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의 나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은퇴한다."
한국야구 살아있는 전설, 주요 통산 기록 보유 #한국·일본에서 연봉으로만 약 500억원 수입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은퇴 투어하는 수퍼스타
'국민타자' 이승엽(41·삼성 라이온즈)에게 사람들은 "은퇴하지 마라"고 한다. 아직도 그는 팀의 중심타선에서 한 방을 날려주는 해결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승엽은 단호하다. 18일 수원구장에서 열린 kt와의 원정경기에 앞서 두 번째 은퇴투어 행사를 갖은 그는 "사람들은 지금 나에게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나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이젠 정말 완벽하게 떠날 때가 됐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승엽이 만족하지 못하는 올 시즌 기록은 이렇다. 18일 현재 타율 0.280, 19홈런, 69타점이다. 3할대 타율과 40홈런을 거뜬히 치던 화려한 전성기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우리 나이로 마흔 두 살 노장으로서는 준수한 성적이다. 홈런은 외국인 타자 러프(20홈런)에 이어 팀에서 두 번째로 많이 쳤다. 야구팬들은 "이승엽이 여전히 대단하다"고 하지만, 이승엽은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40홈런을 치면 은퇴를 고려해보겠다."
이승엽은 전부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기록을 세웠다. 1995년 삼성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그는 올해까지 KBO리그에서 15시즌 동안 주요 통산 타격 기록을 점령했다. 18일 현재 홈런(462), 타점(1480), 득점(1337), 루타(4026) 등에서 1위에 올라있다.
이승엽의 홈런 기록은 단연 독보적이다. 현역 선수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이라 당분간 깨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역대 KBO리그 통산 홈런 2위인 양준혁은 351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8시즌 동안 활약하며 159개의 홈런을 친 이승엽은 한·일 통산 621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600개 이상의 홈런을 친 것은 8명 뿐이다.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오 사다하루, 노무라 가쓰야 2명만이 통산 600홈런 고지를 점령했다.
'이승엽' 이름 석 자가 가장 많이 회자된 때는 2003년이었다. 1999년 54개의 홈런을 때려내 KBO리그 최초로 단일 시즌 50홈런 시대를 연 이승엽은 2003년에는 56개의 홈런을 쳐 당시 한 시즌 최다 홈런 아시아 신기록을 작성했다. 그의 홈런공을 잡으려고 야구팬들은 잠자리채를 들고 경기장을 찾았다.
스타 플레이어였던 만큼 벌어들인 수입도 어마어마하다. 이승엽은 지난 23년간 한국과 일본에서 활약하면서 연봉으로만 500억원 가까운 수입을 올렸다. 일본에서 8년간 약 390억원, 한국에서 15년간 90억원을 벌어들였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그는 타자로서는 역대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선수가 됐다.
이승엽이 많은 사랑을 받은 건, 깨끗한 사생활도 큰 몫을 했다. 스포츠 스타들은 음주·도박·성(性) 등 다양한 스캔들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승엽은 추문에 휘말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프로야구를 강타했던 병역 비리, 약물 복용, 승부조작, 음주운전 등은 그와는 거리가 먼 스캔들이었다. 그는 "프로야구 선수이기 때문에 일반인과 다르게 작은 일도 더 크게 부각된다. 그래서 더욱 (사생활을) 조심했다. 그게 답답하고 힘들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적응이 돼 오히려 편하다. 나는 프로야구 선수로 살면서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생활은 충분히 감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엽의 마지막 시즌 목표는 포스트시즌 진출이었다. 그는 올 시즌 개막 전 "대구의 새 야구장(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플레이오프를 반드시 해야 한다. 이건 목표가 아니라 내 사명감이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한국시리즈 진출"이라고 했다. 하지만 '삼성 왕조'는 올해 무너졌다. 삼성은 시즌 초반 순위표에서 가장 아래인 10위까지 처졌다. 현재는 9위다.
이제 이승엽은 매 타석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31경기가 남았다. 마지막이라는 걸 매일 실감하고 있다. 한 타석 한 타석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며 빙그레 웃었다.
이승엽의 은퇴 투어 행사는 계속된다. 국내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상대 팀 팬 앞에서 은퇴 투어를 하는 건 이승엽이 처음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마지막 시즌을 맞은 수퍼스타에게 예우 차원에서 은퇴 투어를 열어주는 게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행사는 삼성의 구단별 마지막 원정경기 날 열린다. 지난 11일 대전(한화), 18일 수원(kt)에 이어 23일 서울 고척(넥센), 다음달 1일 인천(SK), 3일 서울 잠실(두산), 8일 부산(롯데), 10일 광주(KIA), 15일 창원(NC)으로 이어진다. LG전 일정은 9월 이후 결정된다. 은퇴식은 투어를 모두 마친 뒤 대구 홈팬들 앞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수원=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