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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년, 창녀, 유방'... 미 경제학자들의 일상대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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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담긴 코란과 성경문구. [사진=플리커]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담긴 코란과 성경문구. [사진=플리커]

'slut(잡년), prostitute(창녀), vagina(질), boobs(유방)…'
경제학자들이 여성 연구자에 대해 논할 때 자주 언급하는 단어 중 일부란다.

미국 경제학자 커뮤니티의 여성 혐오 분석한 논문 #여성학자 관련 품평에만 30개의 혐오성 단어 나와

전도유망한 젊은 여성경제학자의 논문 하나가 미국 경제학계를 발칵 뒤집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했다. 내년에 하버드에서 박사과정에 들어가는 앨리스 H. 우(22, 버클리대)가 최근 발표한 논문 '학계에서의 성 고정관념: '경제학 채용 루머 포럼'으로부터의 증거'가 그것이다. 우는 경제학자들이 온라인 포럼에서 매일 매일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를 분석해 남성과 여성의 학문적 행적을 어떻게 판단하는가를 분석했다.

그동안 여성을 과소평가하는 학계 내부의 문화에 대해 검증하기 어려웠지만, 기술의 변화가 이를 가능케 했다. 여성의 업적에 대해 '찬물을 뿌리는' 수많은 대화가 온라인으로 옮겨지면서 데이터가 차곡차곡 쌓였다. 또 머신러닝 기술 덕분에 대화 내용의 패턴을 탐색해 가십의 종류를 정량화할 수 있었다.

우는 경제학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이코노잡루머닷컴'에 쌓인 100만건 이상의 익명글을 분석했다. 동료 연구자나 졸업생 등의 경제학적 능력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 빈번한 곳이다. 글에서 비판하는 대상의 성별을 알아내기 위해 '그' '그녀' 등의 인칭대명사를 추려냈고, 남자 혹은 여자와 관련된 포스팅을 분류했다. 각각의 성별과 관련된 글을 머신러닝으로 돌린 결과, 여성과 관련한 글에서 다음과 같은 30가지 연관 단어가 추려졌다.

hotter(섹시한), lesbian(레즈비언), bb(베이비), sexism(성차별), tits(젖통), anal(항문), marrying(결혼하는), feminazi(페미나치, 페미니스트와 나치의 합성어), slut(잡년), hot(섹시한), vagina(질), boobs(유방), pregnant(임신한), pregnancy(임신), cute(귀여운), marry(결혼), levy(징수), gorgeous(화려한), horny(육감적인), crush(짝사랑), beautiful(아름다운), secretary(비서), dump(차버리다), shopping(쇼핑), date(데이트), nonprofit(비영리), intentions, sexy(섹시한), dated(구식의) and prostitute(창녀).  

반면 남성을 논한 글에선 별다른 특이점이나 적대적인 연관 단어를 찾아낼 수 없었다. 목표, 위대한, 노벨 같은 용어를 포함한 긍정적인 분위기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남성에 대한 글은 경제 자체와 전문적 조언에 국한될 가능성이 큰 반면, 여성에 대한 토론은 개인 정보(가족, 결혼 여부 등)와 신체적 속성, 성 관련 주제를 다루는 경향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우는 논문에서 "온라인의 익명성에 기대어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을 가감없이 말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코노믹스 잡 마켓 포럼 사이트 캡처.

이코노믹스 잡 마켓 포럼 사이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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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의 거시경제학자인 데이비트 로머는 NYT에 이 논문이 '여성혐오의 수채통'을 묘사했다고 요약했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대표적인 경험주의 경제학자 재닛 커리(우가 그녀의 보조 연구원으로 일했다)는 "대부분의 여성 경제학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걸 체계적으로 계량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러한 주제에 대한 논문은 경제가 아닌 '온라인 괴롭힘'에 중점을 둘 수 있다고 경고했고, 우는 이에 낙담한 상태라고 한다.

가십도 모든 직업에서 중요하게 작동한다. 특히 익명 게시판에서는 허위사실이 들풀처럼 퍼져 사람들의 커리어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우는 이번 연구를 통해 "더 많은 여성들이 연구 환경 자체를 바꾸는 분야에 들어오길" 제안한다고 NYT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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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경제학 분야에서 여성이 소수자라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미국 경제학 협회 사이트 내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톱 랭킹 대학의 박사과정부터 정년을 보장받는 테뉴어 교수에 이르기까지, 여성은 소수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다른 학문에 비해 남성보다 쉽게 '학문의 사다리'에서 쉽게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지난 20년간 바뀌지 않은 불문율이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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