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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모스다] (25) 파킹브레이크의 재발견…짐카나에 도전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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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모터스포츠', '한 눈에 들어오는 모터스포츠', '기본기 겨루기'…모터스포츠 종목 중 하나인 짐카나(Gymkhana)를 일컫는 표현은 매우 다양하다. 평균 주행속도는 불과 30~40km/h 안팎. 하지만 차를 운전하는 드라이버도, 이를 지켜보는 관객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진감에 빠져든다.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이러한 짐카나에 직접 도전해봤다. 지난 19~20일 양일간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열린 '2017 아시아 오토 짐카나 컴페티션(AAGC)' 2라운드에서다. 사단법인 대한자동차경주협회(KARA)와 대만의 CTMSA 등 아시아 지역 모터스포츠 협회가 머리를 맞대 준비한 AAGC.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1라운드 경기에 이어 2라운드는 우리나라에서 개최됐다. 여기에 출전한 10명의 한국 선수단 중 한 사람으로 참가한 것.

2017 아시아 오토 짐카나 컴페티션 2라운드에 한국 선수단 10명 중 1명으로 참가했다. 박상욱 기자

2017 아시아 오토 짐카나 컴페티션 2라운드에 한국 선수단 10명 중 1명으로 참가했다. 박상욱 기자

우리나라를 비롯해 12개국에서 32명의 선수들이 나서는 만큼 어깨는 더욱 무겁다. 현역 F3 드라이버부터, 짐카나는 물론 F3·힐클라임·랠리크로스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베테랑까지 나선 무대다. 각각 2명의 대표선수를 보낸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 달리 개최국은 다수의 선수가 참가할 수 있다. 각국에서의 짐카나 '붐업(Boom up)'을 위한 조치다.

2017 아시아 오토 짐카나 컴페티션 2라운드에 한국 선수단 10명 중 1명으로 참가했다. 박상욱 기자

2017 아시아 오토 짐카나 컴페티션 2라운드에 한국 선수단 10명 중 1명으로 참가했다. 박상욱 기자

서킷에서 진행되는 경기를 준비하다 예상치 못 한 짐카나를 접하게 되자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차량 컨트롤부터 진행절차 이해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모터스포츠 입문 3년차에 제아무리 카레이서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용없는 것. 2년의 시간 동안 참가에 의미를 두며 "꼴찌는 나의 것"을 외쳐왔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기필코 꼴찌를 피하고 싶었다. 개인 참가자가 아닌 한 사람의 팀원이었고, 그 팀의 이름은 '대한민국'이었기 때문. 결과는? 15위. 국위선양은 하지 못했지만 나라 망신은 시키지 않았다.

[언제나 경기 당일은 수면부족 상태]

지난 주말,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2017 아시아 오토 짐카나 컴페티션이 개최됐다. 박상욱 기자

지난 주말,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2017 아시아 오토 짐카나 컴페티션이 개최됐다. 박상욱 기자

새벽 2시. 노트북을 닫고 퇴근을 준비한다. 국내 살충제 달걀 파동부터 스페인 바르셀로나 테러까지. 나라 안팎의 큰 사건사고로 정신 없었던 한 주의 피로는 여전히 어깨와 목, 그리고 눈꺼풀에 남아있다. 퇴근 후 잠시 눈이라도 붙였으면 좋으련만. 경기 장비 등 짐을 꾸리다보니 이미 아침 해가 떠올랐다. 집을 나서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남짓. 이젠 경기를 앞둔 설렘과 긴장감에 도무지 잠이 들기 힘들다.

결국 뒤척거림만을 계속하다 경기장인 BMW 드라이빙센터에 도착했다. 회사에서 퇴근한지 불과 5시간 후의 일이다. 멀찌감치 떨어져 경기장을 바라보니 80여개의 콘(Cone)이 정갈하게 놓여있다. 여러 사람이 고생한 결과다. 아직 코스 진입이 금지된 만큼 '저 콘 사이를 어떻게 피해가야 하나' 골똘히 생각하며 먼발치서 바라본다. 물론 소용없는 일이다. 코스 공개는 대회 직전에서야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2017 아시아 오토 짐카나 컴페티션이 개최됐다. 박상욱 기자

지난 주말,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2017 아시아 오토 짐카나 컴페티션이 개최됐다. 박상욱 기자

