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8) 쓸모는 많으나 쓰겠다는 곳은 없는 존재

중앙일보

입력 2017.08.21 04:00

업데이트 2017.10.23 18:14

[사진 Imageq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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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걱정은 됐다. 막연히 ‘어떻게 되겠지’하면서도 퇴직 후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몇 년 동안의 ‘(소득의) 크레바스’를 어찌 건널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서였다. 그래서 퇴직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한 출판사 사장에게 물어봤다. “내가 시장에 나가면 경쟁력이 있을까?”

경험 노하우 아무리 출중해도
나이 든 부하 부리기 어려워
재취업 어려울 거란 지인의 예언
결국 보수 눈높이 낮춰 재취업

배운 도둑질이라고, 정년퇴직 후에는 출판계 언저리에서 글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던 참이었다. 그러기에 ‘신문사’ 간판을 떼고 난 후 오로지 내가 가진 능력만으로 밥벌이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단순히 취재원과 기자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가까운 후배라 여겼던 그 출판사 대표는, 그러나 냉정한 대답을 내놨다.

"쓸모는 많지만 쓸 데는 별로 없을 겁니다."

말인즉, 30년 가까이 글을 다루는 일을 한데다 나름 무난한 성격이어서 출판계에서는 기획이며, 대필, 원문 교열 등 할 수 있는 일은 많을 거라 했다. 한데 정규직이든 프리랜서든 기꺼이 일을 맡길 출판사는 드물 거란 예상이었다.

이른바 ‘갑’으로 행세했던 만큼(그런 유세를 한 기억은 없지만) 출판사로서는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 난감할 거란 이유에서였다. 그러면서 일을 하다 보면 싫은 소리를 해야 할 경우도 있을 텐데 출판사 대표라도 머리 허연 전직 기자를 여느 편집자 다루듯 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머리 염색. [사진 Freepik]

머리 염색. [사진 Freepik]

그러면서 퇴직 후 취업에 도움이 될 팁 두 가지를 들려주었다. 하나는 머리 염색이었다. 재취업하면 어쨌거나 대표든 편집장이든 나이 어린 상급자가 있을 텐데, 그들 입장에서는 반백의 아랫사람에게 마구, 적어도 허물없이 대하기는 불편할 테니 이를 덜어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는 재취업자 본인이 나이를 내세울 의도가 전혀 없어도 상대는 그렇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안경을 머리에 써 버릇하기였다. 출판사 대표나 편집장과 원고 또는 출판기획서를 들고 이야기할 기회가 적지 않을 텐데, 노안이랍시고 그걸 읽기 위해 그때그때 안경을 추켜올리면 상대가 자기보다 나이 들었음을 새삼 실감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발랄한 느낌을 주기 위해 젊은이들이 선글라스 끼듯 안경을 머리에 얹어 쓰라고 조언했다.

안경 쓴 남자. [사진 pakutaso]

안경 쓴 남자. [사진 pakutaso]

듣고 보니 유용한 정보로 여겨졌다. 한데 어느 것도 따르지 않았다. 머리 염색은 남세스러워 시도하지도 않았고, 안경 또한 다초점 안경으로 대체했다. 그래선지 상의를 했던 출판사 대표조차 일자리를 제안하지도, 일감을 맡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기대보수 수준을 낮춘 것이 일자리나 일감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문제는 돈’인가 보다.

김성희 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jaejae99@hanmail.net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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