편 동료 위해 #15시간 비행 동안 돌아가며 앉아 #농구협 1년 예산 64억, 축구협 699억 #축구대표, 장거리 모두 비즈니스석
허재(52)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 대표팀(세계 30위)은 지난 21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끝난 국제농구연맹 아시아컵에서 3위에 올랐다. 2015년 6위에 그쳤던 한국은 광복절에 일본을 꺾었고, 8강에서 필리핀을 32점 차로 대파했다.
대표 선수들은 카타르를 경유해 15시간 만에 귀국했다. 그런데 대표선수 12명 중 3명만 비즈니스칸에 탔다. 대한농구협회는 지난해까지 키가 2m 이상인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비즈니스석을 제공했지만, 올해부터는 기준을 키 2m5cm로 높였다. 유일하게 2m5cm가 넘는 LG 김종규(26·2m6cm)와 고참인 KGC인삼공사 오세근(30·2m)과 KCC 이정현(30·1m91cm) 등 3명만 비즈니스석을 이용했다. 이들은 이코노미석에 앉은 동료들을 생각해 돌아가며 비즈니스석을 이용하도록 했다.
문성은 대한농구협회 사무처장은 “대표팀에 오래 기여한 선수가 키가 작다는 이유로 비즈니스석에 앉지 못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있어서 신장 기준을 2m5cm로 높이는 대신 코치진이 비즈니스석에 앉을 2명을 고를 권한을 줬다. 그러다보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농구팬 유창용(34)씨는 “한국 대표팀의 평균신장은 1m96cm다. 이코노미석에 앉아 장거리를 이동하는 건 학대에 가깝다”고 비난했다. 일반적으로 이코노미석 앞뒤 간격은 약 80cm, 좌우 폭은 약 40cm다. 모비스 이종현(23·2m3cm)처럼 덩치가 큰 농구선수들은 다리를 뻗을 공간조차 없다.
주장 오세근은 “나보다 키가 큰 어린 선수들은 이코노미석을 이용했다. 그나마 비상구 좌석이라도 확보하면 다행이다. 10시간 이상 장거리 비행은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방열(76) 대한농구협회 회장은 “농구협회는 남녀 연령별 대표 등 10팀을 운영한다. 어느 한 팀에만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순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농구인은 “결국 대한농구협회가 자생능력을 갖추지 못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어 벌어진 현상”이라고 말했다. 대한농구협회 1년 예산은 2016년 기준 64억원이다. 대한축구협회 1년 예산 699억원의 10분의 1 수준이다.
배구 대표팀의 사정도 비슷하다. 대한배구협회는 지난달 체코에서 열린 그랑프리 결선에 여자대표팀 선수 12명 중 6명에게 비즈니스석을 배정했다. 오한남(65) 대한배구협회 회장은 지난달 25일 “협회 재정이 열악해 지원에 한계가 있다. 내 키가 1m83cm인데 1m85cm 이상인 선수는 비즈니스석으로, 그보다 작은 선수는 이코노미석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배구협회 1년 예산은 65억원이다. 그나마 선수 4명이 출전한 IBK 기업은행이 추가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나서면서 12명이 모두 비즈니석을 이용했다. 여자배구 대표선수들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뒤에도 예산이 없어서 김치찌개로 회식을 한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에도 배구협회는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았다.
반면 다음달 5일 밤 12시 타슈켄트에서 열리는 우즈베키스탄과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10차전에 출전하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6명 선수 전원이 비즈니스석에 앉는다. 가격은 이코노미석(80만원)의 세 배인 200만원대다. 대한축구협회는 2013년 레바논 원정에는 전세기를 띄우기도 했다. 축구 대표팀도 보통 4시간 이하 가까운 거리는 이코노미석을 이용한다.
파주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 중인 축구대표팀의 하루 식단의 원가는 7만5000원이다. 조식은 가벼운 뷔페식이고, 점심과 저녁은 3만원대다. 이번 소집 기간엔 장어구이·전복구이 등 보양식이 제공됐다. 원정경기 땐 조리장이 동행한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