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정치인 중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만큼 굴곡진 정치 인생을 살아온 이도 드물다. 현직 판사 시절인 1995년 DJ의 눈에 띄어 법복을 벗고 정계에 입문한 추 대표는 이듬해 총선에서 당선되며 여의도에 입성했다.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1997년 대선 때였다. 당시 김대중 후보 유세단을 이끌며 험지라 불리는 대구 등 TK 지역에서 지지를 호소했다.
제한적이지만 북·미 간 대화 중재 포기 말아야 #지방선거서 승리해야 촛불혁명 완성돼 #여성 당 대표라서 과한 비판 받는 측면도 #서울시장 출마 아직은 관심 밖의 일
2002년 대선 캠프에서도 추 대표는 중책을 맡아 큰 선거를 치렀다. 노무현 후보의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으로서 노 후보 당선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노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져 당내에서조차 후보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 때 그는 ‘돼지 저금통’으로 국민성금을 기부 받으며 대선을 치렀다. 그때 붙은 별명이 ‘돼지 엄마’였다.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별명이다.
하지만 추 대표는 2003년 열린우리당 분당 뒤 민주당에 남아 노 대통령의 탄핵에 참여하는 운명을 맞았다. 채 2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대선 공로자에서 탄핵 참여자라는 극과 극의 길을 걸었다. 이후 속죄의 의미로 ‘삼보일배’를 했지만 17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당시 추 대표의 정치생명이 끝났다는 평가를 내린 이도 있었다.
하지만 추 대표는 17대 정동영 후보와 18대 문재인 후보 대선 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 국민통합위원장을 각각 맡으며 다시 대선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치적 재기였다. 지난해 8월 당 대표직 도전은 그의 정치 인생을 총체적으로 평가받는 기회였다. 후보에 나선 그는 선거 초부터 전당대회 마지막 연설까지 노 대통령 탄핵에 거듭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5선 의원으로 마침내 당권을 거머쥐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당 대표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탄핵에 대한 트라우마를 떨쳐내고 완전한 정치적 복권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운명의 장난일까. 당 대표 취임 불과 4개월 만에 다시 한 번 현직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 세 차례 대선 승리의 주역, 두 차례 탄핵 참여는 그의 드라마틱한 정치 인생을 간략히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은 사건들이다.
추 대표는 자신의 원칙과 소신에서 벗어났다고 판단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다. 또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이며 거침없는 언변을 구사하는 편이다. 이런 그를 두고 정치권 안팎의 평은 ‘소신 있다’ ‘과감하다’ ‘솔직하다’는 긍정적 평가에서부터 ‘정무 감각이 떨어진다’ ‘눈치 없다’는 부정적 평가까지 엇갈린다.
월간중앙은 8월 16일 여의도 정가에서 늘 이슈와 논란의 최전선에 서 있는 추 대표를 두 시간 동안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출범 100일을 맞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 그리고 당 안팎의 다양한 이슈와 정국현안, 자신을 둘러싼 여러 논란 등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추 대표는 최근 고조되고 있는 북한 핵·미사일 위기 정국에 대해 큰 우려를 표하며 “정부의 적극적 중재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반도 전쟁설 등으로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결국 북·미 간 대화가 오가야 한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40여 분간 전화 통화를 하면서 ‘앞으로 다시는 한반도에서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은 평화를 위해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촉구한 것으로 나는 해석하고 있다. 남북 역시 접촉 노력을 해야 한다.”
경제제재 국면인 데다 미·북 사이에 험악한 말 폭탄이 오가는 상황인데 대화가 가능하겠나?
“독일 통일의 설계자인 에곤 바르가 ‘접근을 통한 변화’를 강조하지 않았나? 남북도 접촉하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 현실적으로 우리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 운전대를 잡으면서 한반도 문제를 풀 책임 있는 해결자로서의 역할을 미국이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북·미 간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다각도로 양측을 설득해야 한다.”
야당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북핵 위기를 타개할 능력이 없는 안보 무능 정권이라고 비판한다.
