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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이 회사 팀장님이라면? ‘브이아이피’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매거진M] 최후의 순간까지 처참하게 유린당하며 죽어간 여성들. 그 잔혹한 살인 사건 용의자로 한 청년이 지목된다. 그는 국정원과 CIA가 한국으로 빼돌린, 북한 고위 간부의 아들 김광일(이종석)이다. 이른바 국정원이 감시하는 V.I.P.다. 이 기획 귀순을 주도한 국정원 요원 박재혁(장동건)의 입장에선 절대 범인이 돼선 안 되는 자다. 반대편엔 광일을 잡아 ‘큰 건’을 올려야 하는 경찰 채이도(김명민)가 있다. 여기에, 집요하게 광일을 쫓는 북한 요원 리대범(박희순)이 가세한다.

국가 기관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 속에 어쩔 수 없이 휩쓸린 개인들의 피로. 박훈정 감독이 각본·연출한 범죄영화 ‘브이아이피(V.I.P.)’(8월 24일 개봉, 이하 ‘브이아이피’)는 바로 그런 직업적·도덕적 딜레마 사이에서 고뇌하는 남자들의 초췌한 얼굴에서 출발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답게, 드라이하고 차가운 어른들의 영화”라는 게 박 감독의 말. ‘신세계’(2013)의 이정재와 황정민, ‘대호’(2015)의 최민식에 이어, ‘브이아이피’의 얼굴이 된 네 배우가 magazine M을 찾아왔다.

장동건 / 사진=전소윤(STUDIO 706)

장동건 / 사진=전소윤(STUDIO 706)

1992년 데뷔와 함께 청춘스타가 된 장동건(45)은 대중이 부여한 이미지 속에 잠자코 갇혀있지 않았다. ‘브이아이피’는 더 과감해지기로 마음먹은 그가 반드시 잡아야했던 영화다.

 ―‘브이아이피’의 첫 장면은 피곤에 찌든 재혁의 얼굴로 시작된다. 
“재혁은 국정원 현장 요원 출신이다. 힘들게 필드에서 뛰다, 겨우 승진해서 편한 보직에 왔는데, 회사 차원에서 덮어야 할 문제가 생긴다. 여느 영화 속 상투적인 첩보원보다 좀 더 현실적인, 국가기관 공무원 같은 느낌으로 접근했다. 직장 생활을 안 해봐도, 각자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짜증은 다들 있잖나. 궁지에 몰린 재혁의 날 선 감정에 집중했다.”

―처음에 재혁은 다른 등장인물에 비해 ‘동기’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지켜야 할 가족도, 가치도 없어 보인다. 
“영화에서 재혁만 개인사가 없다. 박훈정 감독과 재혁의 가족 설정에 대해 논의한 적 있는데, 영화를 끌고 가는 큰 기둥과 상관없다고 판단해 없애기로 했다. 재혁은 이 영화에서 처음과 끝이 다른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능력도 있고 소속감이 투철하다. 오랜 시간 회사에서 맡은 책임과 의무에 수동적으로 충실하다보니, 조직에서 살아남는 게 제일 중요한 기계적인 인간이 된 것 아닐까. 그러던 그가 광일로 인해 직업인으로서의 자신과 개인의 양심 사이에서 갈등에 빠진다. ‘회사형 인간’이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브이아이피' 스틸컷

'브이아이피' 스틸컷

―예전부터 박훈정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다고. 
“중·고등학교가 남학교여서 남자들끼리 몰려다니며 자랐다. 여전히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대부’(1972,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다. 박훈정 감독이 연출한 ‘신세계’뿐 아니라, 각본을 쓴 ‘악마를 보았다’(2010, 김지운 감독) ‘부당거래’(2010, 류승완 감독) 등 작가로서 그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브이아이피’는 시나리오가 굉장히 ‘쿨’했다. 신파가 없어서 좋았다. 감정 표현이 많지 않은데, 다 전달이 됐다.”

―재혁 역할에 대해 박 감독의 디렉션이라면. 
“배우들이 뭘 준비해갈 때마다 ‘하지 말라’고 하더라. ‘브이아이피’는 스토리가 긴박하게 흘러간다. 배우의 감정이 너무 들어가면 과할 수 있었다. 연기도, 더하기보다 뺄셈이 중요했다.”

―어떤 뺄셈인가. 
“재혁의 인간성이 (직업적인) 사회성을 넘어 일종의 광기처럼 폭발하는 장면도 겉으로는 서늘하게 절제했다. 배우로서 매력적인 작업이었다.”

