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010년대 최고 호러영화30] ② 그녀를 조심하라

중앙일보

입력

[매거진M] 늦더위를 달랠 위험한 초대장. 2010년 이후 최고의 호러 영화 30편이다. 완성도는 둘째, 일단 무섭고 살벌하고 재밌는 영화로 리스트를 꾸렸다. 최근 다시 유행하는 오컬트부터 사회성 짙은 호러영화까지 여러 갈래를 나눴으니 취향에 따라 즐기거나 피하면 되겠다.

무서운 여자
그냥 운 좋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파이널 걸’이 아닌, 진정 살벌하고 치명적인 여자들.

※감독 | 제작연도 | 등급

제인 도

'제인 도'

'제인 도'

안드레 외브레달 | 8월 23일 개봉 | 청소년 관람불가
비명유발 50점 | 피가철철 40점 | 영화의 참신함 100점

한 발짝 움직임도 없이, 공포로 몰아넣는다. 그의 이름은 제인 도(신원 미상의 여성을 칭하는 말). 피가 낭자한 살인 사건 현장에서, 비정상적으로 깨끗한 젊은 여성(올웬 캐서린 켈리)의 시체가 발견되며 이 영화는 시작한다. 시반도 없고, 사후 경직도 없는 기이한 몸. 베테랑 검시관 토미(브라이언 콕스)와 그의 아들 오스틴(에밀 허쉬)은 밤샘 해부에 돌입한다.

절단 난 혀, 부서진 관절, 상처 난 장기, 그을린 폐…. 시체가 하나둘 조각나며 단서는 아귀가 맞아 가지만, 그럴수록 부검실에선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관객은 자동적으로 부자에게 가해지는 생명의 위협이 제인 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저 몸뚱이에 필시 비밀이 있다, 기이한 저주가 깃들었다는 직감.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여성의 몸에 칼과 절단기, 전기톱을 들이대는 것을 보는 불편함은 그렇게 영화가 흐를수록 소름끼치는 공포로 전이된다. 요동치는 오컬트 현상과 올웬 캐서린 켈리의 서늘한 표정과 교차될 때의 기묘한 긴장감이란! 근래 가장 고요하고도 차가운 복수극.

로우

'로우'

'로우'

줄리아 듀코나우 | 2017 | 청소년 관람불가
비명유발 30점 | 피가철철 70점 | 영화의 참신함 80점

여린 표정, 가늘고 연약한 몸에 속지 말 것. 철저한 채식주의자 가정에서 자라 수의대생이 된 저스틴(가렌스 마릴러). 동물 피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억지로 토끼 콩팥을 먹어야 하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뒤, 저스틴은 낯선 욕망에 사로잡힌다. 생고기·피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갈증. 저스틴의 욕망은 급기야 인육에 대한 식욕으로까지 번진다. 채식주의자가 식육을 넘어 식인에 매료된다는 파괴적인 설정의 영화. 교통사고 피해자의 머리를 뜯고, 잘린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어 먹는 등 충격적인 장면이 도처에 있다.

얼핏 고어영화 플롯 같지만, ‘로우’는 호러의 외피를 두른 엄연한 성장영화다. 영화는 저스틴의 충동적 행동들이 뒤틀린 성장통에 대한 은유임을 여러 차례 드러낸다. 폭력적인 묘사, 혼란스러운 음악 등 곳곳에서 사회적 폭력에 대한 반항기가 읽힌다. 그러면서 카메라는 저스틴의 관능적 매력을 감각적으로 쫓는다. 기꺼이 팔 한쪽 내주고 싶은 치명적인 악녀의 탄생이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장철수 | 2010 | 청소년 관람불가
비명유발 70점 | 피가철철 90점 | 영화의 참신함 30점

외딴 섬 무도에서 벌어진 한 여인의 서슬 퍼런 복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순박하던 여인 김복남(서영희)이 악마로 변해가는 과정을 저돌적으로 그린다. 폭행하는 남편, 강간하는 시동생, 멸시하는 시어미, 방관하는 주변 사람까지. 김복남은 남자를 중히 여기는 무도라는 사회에서 철저히 유린당하는 인물이다. 끝내 안으로 삼켜야 했던 김복남의 설움은 하나뿐인 딸이 싸늘한 주검이 된 뒤, 분노를 넘어 광적인 살인 본능으로 터져 나온다. 김복남은 그렇게 무참히 섬사람의 목을 치고, 배를 쑤시고, 사정없이 욕을 퍼붓는다.

복수가 이어지는 후반부의 폭력 묘사는 웬만한 슬래셔영화 못지않다. 하나 그저 잔혹하고 비릿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 이 영화가 남성 폭력이 만연한 한국사회에 대한 날선 우화로 보이기 때문이다. 기구한 삶을 함께한 낫을 살인도구 삼아 남성 폭력의 고리를 싹둑 잘라버리겠다는 태도. 김복남의 처절한 응징은 진정 화끈하고 통쾌하다.

유아 넥스트

'유아 넥스트'

'유아 넥스트'

애덤 윈가드 | 2011 | 청소년 관람불가
비명유발 70점 | 피가철철 70점 | 영화의 참신함 30점

온가족이 별장에 모인 파티의 밤. 맛있는 음식과 수다로 무르익던 파티는 정체 모를 습격으로 산산조각 난다. 가족이 하나둘 끔찍하게 난자당하는 살육의 현장. 살인마들은 보란 듯 벽에 피로 갈겨 쓴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진다. ‘YOU’RE NEXT’. 네가 다음 희생자라는 죽음의 경고. 한데 완전히 상대를 잘못 골랐다. 가냘픈 외모를 한 장남의 여자 친구 에린(샤니 빈슨)이 예상을 뒤엎고 살인마들에게 무참한 처벌을 가한다.

'킬빌'(2003,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가 고도로 훈련된 무술가라면, '유아 넥스트'의 에린은 본능에 충실한 파이터다. 손에 잡히는 주변 연장을 무기 삼아 육탄전을 벌이는 그의 모습은 되레 동물 탈을 쓴 살인마들보다 훨씬 동물적이고 파괴적이다. 썰고 찌르고 맛보고 즐기는 슬래셔영화에 거부감이 없다면, 에린의 응징에 즐겁게 동참할 수 있을 듯. 망치로 뒤통수를 짓이기고, 믹서기로 정수리를 갈아버리는 에린의 흉포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