“지난 정권 9년 동안은 접촉 자체를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북측의 목표·의지·실력도 제대로 모른 채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맞은 것 아니냐. 또 사드 문제만 해도 미국과 중국 간에 해결할 문제로 던져두면서, 동시에 중국에 충분한 이해를 구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런 과정은 생략하고 사드배치 논의도, 결정도, 반입도 없다는 식으로 계속 부인만 하다 갑자기 배치가 결정돼버리지 않았나. 박근혜 정부가 왜 그랬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 놓고 비난만 쏟아내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에 대한 평가, 그간 추 대표 주변과 당 안팎에서 논란거리가 된 사안들로 인터뷰는 이어졌다.
새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났다. 대통령 국정 지지도나 당 지지율은 여전히 높은 편인데.
“국가 대계의 큰 방향을 제시하는 과정에 있다. 성과를 자랑하거나 뭘 잘하고 있는 식으로 내세울 때가 아니다. 지지율이 높다고 해서 자만할 수 없다. 새 정부는 어느 특정 정치 세력의 힘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국민의 절박한 마음이 만들어낸 정부 아닌가. 귀한 아이 잘 보듬어 준다는 마음이 모여 높은 지지율로 나타나는 것 아닐까.”
야당이 잘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오는 반사이익도 있지 않나?
“반사이익 때문에 지지율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탈원전이나 조세정책 정상화, 부동산 문제 등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들은 그동안 가보지 않은 길을 새로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많은 국민이 이런 정책의 방향성이 대체로 옳고 타당하다고 봐 주시는 것 같다.”
취임 1년이 다 돼가는데 정권교체를 이룬 여당 대표로서 소회도 남다를 것 같다.
“아기가 태어나고 100일 동안은 부정 탄다고 외부인 들이는 것도 자제할 정도로 늘 조심하고 경계하지 않나. 항상 조심스럽고 부정 타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지냈다. 지난 1년은 마치 10년을 압축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하루하루를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팽팽한 긴장 속에서 살았다.”
추 대표는 촛불 정국-탄핵-대선으로 이어진 지난 1년여를 회고한 뒤 정계 입문하기 직전인 20여 년 전 얘기를 꺼냈다. 현직 판사 시절 신분을 숨기고 DJ 연설을 들으러 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느꼈던 희망을 이번에는 광장에 나온 시민들에게서 봤다는 것이다. “검정 두루마기를 입고 연설을 하는 DJ를 보면서 가슴이 울렁거리고 삶의 희망을 가졌던 시절이 있었다. 정치인 한 명을 통해 고통스럽고 부조리한 현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번에는 광장에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이름 모를 평범한 시민들이 그런 존재였다.”
지난해 촛불집회와 탄핵 정국 때로 이야기는 이어졌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진퇴 문제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던 시기에 갑작스런 ‘영수회담’ 제안을 해서 논란이 됐는데.
“국민의 힘과 집단지성이 확인되기 전까지 정치권이 방황하던 시기였다. 당 대표로서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었다. 혼란스러운 정국을 풀기 위해 당시 박 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을 전격 제안한 것이다. ‘추미애가 자기 정치를 한다’며 오해하는 분이 적지 않더라.”
지난해 10월 24일 시정연설 차 국회를 방문한 박 대통령은 상황을 반전시킬 목적으로 불쑥 개헌 논의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이날 저녁 JTBC가 최순실 씨가 사용하던 태블릿PC를 입수해 보도하면서 개헌 이슈는 반나절 만에 사그라지고 말았다. 이후 박 대통령 측은 국회에 총리 추천을 일임하겠다는 카드를 다시 꺼냈다. 또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거국중립 내각 구성을 제안했다. 야당은 정국 해법을 놓고 의견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대통령 즉각 하야 또는 퇴진을 요구하는 세력, 탄핵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세력, 국회가 추천한 총리가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세력 등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혼란이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추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을 전격 제안했다. 당내 공식 논의를 거치지 않고 나온 영수회담을 두고 일각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 고려한 정략적 제안이라며 추 대표를 공격하기도 했다.
87년 YS 담판 떠올리며 ‘영수회담’ 제안한 것
‘영수회담’은 왜 제안한 건가?
