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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호 시 "아리스토텔레스의 …', 편혜영 단편 '개의 밤' 본심에

중앙일보

입력

<미당문학상 후보작>

 조연호 - '아리스토텔레스의 나무 -시인의 악기' 등 13편

 아리스토텔레스의 나무 -시인의 악기

 (…)

 그 나무에 젊은 남녀가 목을 맸다. 이것이 죽음인 이유는 각각 체념의 길이로 흘러나온 물이 아직 이 세계의 실현을 불평등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실현을? 신이 실현의 묘지기라는 실현을.

 첫 부분을 마지막에서 반복할 즈음의 음악은 신보다 정교하다. 그렇기에 근대음악에는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여성이 없다. 몰래 나무블록에 표시해둔 대낮은 자신은 지금껏 외부적으로 설계될 수 없는 조음(調音)을 해왔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죽기 가장 좋은 새는 새 떼일 때의 새다.

 평범한 공기를 흔들어보아도 그 안에서는 고통에 비해 너무 작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쏟아진다. 고막 안엔 소리보다 가여운 사람이 들어 있었다. 그 사람이 말하길, 자기를 여기서 빼내지 못하는 것은 단 하나의 음성이 아니라 너무 많은 음성 때문에 그러하다고 한다. 그것은 그렇다고 말할 수 없게 취급되는 소리의 유일한 선율적 적대감이다. 은밀한 배우지만 인격의 번역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의 귀가 은둔예술로 완결되기는 몹시 어려웠다. 무정함을 손질하기 위해 하늘에서는 전정가위가 내려왔다. 그들 모두는 단절을 평면에 되파는 사람을 오래 그리워하고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썼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어떤 사람이? 내가 쓴 글을 쓰기에 더 그럴 듯한 사람이. 그러니까 낮은 신분의 고기는 모든 것의 시이자 시의 모든 것이므로. 어떤 구절도 썩지 않는다. 그에 따라 영원의 크기가 한 사람 이상인 자는 죽은 한 사람보다 이미 덜 죽은 자였다. “신의 크기를 알고 싶거든 골방에 들어가라.” 그렇게 말한 수도사에겐 해가 져 있는 동안의 침실이 없었다.  (…)

 ◆조연호
 1969년 충남 천안 출생. 94년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저녁의 기원』 『죽음에 이르는 계절』『천문』『농경시』『암흑향』.

 #내가 읽은 조연호 - 김행숙 예심위원
“신의 크기를 알고 싶거든 골방에 들어가라.” 그렇게 말한 수도사의 정체를 밝히면 시인 조연호가 아닐까. 그의 시는 “은둔 예술”을 꿈꾼다. 21세기를 사는 조연호가 골방에서 더불어 노닥거리는 벗들은 아리스토텔레스, 노자, 장자, 신화시대의 목동과 농부, 붓다, 예수, 니체…등등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시간의 운명에서 풀려난 죽은 자들이다. 이들과 목소리를 섞으면서 그의 시는 자본주의적인 시간 열차의 궤도를 이탈하여 시대와 국적의 규정성이 지워진 ‘조연호적’인 시공간을 창출한다.
 그의 시에서 화자(話者)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나 자연철학자 같고, 중세의 수사 같고, 셰익스피어 희곡의 유령들 같고, 고대 중국에서 노(老) 선생을 따르던 무리 중 유난히 낯을 많이 가렸던 한 사람 같고, 예수의 제자를 자처했으나 밤이면 번민과 의심에 휩싸여 뒤척이던 자 같고,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촛불 아래 책을 읽는 삶을 선택한 고려의 어느 선비 같고, …그 모든 것 같아서 ‘조연호적’인 목소리를 낸다. 그는 독자적인 조연호 풍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조연호의 독자성은 그가 수집하고 세공하고 재배치하는 언어 자체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는 이를테면, 문자라고는 한자뿐이었던 세계에서 1443년에 처음으로 한글이라는 신기한 발명품과 조우하여 어리둥절한 시인 같다. 그에게 시인이란 언어 사용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사람, 새로운 언어를 수집하고 새롭게 조합하고 배치하는 즐거움에 빠진 사람, 언어 앞에서 호기심으로 두근거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반짝거리는 사람이다. 그의 문법은 현실에서는 거의 쓸모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현실 바깥을 만들어내는 미학적인 힘을 내장하고 있다. 이 고독한 탐미주의자의 실험은 고집스럽고 숭고하다.

