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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양비론 "왜 극우파만 탓하냐…좌파도 폭력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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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유혈사태를 촉발한 극우 시위대를 다시 옹호하고 나섰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사건 발생 첫날 ‘여러 편(many sides)’이라는 표현으로 거센 역풍을 맞은 뒤 14일 “인종주의는 악”이라며 입장을 선회했던 그가 또다시 번복한 것이다.

15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뉴욕 트럼프 타워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샬러츠빌 시위대의) 모든 사람이 신(新)나치주의자가 아니고, 백인우월주의자도 아니다”라며 “(극우 시위대에 대항해 시위한) 대안 좌파(alt-left)들도 매우 매우 폭력적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들이 ‘여러 편(many sides)’이라는 표현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자,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그는 “의견을 말하기 전에 사실을 알고 싶다”며 부적절한 발언을 이어갔다.

샬러츠빌 폭력사태 입장 번복 … 양비론으로 논란 #"양쪽 서로 달려들어… 좌파는 매우 매우 폭력적" #중립인 척 하는 태도로 극우파에 힘 실어준 셈 #"이번주엔 로버트 리, 다음주는 조지 워싱턴이냐" # 동상 철거 반대한 극우 시위대에 정당성도 부여 #"토할 것 같다" "대통령이 아니다" 거센 비난 폭주 #극우인사는 "용기 있게 진실 말한 트럼프에 감사" #

트럼프 대통령은 먼저 샬러츠빌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시위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많은 사람은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철거를 막기 위해 시위했다. 이번 주는 로버트 리, 또 다른 주는 스톤월 잭슨, 그럼 다음은 조지 워싱턴, 또 다음은 토머스 제퍼슨인가. 대체 언제 그만둘 건지 자신에게 되물어 봐라”
동상 철거라는 원인을 제공한 측이 문제이며, 극우 시위대가 시위를 벌일만했다는 주장이다.

12일 유혈사태는 샬러츠빌의 민주당 시의회가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려 하자, 극우파들이 반발 시위를 벌이면서 시작됐다. 노예해방에 반대했던 로버트 리는 전쟁에서 패배했지만, 백인우월주의자들에 의해 극우파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스톤월 잭슨도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장군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를 옹호하기 위해 이들을 미국의 국부(國父)인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과 같은 반열에 둔 것이다. NYT는 “조지 워싱턴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11일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횃불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는 백인우월주의자들.[AP=연합뉴스]

11일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횃불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는 백인우월주의자들.[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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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또 “집단엔 매우 나쁜 사람이 있고 좋은 사람도 있다”며 “(샬러츠빌 시위대) 모두가 신나치주의자는 아니다. 나를 믿어라. 아무리 생각해도 모두가 백인우월주의자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편과 저 편에 집단이 있다. 이들이 서로 달려들었고, 포악하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또 “좌파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이 다른 편을 공격했다”며 “우파를 향해 돌격한 좌파엔 아무 죄가 없나. 그들은 곤봉을 들고 달려들었다”고 주장했다. 극우 시위대뿐 아니라 이에 맞선 차별반대자의 시위도 문제였다는 얘기다.
그는 “양 쪽의 이야기가 있다. (샬러츠빌에서) 벌어진 일은 국가적으로 끔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나라엔 양면이 있다”고도 했다. “대안 좌파를 신나치주의자와 같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나는 신나치주의자들을 비난했고, 여러 다른 그룹들도 비난했다”고 답했다.

언론을 탓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여려 편’을 언급한 자신의 기존 입장에 대해 “바로잡을 일은 없다”며 “나는 많은 기자들과 달리 사실만 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15일 미국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기자회견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15일 미국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기자회견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미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 그가 중립적인 척 하면서 사실상 극우에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속출했다.
윌 허드 공화당 하원의원(텍사스)은“사과한다. 인종주의·편견·반유대주의는 어떤 식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다. 자유 세계의 국가는 이에 대해 분명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폴 라이언 공화당 하원의장도 “분명히 해야한다”며 “백인우월주의는 역겹고, 편견은 이 나라를 대표하는 모든 것과 반대된다. 도덕적 모호성은 안된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워렌 민주당 상원의원(메사추세츠)은 “미국의 대통령이 신나치주의를 옹호하고, 인종차별을 비난하는 이들을 탓했다. 토할 것 같다”고 트윗글을 남겼다. 브라이언 샤츠 민주당 상원의원(하와이)은 “유대인·미국인·인간으로써 나의 역겨움과 실망을 표현할 말이 없다. 그는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반면 극우단체인 큐 클럭스 클랜(KKK)을 이끌었던 데이비드 듀크는 “트럼프 대통령이 솔직하고 용기있게 샬러츠빌에 대해 진실을 얘기하고, 좌파 테러리스트를 비판한 데 감사한다”고 트위터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기자회견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나치 깃발을 흔들며 행진한 이들에게 공감하고 있다”며 “그가 대안우파의 편에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전했다. 온라인매체 복스(Vox)도 “트럼프 대통령이 샬러츠빌 사태에 대한 자신의 진짜 생각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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