“정치권이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이 모이지 않고 출렁출렁했다. 어떤 의원들은 광장의 후끈함에 당이 같이 가자고 주장했고, 광장은 광장이고 국회는 국회라며 절제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총리 추천 방식을 두고도 의견이 분분했다. 정치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보는 분도 있었다. 균열과 파동이 심한 상황에서 속내를 다 털어놓고 공유할 시간도 없었다. 사실 당시엔 마음속으로 총리 한 번 되고 싶다는 분이 많지 않았나. 촛불을 든 시민은 이미 대통령 하야를 외치고 있었는데 정치권은 이런 국민의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었다. 대통령이 국정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않는 이상 총리 추천도 그렇고 어떤 제안도 받을 수 없었다. 박 대통령과 담판을 통해 국민의 하야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고 국정에서 손을 떼라는 요구를 하려고 했다. 87년 전두환의 호헌선언 직후 YS(김영삼)의 담판을 염두에 뒀다. 제1당 지도자는 정치권(국회)과 국민의 뜻이 다를 때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서 상황을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이 다치고 불행해진다. 전격적인 담판을 통해 문제를 조기에 풀려고 했던 것인데 (내 의도와는 달리) 상황이 다르게 흘러갔다. 자기 정치를 하려고 그런 제안을 내놓은 게 아니었다.”
1987년 전두환 대통령이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호헌선언 직후 전두환 퇴진 운동이 일어나는 등 정국이 요동쳤다. 대규모 군중 시위가 일어나는 급박한 상황에서 제1 야당 대표인 YS는 6월 24일 오전 전 대통령과 전격적으로 영수회담을 했다. YS는 “민주화를 받아들이는 길이 나라도 살고 당신도 살 수 있는 길”이라며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전 대통령은 “노태우 대표와 상의하라는” 식으로 즉답을 피했다. 담판 직후 YS는 “협상은 결렬됐다”는 한마디를 전했고, 이후 수백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추 대표는 촛불집회가 확대돼 가는 시점에서 YS의 이런 담판 시도를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담판 회동을 통해 박 대통령의 의사를 직접 확인하면 논란이 분분하던 당의 입장을 명확히 할 수 있고, 이후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뜻을 정치권이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 했다는 얘기다.
사전에 당내에서 조율을 거칠 수도 있지 않았나?
“원래 이런 일은 전격적으로 하지 않으면 일이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언론에 노출되면서 논란만 커지고 결국 무산됐다. 대신 거국중립내각이니, 총리 추천이니 하는 논란에 당이 휘둘리지 말고 대통령 퇴진 당론을 정해달라고 의원들에게 강력하게 요구했다. 퇴진 당론만 정해지면 굳이 대통령을 만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했던 거다.”
‘영수회담’ 논란이 사그라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추 대표는 또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추 대표는 박 대통령의 형사책임 면제 문제를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와 논의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1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추 대표와 김 전 대표가 회동한 직후 한 언론사 카메라에 김 전 대표의 메모지 내용이 노출됐다. 여기엔 ‘탄핵 합의, 1월 말 사퇴, 행상책임(형사 X)’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는 박 대통령의 형사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는 제안을 한 것으로 해석돼 논란이 됐다.
“정치는 자전거 페달 밟는 것과 같더라”
당시 김무성 전 대표와 회동 후 은밀하게 뒷거래를 한 것처럼 비춰져 곤욕을 치렀는데.
“일부 언론이 짧은 메모 내용을 잘못 이해하고 내가 박 대통령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지 않기로 김 전 대표와 상의했다고 보도했다. 주변에서 공격을 많이 받았다. 나중에 오보로 밝혀져 오해가 풀렸다. 박 대통령 측이 4월 퇴진, 6월 대선을 들고 나오면서 비박들 사이에서 “대통령이 이렇게 나오는데 굳이 탄핵까지 해야 하느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김 전 대표를 만나 흔들림 없이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설득했다. 탄핵심판은 법적으로 형사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헌법 위반 여부, 헌법을 존중하고 수호하려는 의지와 태도, 책임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증거가 다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행상책임’ 이론을 언급했다. 따라서 이르면 1월 말에도 헌재의 탄핵심판이 끝날 수 있다는 얘기도 했다. 김 전 대표가 메모지에 그런 내용을 적은 것이다. 이후 비박들도 탄핵 의결에 동참했다. 마치 내가 박 대통령을 봐주기로 했다는 식으로 얘기가 나와 어이가 없었다.”
