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소장파 ‘남·원·정’ 정병국 바른정당 의원
정병국(59) 전 바른정당 대표는 ‘원조 소장파’다. 60 고개를 몇 달 남겨 놓고 어울리지 않지만 젊은이들과 ‘소통’한다는 의미로 자랑스러워한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그의 체력은 소장파 못지않다.
자유민주주의 지켜야 하지만 #양극화 부작용 계속 외면하면 #과연 누가 그런 체제 지키겠나 #스스로 대통령 탄핵해야 했는데 #어느 누구 책임지려는 사람 없어 #내년 지방선거서 부활은 힘들어
‘남·원·정’은 2002년 16대 대선 ‘차떼기’ 사건 때 생겼다. 정 전 대표와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지사가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개혁을 요구해 붙여졌다. 세 사람은 모두 바른정당에 합류했다.
그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함께 국빈 자격으로 이란·파키스탄·미얀마를 방문하고 13일 귀국했다. 바로 다음 날 그는 종로에서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와 ‘청년정치학교’ 가두홍보를 했다.
“젊은이들 반응이 참 좋았어요. ‘우리가 참 정치를 잘못했구나’ 하는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젊은층이 ‘보수의 가치와 철학’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메시지’가 잘못돼 기피한 거구나. 이런 생각을 했죠.”
그는 최근 『나는 반성한다- 다시 쓰는 개혁보수』라는 책을 썼다.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을 잃어버리고 기득권에 안주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창피”하게 된 상황에 대한 반성문이다.
“보수든 진보든 사회 변화를 따라가야 하는 것은 같다고 봐요. 어디에 비중을 더 두느냐 차이죠. 과거 성장 위주 시대에 ‘환경’은 보수의 어젠다가 아니었어요. 그러나 더는 진보만의 어젠다가 아닙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진보 어젠다라며 멀리한 게 보수가 욕을 먹는 이유입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경쟁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부작용이 나타났는데 가장 큰 문제가 양극화라는 것이다.
“이걸 계속 방치하고 원칙만 지킨다면, 과연 누가 이 체제를 지키겠어요. 박근혜 정부는 선거 때 중심 과제라고 해놓고는 집권한 뒤 완전히 도외시했잖아요. 그 결과 국민과 멀어져 위기를 맞은 거죠.”
- 그렇다면 집권을 하지 않아야 맞는 것 아닌가요.
- “그것도 맞죠. 그렇기 때문에 각오를 하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세력이 바른정당입니다. 우리도 공동 책임이다, 새누리당은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하다 결국 분당했습니다.”
-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입당 타진설로 논란을 벌였지만 어쨌거나 그런 세력이라면 당을 같이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는 그 당시 영입 대상도 아니었고,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받아줄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습니다. 재판을 받고 있어서. 어쨌든 합칠 거라면 분당하지 않았죠. 분당할 때와 뭐 변한 게 있나요.”
- 그 안에 뜻이 같은 사람들도 있잖아요.
- “많죠. 그게 용기예요. 어떤 철학을 갖고 정치를 하는가가 중요하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가 더 중요하죠.”
- 홍준표 대표는 내년에 바른정당이 없어질 거라는데.
- “그분은 아예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니 대꾸할 필요가 없고…. 어려워요. 어렵지만 없어진다면 한국당이 더 먼저 없어지겠죠. 내년 지방선거에서 우리가 부활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아요. 긴 호흡을 갖고 가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친노 패권주의자들은 정권을 잃고 ‘폐족(廢族)’을 선언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만든 대통령을 스스로 탄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국면까지 왔으면서 우리는 어느 누구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고, 박 전 대통령은 법정다툼을 계속해요.”
그는 “진정으로 보수가 살려고 한다면 박 전 대통령이 모든 게 제 책임이다. 이렇게 나왔어야 했다”고 말했다.
“비서가 무슨 문제가 있어요. 대통령 지시에 따라 움직인 사람들이지. 호가호위(狐假虎威)했던 친박 중 대표적인 사람들도 책임지고 사퇴해야죠. 그래야 저는 보수가 다시 회생할 기회가 있다고 봐요. 그게 안 된 상황에서 보수가 다시 회생하려면 10년 뒤? … 정말 쉽지 않다고 봐요. 긴 목표를 향해 가야 5년 안에라도 바뀔 수 있는 것이지 당장 내년 지방선거, 또 3년 뒤, 5년 뒤… 이렇게 얘기하면 불가능하다. 이렇게 봅니다.”