국제대회인 만큼, 선수들의 면면 또한 다양하다. '짐카나 강호'로 손꼽히는 필리핀에선 현역 포뮬러 선수와 은퇴한 포뮬러 선수 2명이 대표선수로 출전했다. 아직 짐카나가 활성화되지 않은 네팔에서도 40대 남성 2명이 가슴에 국기를 달고 대표로 나섰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 대비 짐카나의 대중화나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은 우리나라지만 선수단의 실력은 우승을 노리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국내 프로 모터스포츠 대회인 '슈퍼레이스'에서 1위를 차지한 경험이 있는 박동섭, 고세준 선수뿐 아니라 아마추어 모터스포츠 대회 '슈퍼챌린지'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양우람, 이동현, 이인용 선수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포진했다. 거기에 '국내 짐카나 강호' 이재선, 전영빈 선수, '짐카나 루키' 이동현 선수는 한국 팀의 든든한 대들보가 됐다. 한국 팀의 최고령 선수인 조정훈 선수도 다양한 모터스포츠 종목들을 경험한 베테랑.

결론은 간단하다. "나만 잘하면 된다"

[Day 1 : TV에서 보던 J턴을 눈 앞에서]

경기 직전에서야 공개된 짐카나 코스. 콘의 위치는 똑같지만 매번 다른 방향으로 돌아나가야 한다. 자칫 여러 코스가 머릿속에 합쳐져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박상욱 기자

경기 직전에서야 공개된 짐카나 코스. 콘의 위치는 똑같지만 매번 다른 방향으로 돌아나가야 한다. 자칫 여러 코스가 머릿속에 합쳐져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박상욱 기자

드라이버 브리핑과 함께 코스가 공개됐다. 암기해야 할 코스는 첫날 달릴 3개와 둘쨋날 달릴 2개. 큰일이다. 학창시절에도 암기에는 소질이 없었다. 80개의 콘이 놓인 위치는 언제나 동일하다. 그러나 5개의 코스는 그 콘을 돌아나가는 방향이 서로 다르다. 매 주행마다 80개의 콘 사이에서 19번의 턴을 해야 한다니. 그것도 매번 다른 방향이라니. 시작 전부터 절망적이다.

상황이 이쯤 되니, 차량에 대한 걱정은 뒷전이 됐다. 경기에 사용되는 차량은 미니 쿠퍼 JCW. 전륜구동 차량의 차량으로 스포츠 주행에 나서는 것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짧은 휠베이스에서 나오는 움직임도 익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어떤 차로 운전하든 모든 코스를 외워서 정확히 달리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이걸 어떻게 다 외우지' 고민하는 사이, 선수들은 드라이버 브리핑에서 질문을 쏟아낸다. "원선회 코스에 차량의 후면부터 진입해도 되느냐", "콘이 얼마만큼 움직여야 페널티가 부과되느냐" 등등.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코스가 한 번에 5개나 주어졌는데 선수들은 이미 코스 공략법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본격적인 경기 시작에 앞서, 코스를 천천히 걸어가며 살펴보는 '트랙 워킹(Track walking)' 시간. 차량을 갖고 주행할 수 없는 만큼, 주어진 15분의 시간 동안 선수들은 각각의 콘과 턴을 어떻게 공략할지 직접 걸어다니며 고민한다. 물론, 이러한 고민은 이미 코스를 암기한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 평면의 지도로 보는 코스와 실제 공간에서 마주하는 코스는 그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방향이 고정된 지도를 놓고 선을 그려볼 때엔 곧잘 암기가 된듯 했다. 하지만 '여기서 왼쪽? 오른쪽?' 실제 몸을 움직여보니 금새 방향감각을 잃고 말았다.

본격적인 경기 시작에 앞서 트랙워킹 중인 선수들의 모습.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본격적인 경기 시작에 앞서 트랙워킹 중인 선수들의 모습.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경기가 시작됐다. 선수들은 콘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나가며 최대한의 속도로 코스를 달려나간다. 다른 선수의 주행을 바라보는 선수들은 "아!" 장탄식을 내뱉는다. 정해진 코스가 아닌 방향으로 갔다는 것이다. 함께 놀라고 싶다. 그런데, 누가 어디서 틀린건지 알 수가 없다. 흡사 알지 못하는 외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웃을 때 '왜 웃지?'하는 것과 같은 심정이다.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에 '짐카나 강호' 전영빈 선수는 "다른 선수 주행을 잘 보다가, 틀리면 무조건 고개를 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무리 틀렸다는 것을 알고 보더라도, 그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나중에 자신도 똑같은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조언이다. 누가 어디서 틀린건지 알아야 고개를 돌린텐데.