속 시원하게 해명하면 되는데 말을 아끼는 이유는 뭔가?
“정치라는 게 자전거 타는 것과 똑같아서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진다. 변하는 상황 속에서 계속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정치더라.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사실은 이런이런 것이다’며 일일이 다 해명하고 설명할 겨를이 없다. 만약 내가 오해를 풀기 위해 김 전 대표와의 회동에서 나온 얘기를 나서서 전부 다 하게 되면 김 전 대표 입장에선 ‘그럼 내가 추미애를 만나서 설득당한 거야?’ 이렇게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퍼즐이 맞춰질 때까지 말을 아끼고 놔두는 것이 더 나을 때도 많다.”
숱한 비판과 오해를 받아왔지만 20년 정치 인생에서 추 대표의 가장 아픈 부분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참여한 일이다. 일부 네티즌은 추 대표에게 ‘프로탄핵러’ ‘탄핵 스페셜리스트’라는 웃지 못할 별명까지 붙였다. 노 대통령 탄핵 당시의 얘기를 들어봤다.
가장 후회되는 일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참여한 것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정치 인생에서 가장 안 좋은 기억이다. 당시 50여 명의 의원 사이에서 나는 노 대통령을 탄핵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최고위원)의 일원으로 결국에는 탄핵 표결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추 대표가 탄핵을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탄핵 의결 후 당 지지율이 폭락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내게 총선을 잘 치르라고 부탁하고 당의 책임 있는 분들이 모두 잠수를 타더라. 국민에게 사죄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말로만 할 순 없었다. 그래서 삼보일배에 나선 것이다. 쇼를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사과해야 했다. 삼보일배 장면을 보시고 어머니는 ‘네가 왜 책임지고 사과를 하느냐’고 하시더라. 그때 이미지가 강했는지 내가 탄핵을 주도한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다.”
당대표가 된 뒤로 ‘자기 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왜 받는다고 생각하나?
“정말로 내가 ‘자기 정치’를 해왔다면 금방 표시가 나게 돼 있다. 자기 정치에 몰두해 정략적으로 일해왔다면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겠나. 아마 남성이 당 대표로서 나 같은 행보를 보였다면 반대로 칭찬이 쏟아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여성이다 보니 인정하기 싫어서 그런 오해와 비판을 받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추 대표는 대선 직후에는 ‘당·청 갈등’ 논란에도 여러 번 휘말렸다. 인사 문제가 그랬다. 대선 직후인 지난 5월 중순.당내에서는 ‘인사추천위원회’ 구성을 당헌에 명문화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대선 전인 지난 3월 “당이 정부 인사를 추천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당헌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었다. ‘인사추천 관련 기구 구성’ 등을 당규로 정하도록 한 조항이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만약 ‘인사추천위원회’가 구성돼 당에서 추천한 인사가 기용되지 않으면 밖에서는 인사를 놓고 당·청 갈등이 있다고 비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결국 ‘인사추천 기구를 구성한다’는 조항을 삭제하되 당이 인사를 추천할 수 있다는 원칙만 반영하고 논란은 마무리됐다.
“대리사과 때 눈 한 번 깜짝해줬더라면”
추 대표나 당의 의견이 인사에 잘 반영됐다고 보는가?
“청와대나 내각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나는 인사와 관련해 당의 의견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정부인 만큼 당내 의견이 일정부분 반영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아닌가?
“정당이 (대선) 정책 공약집을 내고 정권교체를 만들어낸 산실이지 않나. 정당정치·책임정치라는 측면에서 인재를 인큐베이팅하고 내각이나 청와대에 훌륭한 인사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정당은 영속되는 책임 주체다. 여론을 수렴해 인재를 검증하고 능력이 확인되면 내각이나 청와대에도 추천할 수 있다. 향후 그런 길을 열어놓기 위한 재량조항을 당헌에 담은 것이다.”
