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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無知’가 빚는 ‘대한민국 건국’ 논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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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호 02면

사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건국절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문 대통령은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규정했다. 또 “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라고 덧붙였다. ‘임시정부기념관’도 건립하겠다고 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주장해 왔다. 노무현 정부 때까지 건국절 논란은 없었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한 헌법을 누구나 존중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 일군의 뉴라이트 학자들이 대한민국 건국은 1948년이라고 주장하며 논란이 시작됐다.

우리는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밝히려는 문 대통령의 기본 뜻에는 추호의 이견도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 그렇다고 해서 ‘1919년 건국’이 옳다는 얘기는 아니다. 뉴라이트가 건국절 논란을 일으킨 배경에는 노무현 정부 때 발간된 ‘근현대사 교과서’의 좌편향 논란이 있었음을 잊어선 안 된다. 건국절 논란은 이미 정파 싸움의 단골 소재가 됐다. 문재인 정부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표방한다고 해도 논란을 반복할 뿐이다. 우리는 보다 근원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짚어보길 제안한다.

‘대한’이란 국호를 사용한 정부는 우리 역사상 세 개가 있다. 대한제국,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민국이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대한민국으로의 계승만을 언급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대한’이란 국호뿐 아니라 대한제국의 근대적 성취를 대부분 계승했음을 문 대통령은 놓치고 있다. 그것은 문 대통령만의 잘못은 아니다.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한 일제는 대한제국을 망해도 싼 허수아비 국가로 왜곡해 놓았다. 광복 70년이 넘었는데도 왜곡된 역사 인식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용어를 보자. 소위 ‘갑오경장’ ‘을미사변’ ‘아관파천’이란 명칭은 철저히 일제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식민지 프레임’(식민사관)은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중앙SUNDAY 8월 13일자 1, 4, 5면 ‘식민지 프레임, 이제는 벗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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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갑오년) 조선인 20만 명 이상이 희생된 ‘갑오왜란’을 일제는 역사에서 누락시키며 ‘갑오경장’이란 용어로 미화·왜곡했다. 갑오왜란의 연장선에서 ‘인아거일(引俄拒日·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 정책을 편 명성황후를 일본군이 살해한 천인공노할 사건을 ‘을미사변’이란 중립적 표현으로 얼버무린 것도 일제였다. 사실상 망국 상황에서 항일독립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국내 망명’을 하는데, 이를 ‘아관파천’으로 폄하한 것도 일제였다. 이 점에 관해선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져 좌편향 비판을 받은 ‘근현대사 교과서’나 박근혜 정부 때 만들어진 ‘뉴라이트 국정교과서’ 시안이나 마찬가지다. ‘광복절’에서 ‘광복’이란 ‘이전에 존재했던 국가를 되찾는 것’을 뜻한다. 반면 ‘건국’은 ‘없던 나라를 세운다’는 의미다. 건국과 광복은 의미상 충돌한다. 따라서 우리가 광복절을 최고의 국경일로 중시하는 한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에서 나오는 그 어떤 건국절 주장도 폐기되어야 옳다.

‘광복’이 전제하고 있는 그 이전의 국가는 두말할 것 없이 ‘대한제국’이다. 대한제국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근대 민족국가였고 애당초 명실상부한 ‘민국(民國)’으로 건국되었다. 이에 대한 학계의 연구도 충분히 축적되어 있다. 대한제국기에 이미 ‘대한민국’으로도 불렸다. ‘식민지 프레임’에 눈먼 후손들만 모를 뿐이다. 그랬기 때문에 3·1운동 직후 상하이임시정부가 만들어질 때 항일 독립운동 지사들이 대한제국을 계승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던 것이다.

영국·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일본 등과 같이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들은 건국절이 없다. 우리의 개천절과 같은 의미의 ‘개국절’이나 우리의 광복절과 비슷한 ‘독립기념일’ ‘정부수립일’은 있다. 더 이상 건국절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대한제국 재조명에서부터 다시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볼 것을 제안한다.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모두 식민지 프레임을 무심코 재생산해온 점을 반성해야 한다. 대한제국에 덧씌워진 경멸감 해소 작업부터 선결돼야 할 것이다. 올해는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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