드라이버 브리핑에 참석중인 한국팀 선수들. (좌측부터) 박상욱, 양우람, 전영빈 선수.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드라이버 브리핑에 참석중인 한국팀 선수들. (좌측부터) 박상욱, 양우람, 전영빈 선수.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오! 와!" 이번엔 함께 감탄사를 내뱉어 본다. TV에서나 보던 J턴이다. J턴은 스티어링휠을 돌려 차량을 선회시킬 때, 흔히 '사이드'라고 부르는 파킹브레이크로 뒷바퀴를 순간적으로 잠궈 뒤를 미끄러트리는 코너링 기술이다. 어렸을 적, 성룡이 J턴을 활용해 뒤쫓던 악당을 따돌리던 영화 '폴리스 스토리'가 떠오른다. 선수들은 반지름 6m로 놓여있는 콘 사이에서 순식간에 차량을 180도 회전시켰다. 선수들의 회전반경을
보면, 반지름이 3~4m여도 충분할 듯 싶을 정도다.

그저 넋 놓고 놀라있는 모습에 이번에도 전 선수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파킹브레이크를 높이 당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만큼 빠른 속도로 당기느냐가 관건이다. 천천히 올리면 뒷바퀴를 순간적으로 멈출 수가 없다." 이번에도 어려운 조언이다. 주차할 때가 아니고서야 당겨본 적이 없던 물건이다. 최근엔 아파트 주차난에 중립주차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보니 이를 사용한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혼자 허공을 저으며 파킹브레이크를 당기는 흉내를 내보지만, 이게 빠른 것인지 느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Day 1 : J턴, 절반의 성공…파킹브레이크의 재발견]

2017 AAGC 2라운드 경기 장면. 엔트리 넘버 25번 박상욱 기자의 주행 모습.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2017 AAGC 2라운드 경기 장면. 엔트리 넘버 25번 박상욱 기자의 주행 모습.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어느덧 주행 순서가 다가왔다. 운전석에 앉아서도 여전히 코스 지도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서킷 주행만 해왔다보니, 짐카나는 조금 과장하자면 일종의 '컬쳐 쇼크'와도 같았다. 그저 아스팔트가 깔려있는 대로만 가면 됐었다. 코너의 가장자리엔 언제나 흰색과 빨간색이 번갈아 가며 일종의 '넘지 마시오' 기호의 역할을 하는 연석도 있었다. 그런데 짐카나는? 다 아스팔트다.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로다"였던 사람이 검정 종이에 검은 먹으로 쓴 글씨를 마주한 셈.

경기 첫쨋날 실제 주행 모습. 박상욱 기자

경기 첫쨋날 실제 주행 모습. 박상욱 기자

룰은 간단하다. 놓여진 콘을 치지 말 것, 그리고 주어진 코스대로 주행할 것. 녹색기가 펄럭이고, 가속 페달을 밟는다. 좌우로 정신없이 슬라럼을 진행하고, 주어진 코스대로 방향 전환에 성공! 이제 눈 앞에 '오메가(J턴 코스)'가 다가온다. 스티어링휠을 돌리며 있는 힘껏 파킹브레이크를 당긴다. 순식간에 차량이 180도는 아니어도 150도는 돌아나갔다. 후진 할 필요 없이 탈출이 가능한 것이다.

2017 AAGC 2라운드 경기 장면. 엔트리 넘버 25번 박상욱 기자의 주행 모습.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2017 AAGC 2라운드 경기 장면. 엔트리 넘버 25번 박상욱 기자의 주행 모습.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생애 첫 J턴에 성공해 신난 마음에 가속 페달을 밟고 주행을 이어간다. 그런데, "딩동딩동" 경고음이 나온다. 탈출 직후에도 좁은 간격의 콘 사이를 쉴새 없이 움직이느라 간신히 계기판을 확인해본다. 파킹브레이크가 제대로 해제되지 않았다. 오른발과 왼손, 오른손이 각각 독립적 으로 움직여야 할 때다.

