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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징징징 울면서 마감할 때 가장 살아 있다고 느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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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단순히 글만 쓰는 사람이 아니다. 쓰기 이전에, 아니 쓰기 위해 읽는 사람이다. 결국 백지에, 그 백지를 메운 흔적을 묶은 책에, 그들이 쏟아놓는 것은 자신들의 생 체험과 독서 이력이 뒤섞인 어떤 덩어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 시대의 작가들은 요즘 어떤 책에 꽂혀 있을까. 그들 글쓰기의 뿌리에서 자양분 역할을 하는, 작가가 읽는 책 얘기를 작가로부터 직접 듣는다. 그들의 작업실을 찾아가서다. 표정과 육성이 살아 있는 책 소개, '작가의 요즘 이 책'이다. 1시간가량 동영상 촬영분을 10~15분 길이로 편집해 생생히 전한다. 영상에 못 담은 얘기는 기사로 함께 소개한다. 네 번째 순서는 술에 관한 한 인생과 작품이 일치하는 '한국문단 최초'의 작가 권여선이다. 이건 조롱의 수사(修辭)가 아니라 인간 권여선에 대한 헌사(獻辭)에 가깝다. 그것도 기자의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라 몇 년 간 면밀히(실제로는 느슨하게) 권씨에 대한 동료 작가들의 태도를 관찰한 실증의 결과다. 그는 어떻게 이런 평판을 얻게 됐나. '작가의 요즘 이 책'은 격주 토요일 아침마다 업데이트된다(잘 지켜지지 않지만 그게 원칙이다). 지금까지 김훈·정유정·김연수를 소개했다.

지난해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로 반향 일으킨 소설가 권여선 #"대학 4학년 때 가장 친했던 친구 한강에 투신 자살…가장 괴로워" #인간 치부 까발리는 신랄한 소설 쓰다 2, 3년 전부터 변화 모색 #"항상 멀쩡한 사람 존경스럽다" 하루 마시고 이틀 쉬는 퐁당당 음주

 권여선(52)이 누구? 라는 반응을 보이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작가의 요즘 이 책(이하 작책)'이 만난 이전 작가들에 비하면 지명도나 대중적 인기에서 처진다고 생각하시나? 네 번째라는 앞순위에 그를 초대한 건 기자의 작가 섭외 능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작책을 함께 만드는 이문혁 감독과 기자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의기투합한 결과인데, 솔직히 얘기하면 작책을 핑계로 권씨와 술 한잔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만나고 보니 그의 순서는 더더욱 '정당'했다. 그는 '성장성'이 누구보다 돋보이는 작가였다.
 자신의 사적인 공간은 도저히 보여줄 만한 게 없고 실제로 작업도 집이나 작업실이 아닌 근처 카페나 도서관에서 한다는 주장을 흔쾌히 받아들여, 권씨 인터뷰는 그 대신 맥주도 파는 서울 상암동의 한 '책맥' 서점에서 이뤄졌다. 숨만 쉬어도 진땀이 나는 7월 중순 무더운 날이었다. 마침 권씨 책이 돋보이는 자리에 진열돼 있길래 물었다.
 -저런 걸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 한강 소설보다도 위에 꽂혀 있는데.
 "(심드렁한 말투로) 내가 점점 유명작가가 되어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 나날이 유명해질 수가 있지? 유명했다가도 잊히고 하는 건데. 미미하지만 계속해서 유명해지고 있구나, 그런 생각?"
 그러니까 성장성이다. 계속해서 물었다.
 -길 가다가 아니면 식당 같은 데서 알아보는 사람도 있나.
 "합정역 근처에 가끔 가는 술집이 있는데 거기 오는 젊은 사람들이 어쩌다 아는 척을 한다."

