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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평화를 위한 긴급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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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위기다. 한반도 군사 대결이 폭발 직전의 ‘순간 정점’을 계속 오르내리고 있다. 국정 농단은 촛불시위로 바로잡았으나 안보 현실은 칼끝에 선 ‘위기 악화’와 ‘폭발 미연’의 이중 상황을 지속하고 있다.

선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받아 되치기’ 전법이 될 것 #중국에도 사드 보복 철회 압박

촛불탄핵과 정부 교체 이후에도 계속 자신과 세계를 전쟁 위기로 불안하게 만들다니 세계에 부끄러울 뿐이다. 한국전쟁을 통해 자신들과 세계를 지옥 같은 불구덩이로 몰아넣고도 한민족은 과연 무엇을 배운 것인지, 또 한 번의 전쟁 폭발 위기에 참담·송연할 뿐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자기 참상과 세계 참화에 대한 절대반성 없이는 한국인들은 평화의 선구는커녕 21세기 세계 죄인이 될지도 모른다.

구조적으로 말하면 스탈린(소련)+마오쩌둥(毛澤東·중국)+김일성(북한)의 3자 연대로 인해 가능했던 1950년의 전쟁은, 현재의 시진핑(習近平)과 푸틴이 당시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역할을 할 리가/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다. 남한의 국력 역시 정말로 커졌다. 그러나 현재는 ①김정은+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3요소가 단 한 명에게 집중되고 ②중국과 러시아가 직접 통제할 수 없으며 ③북한과 미국의 우발적 충돌상황을 통해 즉각 세계 최첨단 전쟁으로 상승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한다. 위기 해결의 첫 입구를 고민하자. 그것은 굳건한 한·미 동맹에 기초한 한·미 연합훈련의 중단이다. 전자가 확고한데 후자를 잠시 중단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이제 중국과 북한의 작은 요구를 받아들여 우리와 세계의 더 큰 가치를 실현하자. 빌리 브란트 선례를 보자.

“평화가 모든 것은 아니지만, 평화가 없다면 모든 것은 무(無)가 된다.” 즉 “평화가 모든 것은 아니지만, 평화 없이는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다”는 신념을 고수하며 유럽 평화와 유럽 통합의 초석을 놓은 그는 한국전쟁의 ‘북침 날조’ 이후 그때까지 세계 사회주의 진영의 선전 공세에 지나지 않았던 ‘평화담론’ ‘평화 공존정책’을, 미국과의 신뢰에 바탕을 둔 서독·서구·서방 세계의 것으로 바꿔 버려 독일 문제와 유럽 평화구도를 결정적으로 전변시켰다. 그는 동독과 사회주의 진영의 주장과 제안은 모두 ‘아니요’라고 대응해 온 당시까지 유럽의 외교 금기를 깨뜨렸다. 평화 공존, 그것은 소름 끼칠 역(逆)평화 공세였다.

한·미 연합훈련의 중단은 상대 요구를 수용해 상대의 역할과 책임을 높이는 ‘받아 되치기’ 전법이 될 것이다. 한·미의 선(先)훈련 중단으로 인해 중국은 쌍중단이 아닌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요구하는 일방 압박 국면이 될 것이다. 중국역할론·중국책임론을 말해 온 미국으로서도 중국의 더 큰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게 된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로 인해 소원해진 한·중 관계의 회복, 즉 경제·문화·인적 교류, 관광 부문의 보복에 대해 철회를 요구할 수도 있다. 북한은 당연히 핵과 미사일 활동 중단을 가장 강도 높게 요구받게 될 것이다. 북한이 끝내 거부한다면, 중국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비핵평화를 향한 대북 최대 압박에 동참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는 과거에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북한의 집요한 ‘3대 선결요건’(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국가정보원 철폐) 주장, ‘서울 불바다’ 발언, 북핵 ‘다자(6자) 회담 거부’라는 요지부동의 노선을, 모두 우리 측 주장대로 ‘관철’ ‘사과’ ‘수용’시킨 빛나는 물밑 노력과 성공사례들을 갖고 있다. 당시에 “북한이 응할 리가 없다”며 비관적일 때 깊은 지혜와 고도의 전략과 끈질긴 노력으로 끝내 돌파해 냈다.

한·미 연합훈련의 선제적 중단은 북한·미국·중국과 세계에 북핵 해결 및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국의 ‘운전자’ 역할을 제대로 회복하고 보여 주는 첫 계기가 될 것이다. 나아가 한·미 동맹과 신뢰와 협력의 철통 같은 연대를 북한과 중국과 세계와 우리 자신에게 과시함은 물론 운전자의 자주적 능숙함을 통해 조수와 승객과 관객 모두에게 깊은 안정감을 심어 줄 것이다.

극적 돌파를 통한 명민한 안보외교는 제국들 사이에서 중견 공화국들과 소국들이 장기 생존했던 인류 최고의 비법이었다. 중견지로·중용지도(modo mezzano)의 국가 전략이다. 북한마저 중견국가 이상으로-적어도 군사력 면에서는- 변전된 현금 상황에서, 민주주의·경제·기술·국력을 필두로 중견국가 이상으로 도약하려는 지금이야말로 미국과 중국과 북한을 단번에 안아 넘는 대한민국의 총체적 외교 역량과 평화 전략이 절실하다. 안보 불안이 국가와 국민 삶격의 발목을 잡는 만성질병만은 반드시 넘어서자. 위기의 정점에서 영구 안전과 영구 평화의 극적 돌파를 이뤄 보자. 절실하게, 더욱 절실하게.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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