[Day 2 : 지나친 긴장은 결국 독이 되고]

경기 둘쨋날, 주행을 앞두고 준비하는 모습. 폭우와 비바람이 쏟아졌다. 박상욱 기자

경기 둘쨋날, 주행을 앞두고 준비하는 모습. 폭우와 비바람이 쏟아졌다. 박상욱 기자

전날 저녁 늦게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는 아침이 되고서 더욱 굵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바람도 세차게 분다. 풀페이스 헬멧(머리 전체를 통으로 감싸는 헬멧)에 안경을 쓰는 경우, 이런 날씨 속 시야 확보는 중요한 이슈가 된다. 가뜩이나 습해진 상태에서 숨을 거칠게 쉬면 안경이 뿌옇게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경기 둘쨋날, 폭우와 비바람이 쏟아졌다. 박상욱 기자

경기 둘쨋날, 폭우와 비바람이 쏟아졌다. 박상욱 기자

이날은 1대 1 대결이 펼쳐지는 날이다. 전날, 선수 1명씩 주행에 나서 기록 경쟁에 나섰던 것과 달리 이날은 동시에 출발해 데칼코마니 처럼 정해진 코스를 달려 나가는 것. 드라이버 개인 간의 1대 1 '넉아웃(Knock out)' 경기와 국가간 2대 2 넉아웃 경기가 진행되는 만큼, 긴장감은 배가됐다.

거기에 어여쁜 예비 신부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을 찾아줬다. 그것도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촬영을 위해 회사에서도 2명의 후배가 경기장을 찾았다. 지켜보는 사람 4명이 늘어난 것 뿐인데, 긴장감은 400배는 더 커진듯 하다. 게다가, 후배들이 촬영한 영상은 모터스포츠 다이어리를 통해 독자들에게도 공개된다. 글로만 인사드리던 독자들에게 주행 장면까지 보여드리려니 갑자기 온갖 후회가 밀려왔다. 그냥 회사에 얘기하지 말고 조용히 다녀올 것을.

수 없이 펜으로 코스를 그려가며 암기에 나섰지만, 한 번 하얘진 기억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박상욱 기자

수 없이 펜으로 코스를 그려가며 암기에 나섰지만, 한 번 하얘진 기억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박상욱 기자

지나친 긴장 탓이었을까. 전날과 달리 실수가 잇따랐다. 3판 2선승 방식의 1대 1 넉아웃. 연속 슬라럼 이후 자신있게 J턴에 성공했지만, 이후 머리가 하얘졌다. 파킹브레이크 덕분에 차량은 순식간에 180도 회전했는데, 마치 뇌는 여전히 저편에 머물러 있는듯 했다. '코스 이탈 만큼은 피하자'는 생각에 천천히 움직이며 머리를 굴려보지만 결국 코스는 떠오르지 않았다.

두번째 기회를 앞두고 차 안에 둔 스마트폰을 급히 찾았다. 잠깐이라도 코스 지도를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스마트폰이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급하니 더더욱 찾기 어려워지고, 결국 코스를 다시 확인하지 못하고 두번째 기회를 맞이했다. 다행히 두번째 시도에선 주행 도중 거짓말처럼 코스가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흐름'을 타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코스를 주행한 것.

주행을 시작하고 나면 다음 콘이 어디에 있는지에 온 신경이 집중된다. 박상욱 기자

주행을 시작하고 나면 다음 콘이 어디에 있는지에 온 신경이 집중된다. 박상욱 기자

그런데 이번엔 J턴이 문제가 됐다. 코스 이탈에 대한 걱정에 전체적인 주행 속도가 낮아져 차량의 뒷부분이 충분히 미끄러지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반대편 캄보디아 선수도 J턴에 실패했다. 결국, 모두 비슷한 속도로 결승선을 통과. 두 차량이 동시에 들어오는 모습에 지켜보던 다른 선수들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10여초가 지났을까. 결과가 나왔다. 말 그대로 '간발의 차이'지만 패배는 패배다.

첫 주행에서 코스 이탈을 하지 않았더라면, 초반 슬라럼에서 앞섰던 만큼 승리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애꿎은 스티어링휠을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지만, 뒤늦게 촬영 중임을 깨닫고 감정을 추스렀다. 하지만 답답함과 아쉬움은 떨쳐버리기 쉽지 않았다. 헬멧을 써서 쥐어 뜯지도 못하는 머리를 부여잡고 한참을 끙끙거렸다. 느려서 진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코스를 까먹는 실수로 진 것은 받아들이는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1대 1 인디비쥬얼 넉아웃에서의 실수 덕에 2대 2 내셔널 넉아웃을 앞두고는 코스 암기를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다. 그저 코스 지도만 외우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주행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 덕분에 2대 2 경기에선 J턴 실패도 없었고, 코스 이탈도 없었다.