당시 추 대표 의중이 내각과 청와대 인사에 잘 반영되지 않아 언짢아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일부에서는 인사추천을 놓고 당·청 갈등이 있었다는 시각도 있던데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공직 인사는 최대한 투명해야 하고 최대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당헌에 담은 당의 인사추천 재량조항은 그런 취지에서였다. 물론 인사의 대상이 되는 피추천자 입장에서는 공론화됐다가 실제로 (기용이) 안 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당사자가 입을 수 있는 신용훼손도 있을 수 있지 않으냐고 여기는 시각도 있더라. 하지만 공직 후보자가 되려는 분은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왜 까놓고 창피를 주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는 분은 애초에 지원서를 내면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소통은 잘되고 있나?
“문 대통령은 평상시 권위적이지 않고 격식 따지는 분도 아니지 않나. 주위 사람을 어렵게 대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분이 아니다. 평상시 공무에 해당하는 공식적인 얘기는 정무수석을 통해 전달한다. 하지만 제3자를 경유하면 왜곡될 소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통화도 직접 한다. 그런 일이 자주 있는 건 아니다.(웃음)”
임종석 비서실장의 ‘대리사과’ 문제는 사전에 어디까지 얘기가 된 건가?
“역할 분담이라는 게 있지 않나. 당원과 지지자를 대변해야 하는 당 대표로서는 법과 원칙이라는 측면에서 타협하면 안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추경안 심사, 정부조직법 통과를 앞두고 야당과 협상을 진행해야 할 원내대표는 또 그 나름대로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입장이지 않겠나. 사전에 역할 분담을 하고 원내대표는 할 수 있는 협상을 하라고 미리 언질을 줬다. 이미 큰 틀에서 양해한 부분이라 이후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다. 결과가 잘 나왔으면 된 거 아닌가.”
하지만 추 대표를 놓고 ‘통제가 안 된다’는 식으로 폄하하는 얘기가 오간 것으로 알려져 언짢았을 텐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원내대표가 정무수석과 상의해서 결과적으로 잘 풀어냈다. 다만 디테일한 작전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식으로 전개된다고 나한테 살짝 눈 한 번 깜짝해 달라는 정도다(웃음). 지난번 청와대 영수회담 때 대통령에게 ‘대리사과 하기 전에 나와 먼저 소통해 달라’고 편하게 말씀드린 것도 그런 의미였다. 대통령과 말이 안 통하는 관계라면 그 자리에서 편하게 그런 얘기 꺼낼 수 있었겠나.”
임종석 비서실장과 불편한 관계라는 얘기가 꾸준히 나왔다. 사석에서는 누님-동생으로 부른다는 얘기도 있던데.
“(사석에서 그런 호칭 쓰는 것은) 맞다. 임 실장과 불편할 게 뭐 있겠나. 임 실장은 대통령을 잘 보좌하면 된다. 고유의 영역을 존중하는데 갈등이 있을 이유가 없다.”
여당 대표로서 9월 정기국회 개원을 앞두고 야당과의 협치 문제도 중요하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협치의 제1 대상인 국민의당과는 제보조작 사건을 거치며 날 선 공방을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여성 당 대표라서 과한 비판받는 측면도 있다”
국민의당과는 여전히 불편한 관계다.
“협치에도 자격이라는 게 있다. 국민의당이 제보조작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했다고 생각하나. 민주주의 회복의 의미를 담은 대선에서 조작으로 국민을 속이려고 한 행위는 죄질이 몹시 나쁘다. 정치에서 중요한 건 염치와 책임 아닌가. 도덕성과 책임의식을 갖고 국민 신뢰를 얻어야 건강한 협치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건강성 회복은 하지 않고 자꾸 협치만 하라고 하면서 발목을 잡는다면 정치 발전, 정당 발전은 있을 수 없다. 국민의당이 건강한 협치의 파트너가 돼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반기 국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국민의당에 먼저 손을 내밀 생각은 없나?