 역시 술이다. 지난해 단편집 『안녕 주정뱅이』를 내면서 만천하에 애주가로 '커밍아웃'했지만(페이스북에서 동료 문인들의 음주 러브콜이 이어졌고, 9월 열린 독자 대상 북콘서트의 이름이 '주정당 창단 선포식'이었다) 그의 소설 속 음주 장면은 역사가 깊다. 음주의 강도와 술자리 해프닝의 치열함을 기준으로 권씨의 모든 작품을 재배치하는 게 가능할 정도다. 그럴 만큼 그의 소설에서는 웬만해서는 술 마시는 장면이 빠지지 않는다.
 등단작인 1996년 상상문학상 수상 장편 『푸르른 틈새』부터 그렇다. '가투'에 나가기 전 항상 막걸리 한 잔 걸쳐야 하는 파리한 운동권 여학생이 나온다. 2012년 장편 『레가토』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운동권 리더 박인하가 2년 후배 오정연을 자신의 자췻방에서 성폭행한 것도 어쩌면 순전히 술 때문이다. 2004년 첫 소설집 『처녀치마』 이후 권씨가 펴낸 모두 5권의 소설집 표제작(소설집 제목과 같은 제목의 수록 단편)들을 음주라는 관점에서 얘기해볼 수도 있다.

 가령 '처녀치마'는 고향을 찾은 여성 주인공이 지금은 여인숙이 된 옛 고향집에 투숙해 홀로 깡소주 마시는 이야기. 2007년 소설집 『분홍 리본의 시절』의 표제작은 우연히 마트에서 마주친 과거 운동권 선후배가 시종일관 술 마시는 이야기, 2010년 소설집 『내 정원의 붉은 열매』의 표제작은 두 여성 주인공이 와인 마시며 학창시절을 회고하는 운동권 후일담이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음주 강도가 현저히 떨어지긴 하지만 2013년 『비자나무 숲』의 표제작에도 맥주에 기갈 들려 운전을 해야 하는데도 결국 캔을 따고야 마는 20대 남성이 나온다.

 지난해 『안녕 주정뱅이』는 결정판. 수록된 7편 모두에 음주장면이 있다.

 권씨는 왜 이토록 음주에(정확히는 음주장면 묘사에) 집착하는 걸까. 궁금했던 그의 음주 습관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이 얘기 이제 그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결론을 당겨 말하면,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적어도 기자에게는.

 -쓸 때도 마시나.
 "쓸 때는 안 마신다. 그건 안 된다. 커피 마시며 쓴다. 오늘 좀 썼다, 싶으면 스스로에게 보상은 한다. 집에 가서 마신다."
 -『안녕 주정뱅이』에는 모든 작품에 술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작품들을 모으고 나니 예외 없이 그렇더라. 그래도 일관성이 있지 않나. 술꾼 독자들을 붙잡는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얼마나 자주 마시나.
 "40대 초반까지만 해도 매일 먹는 시기가 있었다. 뜻한 바 있어 퐁당퐁당 격일제 음주를 하다 그것도 힘들어진 다음부터는 퐁당당 퐁당당 하루 마시고 이틀 쉰다."
 -좋아하는 주종은.
 "소주인데, 이제는 운명이 됐다. 스스로 취한 정도를 소주로 가늠하기 때문에 중간에 갑자기 위스키나 와인을 마셔버리면,"
 -음주량 조절에 실패하나.
 "조절에 실패한다. 항상 낭패를 본다. 소주로 쭉 계산해야 아, 내가 얼마 만큼 먹었으니까 이제 필름이 끊기기 시작하겠구나, 여기서 더 마시면 넘어지겠구나…."
 -술 마시려면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관리 비결이 있나.
 "특별히 없다. 몸을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그냥 잠을 많이 잔다. 해장에는 무조건 잠이다. 열여섯 시간씩 잘 때도 있다. 자고 나서 좀 괜찮아지면 살살 몸을 달래는 거지."