[Day 2 : 모터스포츠, 결국 사람과 사람의 스포츠]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생애 첫 짐카나 도전이었던 만큼, 경기가 진행될 수록 주행에 있어 개선점에 대판 피드백은 빠르게 진행됐다. 모르는 것, 잘못된 것이 많았기에 개선해야 할 것들도 그만큼 눈에 많이 들어온 것이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선수 가운데 15위를 기록했다. '꼴찌만 피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비하면 중위권은 기대 밖 성과다.

중위권이라는 기대 밖 성과에도 기뻤지만, 우리나라 선수단의 선전은 더욱 기쁜 일이었다. 개인 넉아웃에서 한국의 이인용, 이종혁 두 선수가 2, 3위로 포디움에 오른 데에 이어 국가 단체전에서도 박동섭·고세준 선수가 함께한 한국1팀이 3위에 오른 것이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결국 모터스포츠는 사람과 사람의 스포츠라는 것을 또 한 번 깨닫게 됐다.

2017 AAGC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 순서) 박상욱, 전영빈, 고세준, 박동섭, 양우람, 이인용, 조정훈, 이동현, 이재선 선수.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2017 AAGC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 순서) 박상욱, 전영빈, 고세준, 박동섭, 양우람, 이인용, 조정훈, 이동현, 이재선 선수.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실수에 함께 안타까워하고, 격려하는 것, 든든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 자신의 일처럼 함께 기뻐하는 것.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팀으로 똘똘 뭉쳐 가능한 일이었다. 국내 대회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선수들이지만, 국제 대회에선 모두가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꼴지만 피해보자"던 짐카나 입문자에게도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역시 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팀내 단합은 당연하고, 선수들은 국적이 달라도 짐카나를 통해 하나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짐카나뿐 아니라 한국의 좌핸들에 익숙치 않은 네팔 대표팀에게 태국과 필리핀 선수들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또, 갑작스런 문제로 안전장구가 부족했던 스리랑카 선수들에게 다른 나라 선수들은 자신의 장구를 선뜻 빌려줬다. 누가 운전석에 올라있던, 실수에 다함께 안타까워하고, 빠른 랩타임 기록에 박수치며 축하했다.

[모터스포츠의 필수 요소 #MarshalOfficialEssential]

이날 경기에서 가장 많은 고생을 한 사람들, 바로 마셜·오피셜이다.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이날 경기에서 가장 많은 고생을 한 사람들, 바로 마셜·오피셜이다.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그런데 선수들 만으로도 이 모든 일이 가능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비바람 거센 궂은 날씨에 선수들은 차량을 통제하느라 고생했지만, 경기를 진행하는 마셜·오피셜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온몸으로 비바람을 맞으며 공정하고 원활한 경기 진행을 이끌었다.

모터스포츠의 스포트라이트가 매번 드라이버를 향할지라도, 마셜·오피셜 없이는 그 어떤 경기도 열릴 수 없다. 서킷에서 진행되는 대회에 참가해오면서 그들의 노고를 이렇게 자세히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서킷보다 훨씬 작은 소규모 공간에서 경기가 진행되다보니 이제서야 그들의 노력과 고생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것.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따가운 햇볕 아래에선 햇빛이 비추는 대로, 비·바람·폭염과 직접 맞서는 이들이다.

마셜·오피셜은 그야말로 모터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필수적인 요소다. 말 그대로정말 '마셜, 오피셜, 에센셜(Marshal, Official, Essential)'인 것이다. 무언가 그들의 노력에 감사를 표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보다 #MarshalOfficialEssential 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그들의 사진을 SNS에 공유해 본다. 경기장을 찾는 많은 이들이 드라이버의 사진뿐 아니라 마셜과 오피셜의 멋진 모습을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또, 이같은 해시태그를 통해 그들에 대한 감사함과 중요성을 강조해보는 것은 어떨까 감히 제안해본다.