“내 개인이 손을 내밀고 안 내밀고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 정호승 시인의 시 ‘바닥에 대하여’를 인용하면서 ‘(국민의당은) 아직 바닥이 싫은 모양이다. 빨리 바닥을 딛고 일어서길 바란다’고 SNS에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정도 얘기도 받아들이지 못하더라. 얼마 전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 등이 당 대표 불출마를 설득하러 안철수 전 의원을 만나고 온 뒤 (안전 의원에 대해) ‘꺼진 불’이라는 표현을 쓰던데, 그런 다스(disrespect: 상대방의 허물을 공격해 망신 주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내가 한마디하면 정계 은퇴하라느니 퇴진하라느니 하면서 막말을 해댄다. 자정능력이 있고 책임질 줄 알아야 협치의 자격도 있다는 얘기다.”
추 대표가 과격한 언사와 막말을 한다는 비판도 일부에선 있다.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해 ‘머리 자르기’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그러는 모양인데, 모 신문 만평에서 나온 표현을 인용한 것뿐이다. 꼬리 자르기는 괜찮고 머리 자르기는 하면 안 되는 말인가. 나는 과격한 단어를 쓰거나 저속어를 써서 상대를 공격하는 사람이 아니다. 국민의당 측이 나에 대해 그런 프레임을 만들고 언론이 자꾸 받아 써주는 것도 문제다. 일부 언론은 ‘쓸모없는 당 대표’라는 표현도 쓰던데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과연 내가 남성 당 대표였다면 그런 식의 안하무인격 표현을 쓰며 공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야당의 협조가 없으면 정국을 풀기 어려울 텐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듯이 국민 이기는 국회의원은 없다. 지난번 추경안 통과도 여야가 협치를 잘해 혹은 숫자 놀음으로 해낸 것이 아니다. 국민 여론이 가능케 한 것이다. 야당이 반대하더라도 국민 여론이 형성돼 하라고 명령하면 국회는 하지 않을 수 없다. 여당 의원 수가 적어서 일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야당이 반대하더라도 여론을 등에 업고 돌파해 내겠다는 얘긴가?
“물론 법안 처리를 위해서는 현재 우리 의원 수만 가지고는 못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국민이 지지하고 받쳐주면 가능하지 않겠나. 국민 뜻을 받드는 방향으로 가다 보면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거 DJ가 ‘국민의 뜻을 잘 드러내는 정치인이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했다.”
제1 야당 수장인 홍준표 대표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나?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홍 대표를 만났다. ‘살 많이 빠졌다’고 걱정해주시더라. 홍 대표는 ‘여당 대표도, 야당 대표도 해봤지만 여당 대표가 훨씬 힘들었다’는 얘기도 했다. ‘위로해주니 고맙다’고 했다. ‘조만간 식사 자리를 만들어 모시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만나자’고 하시더라. 대선 직후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각박함, 치열함이 있었다면 이제는 차분히 서로 배려하고 협치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홍 대표 역시 당 안팎의 사정이 안정되면 제1 야당의 역할 잘 해주시리라 믿는다.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도 여성 당 대표들끼리 한번 보기로 했다.”
추 대표와 의원들 간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는 것 같다.
“역대 당 대표 중 가장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원과 지지자 한 분 한 분과 매일, 직접 소통하고 있다. 카톡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중한 의견들을 24시간 듣고 있고 일일이 직접 답장도 한다. 계파나 비공식 라인에 의지해본 적이 없다. 철저히 당 공식 기구와 시스템 중심으로 당의 의사 결정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소통 부족을 탓하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겠다.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의견을 구하겠다.”
최근 주고받은 카톡 대화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는가?
“8월 초 교사 충원 관련 정책 발표 직후 논란이 커졌다. 문 대통령 지지자 한 분이 내게 카톡을 보냈는데 교사임용 대기 중인 분이었던 것 같다. 비정규직(기간제) 교사 정규직화(우선 채용) 정책 때문에 많은 임용 대기자가 불만이 많다며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문자가 수두룩하게 쌓였다. 고용에 대한 평등 문제로 접근한 건데 교육 현장에서는 다른 시각으로 받아들이면서 갈등이 일어난 것이다. 당 정책 조정위를 통해 최대한 이런 의견을 취합해 해결해 나가겠다고 답변드리며 이해를 구했다. 정부나 당이 추진하는 정책이 지지자들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서운한 일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당 대표에게 카톡까지 보내며 답을 구하는 열정을 보면 당장 지지를 철회하실 분들은 아니라는 믿음도 있다.”
