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이 만약 젊어서 요절했다면 그의 1941년 첫 시집 『화사집』은 한국 문학 최대의 시집이 됐을 겁니다. 미당 자신은 최고의 민중시인, 민족시인이 됐을 거구요.”
5년 만에 20권짜리 전집 완간 #시·산문·전기·소설·희곡 총망라 #“1000편 넘는 시 중 친일시 4편뿐 #시대의 복잡성 고려해 이해해야”
고려대 이남호 교수는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 시인의 예술적 위상을 이렇게 요약했다. 21일 열린 20권짜리 미당 전집(은행나무 출판사) 완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뒤편에 놓인 전집을 가리키며 “하지만 『화사집』 한 권보다 여기 이 전집 전체를 갖는 게 천 배, 만 배 낫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미당이 오래 살아 다행이라는 얘기, 그의 문학이 높기만 한 게 아니라 넓기도 하다는 얘기였다. 이 교수는 문학평론가 이경철, 최현식 인하대 교수, 미당의 마지막 제자였던 동국대 윤재웅 교수, 방송작가 전옥란씨와 함께 전집 편집을 맡았다. 기획 단계부터 치면 꼬박 5년이 걸린 대형 노작을 마친 감회가 큰 듯했다.
편집위원들의 자화자찬만인 게 아니라 이번 전집은 미당 문학의 실체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가 남긴 1000편이 넘는 시작품 가운데 생전 15권 시집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작품들은 가급적 제외한 950편을 전집의 1~5권에 담았다. 논란 많은 친일시 4편도 빠졌다. 무엇보다 최고의 미당 전문가들인 편집위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생전 미당이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작품 수정을 함에 따라 판본에 따라 제각각인 표현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정본 확정작업을 진행했다. 옛 말투 느낌이 나는 시어를 현재 시점의 현대어 감각에 맞게 다듬으면서도 생전 시인의 의도가 뚜렷한 사투리 사용은 살렸다. 가령 ‘선운사 동구’라는 시의 5행에 들어 있는 시간 부사는 첫 발표 시점에는 ‘아직도’, 시집 『동천』에는 ‘오히려’로 표기했으나 미당이 고창 선운사 입구에 시비 건립을 제안받고 제공한 시 본문에는 ‘상기도’였다. 전집은 ‘상기도’를 따랐다.
윤재웅 교수는 “미당 선생님이 생전 이곳저곳에 발표해 흩어져 있던, 주요 작품에 대한 시인 자신의 해설을 한데 모은 것도 이번 전집의 성과”라고 자평했다. 전옥란씨 등 편집위원들이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며 발품을 판 결과다. 전집 11권 ‘나의 시’ 편에 모았다.
6, 7권은 자서전, 8~11권은 산문, 완간과 함께 나란히 출간된 18~20권에는 소설과 희곡, 미당이 쓴 김좌진·이승만 전기가 실렸다. 미당이 번역한, 만해 한용운과 석전 박한영 스님의 한시도 함께 실렸다. 이밖에 시론, 방랑기, 옛 이야기라고 이름 붙인 세계민화모음집이 전집에 포함돼 있다.
최현식 교수는 “정본 확정작업을 했지만 이번 출판본이 끝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후속 연구결과에 따라 당대에 맞는 새 정본이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미당이 계속 읽혀야 한다는 얘기다. 전옥란씨는 “9교, 10교까지 마다 않고 전집 교정 작업을 하다 보니 선생님이 평생 정말 열심히 읽고 쓰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화사집 한 권보다 전집이 훨씬 좋다는 이남호 교수의 발언은 미당의 친일 논란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 교수는 “정치는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로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1000편 넘는 시 가운데 친일시는 4편에 불과해 미당의 친일 정도는 심각하지 않다는 게 문단의 상식적인 평가다. 이 교수는 “잠실운동장에 잡초 서너 개가 있다고 해서 운동장 전체를 갈아엎을 수는 없다”며 “미당의 친일은 넓고 깊게 시대의 복잡성을 고려해 이해해야 한다. 단순한 문장으로 밝히지 못하는 것들을 밝히는 게 문학의 몫”이라고 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