―평소 신사적인 이미지인데, ‘친구’(2001, 곽경택 감독) 이후 필모그래피는 거의 남성적이고 센 캐릭터로 채워왔다. 정반대 이미지에 대한 호기심이었을까. 
“30대 초중반에는 그런 것도 있었다. 스무 살에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서 청춘 드라마에 주로 출연하다보니, 드라마에서는 할 수 없는 장르나 표현 수위가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에너지 넘칠 때니까, 막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한국에 다양한 장르영화가 부흥하던 시기라, 기존에 주를 이루던 멜로 외에 전쟁·액션·느와르 같은 장르영화 출연 제안이 많기도 했다. 이미지 변신을 위해 ‘친구’ 때는 속눈썹도 잘랐다.”

장동건 / 사진=전소윤(STUDIO 706)

장동건 / 사진=전소윤(STUDIO 706)

―처음 듣는 얘기다. 
“초등학교 때 별명이 ‘아로미’였다. 만화 ‘개구리 왕눈이’(1973, 후지 TV)에 나오는 속눈썹 긴 여자 개구리. 그 별명 참 싫었다(웃음). ‘친구’에서 아무리 깡패 짓을 해도, 얼굴을 클로즈업하면 속눈썹이 기니까, 어딘가 좀 서정적으로 보였다. 결국 속눈썹을 잘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 부분도 있을까. 
“생활 연기의 재미를 알게 된 게 장진 감독의 ‘굿모닝 프레지던트’(2009)부터다. 아기자기한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이 들면서 생기더라. ‘라라랜드’(2016, 데이미언 셔젤 감독)는 엔딩이 참 좋았다. (주연배우) 라이언 고슬링이 직접 연주하는 장면도 멋스럽고. 한국에도 그런 음악영화 하나 있으면 좋겠다.”

―그런 것치곤 차기작이 세다. ‘브이아이피’보다 먼저 촬영을 마친 ‘7년의 밤’(추창민 감독)은 딸을 잃고 복수에 나선 영제 역을 맡았다. 딸을 소유물로 여기는 비뚤어진 아버지다. 조선판 좀비영화 ‘창궐’(김성훈 감독)에선 아예 대놓고 악역이다. 
“그러네…. ‘7년의 밤’은 영화화가 결정되기 전 개인적으로 판권을 알아보러 다닐 만큼 원작 소설을 정말 좋아했다. ‘창궐’은 시나리오가 만화 같은 느낌으로 재밌었다. 2000년대 들어 등장한 스케일 큰 해외 합작 SF·판타지영화 주연을 하면서 혼자 막 사명감을 갖고 치열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늘 잘된 게 아니잖나. 괜히 내가 가진 게 훼손되는 게 아닐까. 모험심이 점점 줄었던 것 같다. 지금은 오히려 그때 더 적극적으로 다작할 걸 후회한다. 요즘은 작품 선택할 때 나를 좀 더 열어놓게 됐다. 약간 걸리는 부분이 있어도, 흥미가 가면 출연한다.”

'브이아이피' 스틸컷

'브이아이피' 스틸컷

―사생활을 드러내는 데도 편안해진 것 같다. 
“아내(배우 고소영)와 나 둘 다 어린 나이에 데뷔했다. 우리가 처음엔 비밀 연애를 했잖나. 그러다 보니 결혼 발표 후에도 사람 많은 데 가는 게 어색했다. 그래서 처음엔 연습도 했다. 일단 둘이 손잡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기도 하고(웃음). 막상 아이가 생기고 카페 같은 데 가보니 별 게 아니더라. 예전에는 신경 쓰였던 것들을 많이 놓게 됐다.”

―배우 인생 25년간, 바뀐 것만큼 지키고 싶은 것이라면. 
“결과가 좋아도 현장 분위기가 안 좋거나, 제작진이 아무리 돈독해도 결과가 나쁠 때가 있다. 하나를 택하라면, 후자다. 어쨌든 영화는 사람끼리 만나서 만드는 거잖나. 현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때도 기본적인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하나의 영화를 만들어간다는 것, 그런 경험이 소중하다.”

(왼쪽부터)장동건, 이종석, 김명민, 박희순 / 사진=전소윤(STUDIO 706)

(왼쪽부터)장동건, 이종석, 김명민, 박희순 / 사진=전소윤(STUDIO 706)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 장소 협찬=콴시(KUAN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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