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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25주년]1992년생 한·중 수교둥이들, “사드 갈등? 우린 대화로 풀리던데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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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에 봉숭아물 들였구나. 그거 중국에서도 어린 아이들이 주로 하는건데”
“‘응답하라 1988(한국 드라마)’ 배우끼리 열애 중이라고? 놀라운데”
 16일 오후 제주 신라호텔 6층 연회장. 스물 다섯 살 동갑내기 네 명이 만나 반가운 듯 손을 맞잡았다. 한국어와 중국어에, 손짓을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는 이들은 한·중 수교가 이뤄진 1992년에 태어난 양국의 ‘수교둥이’들. 강애리(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석사과정)·류현석(동아대 중국학)·장난(张楠·베이징대 한국어학과 석사과정)·위지엔바오(于建宝·퉁지대 정치와국제관계학원 석사과정)씨였다. 한·중 외교부가 공동주최하는 공공외교포럼(17일)에 참석하기 위해 각기 서울·부산·베이징·상하이에서 제주까지 날아왔다. 강애리씨 손톱에 빨갛게 자리잡은 봉숭아물과 위지엔바오씨가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배우들의 열애 스캔들까지 화제에 올랐다. 사용하는 언어만 빼고 보면 모습도 같고, 대화도 잘 통해 국적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어려웠다.

16일 한중공공외교포럼을 하루 앞두고 행사장인 제주신라호텔 연회장에 모인 1992년생 한중 수교둥이들. 왼쪽부터 류현석(한국), 강애리(한국), 장난(중국), 위지엔바오(중국)씨. 박유미 기자

16일 한중공공외교포럼을 하루 앞두고 행사장인 제주신라호텔 연회장에 모인 1992년생 한중 수교둥이들. 왼쪽부터 류현석(한국), 강애리(한국), 장난(중국), 위지엔바오(중국)씨. 박유미 기자

 이들은 지난달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와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공동 주관한 행사에 참여, 서울과 베이징에서 8박9일 동안 함께 지내며 이미 친구가 됐다. 행사에는 양국에서 각기 7명씩 총 14명이 참여했고, 이 중 4명이 다시 모였다. 양국 정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갈등으로 인해 수교 기념일인 8월24일 축하 행사도 따로 열게 된 최악의 상황이지만, 수교둥이들은 수교 25주년을 함께 축하하고 더 깊은 우정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제주에서 의기투합한 것이다. 이날은 다음날 발표할 내용을 점검하고, 리허설을 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달 말부터 웨이싱(위챗, 중국판 카카오톡)을 통해서 사흘에 한 번씩 대화를 나눴다. 위지엔바오씨는 “중국어·한국어·영어를 섞어 대화를 나눴다”며 “거리감을 거의 느낄 수 없었고, 매 대화 때마다 소결을 맺으면서 발표 준비도 빨리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름인 지엔바오(建宝)는 공교롭게도 수교둥이(建交宝宝)의 약자다. 생일도 한·중 수교 한 달 전인 7월생, 친구들끼린 “태생적인 수교둥이”이라며 행사기간 중에 생일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이들 4명에게 사드로 인한 양국 갈등이 서로 친해지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하나같이 “전혀 아니다”고 말했다. 물론 상대국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장난씨는 “한국어만 6년을 공부했고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도 지내 한국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박근혜 정부가 중국의 입장을 무시하고 사드 배치를 결정했을 때는 한국이 한없이 먼 나라라고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과 한국은 그동안 관계가 이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는데 이 문제는 중국의 안보 문제와 직결되는데도 한국 정부가 중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아 서운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 수교둥이는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몰아친 중국의 보복 조치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류현석씨는 “중국이 내세우는 선린우호 정책과 다르게 국제사회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중국은 경제적 힘을 통한 압박으로 해결하려 한다. 대국의 면모에 어울리게 대화와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친구 모두 서로 대화를 한 뒤에는 이해가 가는 부분이 많아졌다고 했다. 장난씨는 “사드 갈등 이후에 한국 언론이 중국을 나쁘게 다루는 경우가 많아서 한국 친구들이 한국의 입장만 주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한국 친구들이 중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이야기를 나눈 뒤에는 각기 상대국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가족같은 느낌도 들었다”고 말했다. 류현석씨는 “중국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사드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서로 ‘너희 나라의 이익이 달린 문제’라고 이해를 했다. ‘한국 안보가 걸려 있는 문제라는 부분은 다 이해를 한다’고 이야기한 중국 친구도 있었다”고 말했다.