- 조직강화특위 위원장을 맡고 계신데 인재 영입은 잘 되나요.
- “쉽지는 않아요. 현실은 어렵지만 미래를 봅니다. 과거에는 다 실패한 젊은층이 오고 있어요. 정말 희망을 보고 있죠.”
- 한국당하고는 계속 경쟁 관계로 가나요.
- “경쟁 관계라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버린 정당이잖아요.”
- 국민의당하고는.
- “다른 정당하고 관계를 통해 뭐를 하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고요. 정치공학적이나 선거공학적으로 접근하면 망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가치 철학에 맞으면 찬성하고, 반대할 때는 명확하게 반대할 겁니다.”
- 최순실씨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까.
- “아이러니하게도 박 전 대통령을 대표로 옹립한 게 남·원·정입니다. 천막당사도 우리가 치게 한 겁니다. 어떤 안을 가지고 가면 ‘와, 너무 좋은 안이다’. 이러셨던 분이, 다음 날 딴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당장 결정할 것이 있으면 구석에 가서 전화를 거세요. 그래서 ‘아, 박정희 시절의 원로들이 있나 보다’ 생각했지, 최순실·정윤회가 있는 줄은 몰랐죠.”
-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하실 때는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없었나요.
- “있었죠. 전임 유인촌 장관이 영화인이니까 그전 정권에서 한 행태를 척결한다면서 역으로 또 그런 현상이 벌어졌더라고요. 노무현 정부에서 진보진영이 아니라 명계남·문성근·이창동… 몇 사람이 주도했어요. 같은 진보진영 사람들조차 비난했어요. 유인촌 장관은 얼마나 당했겠어요. 장관이 돼 탕평한다면서 역으로 선을 그어 버린 거예요. 진보와 보수로. 그러니까 시끄럽죠. 저는 진짜 탕평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도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 때처럼 리스트를 만들지는 않았어요.”
-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평가하면.
- “한마디로 욜로(YOLO) 정권입니다. 당장 자기만 생각하는 거예요.”
- 개헌이 가능하다고 봅니까.
- “교과서에서 대통령중심제는 의사 결정이 신속하고 모든 정책이 지속 가능하다고 배웠잖아요. 그런데 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정권이 바뀌면 정책들이 다 바뀌어요. 같은 당에서도 바뀌어요. 분화되고 다원화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의원내각제가 맞다고 보고요. 이건 꼭 바꿔야 합니다.”
그는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 때 김영삼 후보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선거가 끝난 뒤 김무성 당시 재정국장의 소개로 비서실에 들어가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제2부속실장, 이명박 정부에서 문체부 장관을 역임했다. 2000년 16대 총선 때 김길환 의원이 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꾸는 바람에 고향인 양평-가평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처음 당선돼 20대까지 내리 5선을 했다.
[S BOX] 대학 때 학생운동으로 수배·도피 … 안기부 취조실서 6·29 맞아
“우리 아버지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시는 분이에요. 머슴도 하셨고. 그런데 제가 학교 다닐 무렵 그 동네에서 농사를 제일 많이 짓는 분이셨어요.”
그래도 농사꾼에게 서울 유학은 쉽지 않았다. 정병국 의원은 아버지와의 ‘투쟁’ 끝에 초등학교 5학년 때 형님을 따라 여주(현 양평)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학생운동으로 수배돼 경주~포항 도로공사장 숙소에서 10·26 소식을 들었다. 1980년에는 ‘택시운전사’처럼 광주 잠입을 시도하다 길목마다 차단해 익산에서 포기했다.
6·29는 안기부 취조실에서 맞았다. 아버지는 고1 때 작고했다. 정 의원 때문에 매일 형사들이 찾아오자 어머니도 견디지 못하고 상경했다. 동네 사람들이 “극성맞게 서울로 유학보내더니 빨갱이를 만들었다”고 손가락질했기 때문이다. 단칸방에 어머니와 형, 누나, 여동생 둘이 함께 살아야 했다. 정 의원은 입주 과외를 했다. 93년 정 의원이 청와대 제2부속실장이 된 뒤 관사로 어머니를 모셨다.
“어머니께 못할 짓을 많이 한 거죠. 스트레스성 당뇨로 돌아가셨어요. 절대 시골에 안 내려가셨는데 96년 시골집을 새로 지은 뒤 가셔서 그동안 못 봤던 친인척, 동네 사람들 다 보고 4개월 뒤 돌아가셨어요.”
최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의 대학생 둘째 아들이 그의 사무실에서 정치수업을 받았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