“서울시장 출마 지금은 관심 없다”
부동산 문제, 조세 정책 등과 관련해 너무 급격하게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부동산 정책의 경우 실수요자에게 부동산을 돌려주자는 취지다. 저출산 사회, 양극화 문제가 결국에 부동산 정책과도 연동돼 있다. 무리하게 집값을 감당하려다 보니 대출로 인해 심각한 가계 부채로 이어지지 않나. 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과도한 지대를 낮추지 않으면 창의적 인재들이 성과를 내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명예과세라고 이름 붙인 초고소득자나 기업에 대한 조세 정책은 이들이 자부심을 갖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반 기업 정서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123개국을 대상으로 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지표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는 119위로 상당히 낮은 편이다. 초대기업·초고소득자 과세 문제를 꺼낼 때 사실 국정기획자문위에서는 ‘당에 부담이 될 수 있으니 2년 정도 후에 얘기하자’고 하더라. 하지만 ‘이런 것 하라고 국민이 이 정권을 만들어준 것인데 그냥 지금 (발표)하자’고 했다.”
최근 만들어진 정당발전위원회는 내년 지방선거 대비용인가?
“권리당원을 많이 끌어들여 기존의 판을 엎으려고 한다고 의심할지 모르겠지만 절대 아니다. 시·도지사와 같은 공직선거 후보 선출은 권리당원과 일반시민 반영 비율이 50대 50의 황금비율로 돼 있다. 이런 것을 흔들자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집단지성이 작동할 수 있도록 당을 현대화하자는 것이다. 더이상 국민에게 촛불을 들어달라고 요구만 하고, 거기에 당이 얹혀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 이제는 권리를 주고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권리당원 100만 명을 만들어 당의 역량을 확 키우자는 것이다.”
위원장 자리에 최재성 전 의원이 임명됐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불과 1년 전만 해도 호남에 가면 문재인 옆에서는 사진도 찍지 말라는 반문 정서가 팽배했다. 당이 끝내 분열됐고 어려운 국면을 맞았을 당시 권리당원 17만 명을 데리고 온 사람이 바로 최 전 의원이다. 문 대통령이 최 전 의원에게 정무특보 등 자리를 제안했는데 다 거절했다. 대통령이 쓰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내가 최 전 의원을 (중요한 자리에) 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자신하나?
“촛불혁명의 완성판이자 문재인 정부의 중간평가나 다름없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중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지는 지방의 적폐를 청산하고 분권과 자치의 새 시대를 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당발전위를 구성한 것도 내년 지방선거의 승패가 새 정부와 촛불혁명의 성패에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높은 지지율에 절대 자만하지 않을 것이다. 혁신하겠다.”
지방선거에서 추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정치권에서는 파다하다.
“적폐청산 특위, 정당발전위원회 등 당에서 벌여놓은 일이 너무 많다. 지방선거 출마를 염두에 두고 한눈을 팔 여유도 없다. 현재로서는 출마 문제 자체에 관심이 없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지방선거 때 진행하겠다고 했다. 대통령 4년 중임제 등 선호하는 권력구조가 있나?
“개헌 국민투표를 하기로 한 것은 국민에 대한 약속이다. 하지만 개헌의 방향이나 핵심 의제가 권력구조로 모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헌의 핵심은 촛불혁명으로 드러난 주권 재민, 국민주권이라는 원칙과 철학을 어떻게 시민권의 실질적 확대와 보장으로 담아낼 것인지가 관건이 돼야 한다. 상층의 권력구조부터 논의하면 시민권은 여전히 주인이 아닌 객의 입장에 서게 된다. 이런 논의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
글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muzes@joongang.co.kr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