[진정한 풀뿌리, 짐카나]

 2017 AAGC 2라운드 경기 장면. 엔트리 넘버 25번 박상욱 기자의 주행 모습.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2017 AAGC 2라운드 경기 장면. 엔트리 넘버 25번 박상욱 기자의 주행 모습.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좁디 좁은 콘 사이를 오가다 보면 서킷 주행에선 미처 놓치기 쉬운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코너의 간격이 좁은 만큼, 보다 빠르게 다음 코너에 대비해야 하고, 차량의 미세한 하중이동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드라이버의 시선처리 역시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 경기 도중 멀미를 경험할 지도 모를 일이다. 보다 좁고, 보다 느린 속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인 만큼 차량을 통제하는 기본기를 익히는 데에 이같이 좋은 방법이 또 있을까.

2017 AAGC 2라운드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필리핀의 후안 카를로스 나톤(왼쪽), M. E. 리베라 선수.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2017 AAGC 2라운드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필리핀의 후안 카를로스 나톤(왼쪽), M. E. 리베라 선수. [사진 대한자동차경주협회]

이번 대회에서 국가전과 개인전 모두에서 1위를 차지한 필리핀은 짐카나가 모터스포츠의 풀뿌리임을 증명하는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필리핀의 M.E. 리베라 선수는 F3에서 활약하는 선수로, 이번 대회에서 개별 경기 및 개인 넉아웃 1위를 차지했다. 그와 함께 필리핀 대표로 출전한 후안 카를로스 나톤 선수는 개별 경기에서 3위를 기록했다. 두 사람은 단체전에서 말레이시아를 꺾고 나란히 포디움 꼭대기에 올랐다.

짐카나를 통해 모터스포츠에 입문한 후 카트, 랠리크로스, 힐클라임, 타임어택, 스프린트, 투어링카, 포뮬러3 등 다양한 종목을 섭렵한 필리핀의 후안 카를로스 나톤. 박상욱 기자

짐카나를 통해 모터스포츠에 입문한 후 카트, 랠리크로스, 힐클라임, 타임어택, 스프린트, 투어링카, 포뮬러3 등 다양한 종목을 섭렵한 필리핀의 후안 카를로스 나톤. 박상욱 기자

특히, 40대 후반의 나톤은 경기 내내 뛰어난 관록을 자랑했다. 그가 입은 수트는 얼마나 오랜 시간 모터스포츠와 함께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나톤은 "짐카나를 통해 모터스포츠에 입문했다"며 "그 경험 덕분에 이후 카트, 랠리크로스, 힐클라임, 타임어택, 스프린트, 포뮬러3, 투어링카 등 다양한 종목에서 선수로 활동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짐카나를 통해 모터스포츠에 입문한 후 카트, 랠리크로스, 힐클라임, 타임어택, 스프린트, 투어링카, 포뮬러3 등 다양한 종목을 섭렵한 필리핀의 후안 카를로스 나톤. 박상욱 기자

짐카나를 통해 모터스포츠에 입문한 후 카트, 랠리크로스, 힐클라임, 타임어택, 스프린트, 투어링카, 포뮬러3 등 다양한 종목을 섭렵한 필리핀의 후안 카를로스 나톤. 박상욱 기자

그는 "짐카나는 입문자들을 위해 좋은 기회"라며 "모터스포츠에 관심만 있다면 자신의 차를 갖고 언제든 시작할 수 있다. 짐카나를 통해 레이싱에 더욱 관심이 깊어진다면, 다른 종목으로까지 이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9, 20일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열린 2017 아시아 오토 짐카나 컴페티션에서 손관수 KARA 협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박상욱 기자

지난 19, 20일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열린 2017 아시아 오토 짐카나 컴페티션에서 손관수 KARA 협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박상욱 기자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모터스포츠 풀뿌리'인 짐카나의 육성과 활성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손관수 KARA 협회장은 이번 AAGC 개막식에서 "짐카나를 자동차 경주의 풀뿌리 강화를 위한 성장동력으로 육성시키기 위해 아시아 지역 국가들과 힘을 합하겠다"고 밝혔다. 또, 별도의 서킷이 없어도 대회가 가능한 짐카나의 특성상 다양한 크고 작은 짐카나 대회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모터스포츠가 멀게만 느껴진다면, 짐카나 경기장을 찾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열에 아홉은 "생각보다 재밌네"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 중 적어도 3분의 1은 "나도 해볼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조만간 이를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오는 9월 9~10일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KARA 짐카나 챔피언십'이 바로 그 기회다. 또, 이날 경기에 선수로 도전해 우수한 성적을 거둔 2명은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 한국에 이어 대만에서 개최될 2017 AAGC 3라운드에서 말이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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