 술꾼에게 왜 마시냐는 질문만큼 답답한 질문도 없겠지만 그래도 물었다.
 "첫 번째로 젊을 때부터 쭉 마셔왔기 때문에 이제는 술에 의존적이 되서 그냥 술이 먹고 싶다. 그 물질이 그냥 들어왔으면 좋겠는 거다. 두 번째는, 사람이 시간을 보내는 게 제일 힘든 거라고 생각하는데 술을 마시면 시간을 매우 많이 잡아 먹는다."
 -보내기 힘든 시간을 술먹는 시간이 잡아먹어준다?
 "그렇다. 인생을 되게 짧게 살 수 있는 거다. 나는 긴 시간을 깨어 있는 상태로 보내는 사람을 굉장히 존경한다. 그러니까 내게는 깜빡 죽어주는 시간이 필요한데, 술을 먹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아, 내일 오후까지는 아무 것도 안 할 수밖에 없는 정당성이 생기는 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술은 시간을 뭉턱뭉턱 잘라 먹는다. 착착착."
 이런 발언은 아무리 공감이 가더라도 공식적으로는 놀라운 척해야 한다. 그저 삶은 견디는 것이고, 뭔가 결단을 내리지 못해 산다는 이야기로까지 들린다.
 무엇보다, 반복은 지옥이기 때문에 망각이 필요한데 작은 죽음인 만취 후 망각은 다시 새로운 삶을 살 게 해준다, 권씨 발언의 바탕에는 이런 생각이 깔려 있지 싶은데, 유심히 살펴보면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
 출판사를 문학동네로 바꿔 출판한 2007년 『푸르른 틈새』에는 평론가 정여울이 진행한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자 권씨는 이렇게 답한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대학교 3, 4학년 때였다. 그때는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친한 친구였던 박혜정도 그때 죽었다 (…) 그 전날 술 먹고 헤어지고 그 다음날 저녁 때 한강에 투신했다 (…) 좋았던 때는…잘 모르겠다. 의외로 없네. 너무 많거나. 그런데 나이 먹는 건 좋은 것 같다. 삶이 점점 이배속, 삼배속으로 스피디하게 진도를 뽑았으면 좋겠다."
 삶에 대한 지독한 권태가 인생의 어떤 시기 환멸 체험과 관련 있다면 권씨가 말하는 '못 견디겠는 삶'을 좀 진부하긴 하지만 살아남은 자의 슬픔, 죽지 못한 자의 부끄러움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 스스로 『레가토』부터, 2014년 장편 『토우의 집』이 본격적인 변화의 분기점이라고 했지만, 그 전까지 그의 소설에서 두드러졌던 어떤 집요함이나 신랄함, 대개의 경우 감추고 싶어하기 마련인 인간 내면의 치부까지 낱낱이 까발기는 결벽 역시 그런 꽃시절의 참담한 경험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권여선의 견디는 삶을 보며, 그의 소설 속에 나오는 최소한의 삶, 극단적인 인생을 바라보며 독자들은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럴 것 같다. 그렇다면 권여선은?
 "소설을 쓸 때 제일 싫으면서도 작가가 되길 잘했다, 하는 생각도 가장 많이 한다. 소설 쓰기는 그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콩알 만한 우주를 만들어내는 거다. 조금씩 그걸 만드는 게 너무너무 재미있으면서 너무너무 싫다. 쓸 '꺼리'가 있다고 써지는 게 아니다. 어떻게 써야 할지 아무 생각이 안 난다. 맨땅에 헤딩하는 거다. 그래서 괴로운데, 괴로워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마감은 해야 하니까 징징징징 울면서 마감을 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생각을 가장 강하게 하게 된다. 이게 살아 있는 거구나, 그래서 다른 작가도 그렇겠지만 약을 못 끊듯 소설을 쓰는 거구나."
 쓰기의 반복이 지겨워지지 않는 이상 작가 권여선이 우리 곁을 떠날 일은 없을 것 같다. 다행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항상 맨땅에 헤딩해야 한다고 하지 않나.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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