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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으로 삶의 궤적을 그리는 '브이아이피' 박희순

중앙일보

입력

박희순 / 사진=전소윤(STUDIO 706)

박희순 / 사진=전소윤(STUDIO 706)

[매거진M] 무슨 작심이라도 선 걸까. 박희순의 최근 행보는 무서울 정도다. 김훈 원작의 ‘남한산성’(9월 개봉 예정, 황동혁 감독), 퓨전 사극 ‘물괴’(허종호 감독), 실화를 다룬 ‘1987’(장준환 감독) 등 쟁쟁한 기대작에 내리 주역으로 이름을 올렸다. 북한 요원 리대범을 연기하는 ‘브이아이피’는 그 반전의 서막이다.

―박훈정 감독과 두 번째 영화다. 연출 데뷔작이었던 ‘혈투’(2011)에서도 주연을 맡았었는데, 둘 사이가 퍽 끈끈한 모양이다. 
“가끔 연락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한다. ‘시놉시스만 100개’란 말이 있을 정도로 박 감독이 워낙 이야기꾼이다. ‘혈투’ 때 구상 중인 시나리오라며 여러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그때 ‘신세계’도 있고, ‘대호’도 있고, ‘브이아이피’도 있었다. ‘신세계’ 때 다시 작업할 기회가 있었는데, 일정이 꼬이면서 출연이 무산돼 아쉬웠다.”

―‘브이아이피’에도 가장 먼저 캐스팅됐다던데. 
“박 감독이 지난해 ‘금월’이란 제작사를 차렸다. 사무실 근처에 냉면 맛집도 있고 해서 종종 들르는데, 어느 날인가 냉면 먹자고 해서 갔더니 대뜸 ‘브이아이피’ 대본을 주더라. 가장 먼저 캐스팅된 배우였기 때문에, 그때만 해도 당연히 내가 ‘브이아이피’ 주인공인 줄 알았다(웃음).”

―주인공이지만, 다른 세 배우에 비해 분량이 적긴 하다.
“안 그래도 ‘분량이 너무 적은 거 아니냐’고 했지. 그런데 박 감독이 영화에서 제일 좋은 캐릭터라고 꾀더라(웃음). 모니터링 차원에서 시나리오를 돌렸을 때 가장 반응이 좋았던 캐릭터였다더라.”

'브이아이피' 스틸컷

'브이아이피' 스틸컷

―시나리오의 느낌은 어땠나. 
“과연 박훈정다웠다. 국정원 요원, 북한 요원이 등장하는 흔한 소재의 범죄 첩보물인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희한하고 매력적이었다. 극적인 장면 없이 긴장감이 계속 유지된다고 해야 하나. 요즘 한국영화들이 굉장히 자극적인 것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는데, ‘브이아이피’는 극악스럽지 않아서 좋았다.”

―오늘 사진 찍는 내내 유독 눈에 힘이 잔뜩 실려 있더라. ‘브이아이피’ 리대범의 감정이 떠올랐나. 
“엊그제 ‘1987’촬영이 끝났는데, 그 감정까지 더해져 더 강한 표정이 나온 걸지도(웃음). ‘브이아이피’의 리대범은 단순히 인상만으로 요약하기 힘든 인물이다. 외모적으로는 뭔가 초월한 사람의 표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초월한 사람의 표정이라. 
“리대범이 그런 인물이다. 북한 보안성 요원인데, 조직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쇄 살인범 김광일을 잡으려다 좌천까지 당하지만, 그럼에도 김광일 검거를 포기하기 않는다. 소신을 굽히지 않는 정의파지. 초반엔 굉장히 날이 서있고 예민한 캐릭터로 보이지만, 어느 순간 자기 인생을 한 범인에게 바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질 게다. 얼핏 지친 사람의 표정이지만 눈빛은 매섭다. ”

박희순 / 사진=전소윤(STUDIO 706)

박희순 / 사진=전소윤(STUDIO 706)

―기존 영화의 북한 요원 캐릭터와 비교한다면. 
“일단 외모가 다르지. 그간 북한 요원은 대개 싸움도 잘하고 잘생긴 캐릭터로 그려졌다. 공유도 그랬고, 현빈도 그랬고. 탑도 그랬고. 그에 비하면 내가 연기한 리대범은 상당히 인간적이다(웃음). 박 감독은 누가 봐도 북한 요원처럼 보이는 캐릭터는 싫다고 했다. 국제적으로 비밀스런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절제된 행동을 할 테고, 북한색에 젖어 있지도 않을 거라 본 거지. 그래서 억양이나 말투에도 모호한 느낌을 담으려고 했다. 리대범 캐릭터에 내가 덧붙인 설정은 얼굴의 상처가 유일하다. 거칠게 살아온 삶이 얼굴에 보였으면 했다.”

―촬영 전 가장 기대했던 장면은. 
“내 분량보다 김광일이 범죄를 저지르는 대목이 어떻게 그려질지 무척 궁금했다. 이종석이란 배우가 사람을 죽이고 괴롭히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됐거든.”

―그 부분에선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이종석은 박 감독의 신의 한수가 아닐까 싶다. 기존 영화에선 연쇄살인범의 잔혹한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특이한 설정을 취할 때가 많았다. 소위 ‘연기질’ 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캐릭터 말이다. 그런데 김광일은 아무런 설정 없이, 배우 이종석이 지닌 매력을 십분 활용한다. CF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뽀얗고 하얀 꽃미남이 모든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 버리는 거지. 그래서 더 섬뜩한 거고.”

―다시 만난 박 감독은 어땠나. 
“여전했다. 쿨하고, 직설적이고, 군더더기 없고, 과장하는 거 싫어하고. ‘혈투’ 때는 각 파트별로 믿고 맡기는 느낌이 컸는데, 이제는 아무도 안 믿는다. 모든 파트를 직접 챙기고 확인한달까. 완벽하지 않으면 보여주지 않겠다는 생각이 선 모양이다. 의심병 같기도 하고(웃음).”

(왼쪽부터) 장동건, 이종석, 김명민, 박희순 / 사진=전소윤(STUDIO 706)

(왼쪽부터) 장동건, 이종석, 김명민, 박희순 / 사진=전소윤(STUDIO 706)

―‘브이아이피’는 물론 차기작들의 무게감도 장난이 아니다. 김훈 원작의 정통 사극 ‘남한산성’이 9월 개봉을 앞두고 있고, 뒤이어 괴물이 등장하는 퓨전사극 ‘물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다룬 ‘1987’도 대기하고 있다. 
"나도 신기하다. 우연찮게 동시에 또 연달아 작품에 매달렸다. 한 작품에 올인하고, 그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게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번 기회로 그런 고정관념이 사라졌다. 두 개든 세 개든 그 안에서 순간순간 집중하고 최선을 다 하면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육체적으론 힘들었지만, 한 촬영장에서 받은 에너지가 다른 작품에서 시너지가 되기도 했다. 좋은 배우들, 좋은 감독들과 함께였잖나. 얼마나 많은 공부가 됐는지 모른다.”

―이제 개봉만 남았다. 
"진하게 한잔 마시고 싶다. 촬영 내내 참았거든(웃음).”

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 장소 협찬=콴시(KUAN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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