 ◆김행숙
 1970년 서울 출생.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춘기』 『이별의 능력』 『타인의 의미』 『에코의 초상』. 노작문학상, 전봉건문학상, 미당문학상 수상. 현재 강남대 국문과 교수.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편혜영 - '개의 밤'(문학동네 2016년 겨울호)

 장의 아내요. 입원 중입니다. 거기 꽃을 보내뒀습니다.
 얼마짜리 꽃입니까?
 이사가 물었다. 이사의 질문은 종종 예측을 빗나갈 때가 있는데, 지금이 그랬다. 당연히 어디가 아프냐고 물을 줄 안 것이다. 예상치 못한 질문 때문에 김은 장의 노모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십만원짜립니다.
 십만원이면, 큰 돈이에요.
 이사가 말했다. 김은 그 말의 의미를 헤아리느라 시선을 떨구었고 이사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구두는 흠 하나 없이 잘 닦여 있었다. 험한 길은 한번도 걷지 않은 신발처럼 보였다.
 이런 일은 선의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거 나쁜 겁니다. 동정하는 거죠. 오히려 차별이 됩니다.

 ◆편혜영
1972년 서울 출생. 서울예대 문창과, 한양대 국문과 대학원.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아오이 가든』『사육장 쪽으로』『저녁의 구애』『밤이 지나간다』, 장편 『재와 빨강』『서쪽 숲에 갔다』『선의 법칙』『홀』.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현재 명지대 문창과 교수.

 #내가 읽은 편혜영 - 양윤의 예심위원
 편혜영이 여전하다. 편혜영이 달라졌다. 모순된 생각을 교대로 하며 소설을 읽었다. 괴물과 악몽과 악무한의 세계는 여전한데, 문득 다시 보면 우리는 일상의 세계에 처해 있다. 이 겹침은 어떻게 가능한가? '개의 밤'의 주인공 ‘김’은 이렇게 말한다. “미친 놈, 미치지도 않았으면서.” 김의 처남이 군대에서 후임병에게 끔찍하고 지속적인 가혹행위를 했고, 벌을 면해 보려고 정신감정을 받았는데 정상 소견이 나왔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처남의 가족이 그를 변호하면서 하는 말이다. 그들은 처남이 유학생활을 한 탓에 한국문화를 잘 몰라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서 그랬다고 강변한다. 처남이 피해자라는 것이다. 김은 장인의 명령을 받아 직장에서 탄원서를 수합하고 아내는 변호사들에게 조언을 구하더니 별안간 회개 기도를 한다. 이 소동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가 미친 게 아닐까?
소설은 지극히 평온한 일상에 숨어 있는 이런 광기와 잔혹을 무심한 듯 드러내 보인다.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옆집 노부부의 비어져 나온 팔에 묻은 혈흔처럼(살해당했다는 암시다). 단지에는 여러 마리의 개가 있었는데 사건이 나는 동안 아무 개도 짖지 않았다. 개는 밤을 깨우는 정신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소설에서 ‘개의 밤’은 ‘개들의 침묵’과 동의어다. 김이 개들이 짖지 않는다고 말하자 아내가 답한다. “아침부터 개소리 말고 사람들한테 탄원서 좀 받아 와.” 누군가 고문 받고, 누군가 죽어가는 그 밤에, 그것을 일깨우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폭력의 공범이다. 작가는 아프게 묻는다. 무언가 들리지 않느냐고.

 ◆양윤의
문학평론가. 고려대 국문과 박사.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평론집 『포즈와 프러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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