16일 한중공공외교포럼을 하루 앞두고 행사장인 제주신라호텔에 모인 1992년생 한중 수교둥이들. 박유미 기자

16일 한중공공외교포럼을 하루 앞두고 행사장인 제주신라호텔에 모인 1992년생 한중 수교둥이들. 박유미 기자

 강애리씨는 “사드 갈등이 오히려 좋은 화제거리였다. 한국 친구들도 갑작스런 배치 과정에 대한 의구심을 중국 친구들과 공유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주제로 논문을 쓰려던 중국 친구들이 ‘국면이 너무 계속 바뀌니 가설을 다시 세워야 할 상황’이라며 짜증을 냈는데, 사드 갈등도 문제지만 우리 모두 논문 쓰는 어려움을 잘 아는 처지라 ‘그게 더 문제’라며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며 웃었다.
 솔직한 대화와 나와는 다른 입장에 대한 존중, 이를 토대로 한 이해와 공통점 찾기. 양국 정부도 못하는 일들을 수교둥이들은 이처럼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었다.
 이런 이해와 존중이 가능했던 것은 함께 생활하며 두 나라 젊은이들의 생각과 삶이 생각보다 닮아 있다는 점을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지엔바오씨는 한옥 마루에서 함께 모여 이산가족 이야기를 나눴을 때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한국 친구들이 ‘우리 아빠의 동생은 아직도 북한에 있고 우린 그들을 매우 걱정해’라고 말했을 때 중국 친구들은 ‘대만 사람들도 우리 가족이야’라고 했다. 정치적 이유 때문에 38선 이남과 이북에 있는 형제와 부부들이 서로 그리워할 뿐,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못하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중국도 비슷한 역사가 있어서 한국인들의 고통을 십분 이해했다.”
 그는 “우리의 대화 주제는 역사, 최신 유행, 북핵문제, 동북아 정세 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고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하며 상대의 생각을 점점 더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카오야(烤鸭·베이징의 대표 음식인 오리 구이)와 김치 중 뭐가 더 맛있는가에 대한 논쟁에서만은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아 결국 무승부였다”며 웃었다.
 류현석씨는 “중국에는 취업 걱정이 없는 줄 알았는데 중국 청년들 역시 취업과 진로, 결혼 등 한국 청년들과 똑같은 고민을 하더라. 룸메이트였던 중국 친구가 잠들기 전 말을 걸어서 한류 이야기를 하려는 줄 알았는데 우리의 촛불혁명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 체제를 궁금해해서 놀라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강애리씨도 “중국의 언론 통제, 한국의 탄핵부터 북한이 없으면 미군이 한국에 없어도 되는가 하는 예민한 주제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국적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이를 통해 서로 몰랐던 부분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16일 한중공공외교포럼을 하루 앞두고 행사장인 제주신라호텔에 모인 1992년생 한중 수교둥이들. 한중관계도 이들처럼 비상(飛上)하길 기원하며 폴짝 뛰어올랐다. 박유미 기자

16일 한중공공외교포럼을 하루 앞두고 행사장인 제주신라호텔에 모인 1992년생 한중 수교둥이들. 한중관계도 이들처럼 비상(飛上)하길 기원하며 폴짝 뛰어올랐다. 박유미 기자

태어날 순간부터 한·중관계의 발전과 삶을 함께 했고, 앞으로 양국관계의 미래 25년을 짊어질 수교둥이들이 인터뷰 중 반복적으로 언급한 한·중의 격언이 있었다. ‘국지교재우민상친(国之交在于民相亲·국가 간의 사귐은 국민 간의 가까움에 달려 있다)’는 중국 표현과 ‘세 닢 주고 집을 사고 천 냥 주고 이웃을 산다’는 한국 속담이었다.

강애리씨는 “외교도 결국 사람 간의 일이고, 어느 나라의 고위 지도자도 절대 그 국민을 무시할 수 없다”며 “한·중 수교둥이들이 만난 것이 밖에 보기에는 한 번 만나 노는 것에 불과할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한·중관계의 알맹이를 채워나갈 수 있다. 우리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 한·중관계도 낙관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지엔바오씨도 “이웃 간에는 항상 소소한 마찰이 있고, 국자와 사발은 부딪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황해는 중국의 카오야도, 한국의 김치도 모두 담아낼 수 있을 정도로 넓다”고 말했다.

서울=유지혜 기자, 제주=박유미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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