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 여름, 로카르노에 가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스위스의 다른 지역을 여행하다가 티치노(Ticino)주로 건너가면 영 딴 나라에 온 기분이 든다. 야자수 늘어선 호숫가, 따가운 햇볕, 알록달록 색채 짙은 가옥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지중해 어디쯤 같다. 사람도 그렇다. 인삿말이 ‘구텐탁(독일어 인사)’에서 ‘차오(이탈리아어 인사)’로 바뀌어서만은 아니다. 독일어를 쓰는 타 지역 스위스 사람들보다 이탈리아어를 쓰는 티치노 사람들은 느슨하고 밝아 보인다. 티치노에서도 특히 마조레(Maggiore) 호숫가에 있는 매력적인 도시 로카르노(Locarno)를 타박타박 걸으며 느낀 바다.

로카르노 대광장. 매해 8월 로카르노 영화제가 열리는 주무대다. 바로 이 자리에 세계에서 가장 큰 스크린(800㎡)이 펼쳐진다.

로카르노 대광장. 매해 8월 로카르노 영화제가 열리는 주무대다. 바로 이 자리에 세계에서 가장 큰 스크린(800㎡)이 펼쳐진다.

뙤약볕 강렬했던 2017년 6월 중순 로카르노 영화제의 주무대인 대광장에 있는 식당 ‘핏제리아 델안젤로’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전빵과 샐러드, 피자 한 판 그리고 에스프레소 한 잔까지. 영락없는 이탈리아식 풀코스였다. 식사 후 가이드 마리나와 함께 도보여행에 나섰다. 마리나가 가장 먼저 소개한 건 로카르노시청이었다. 시를 상징하는 깃발이 걸린 걸 빼고는 옆 건물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서울의 웬만한 주민센터보다 작은 데다 1층엔 식당이 영업 중이었다. 그런데 앙증맞은 시청 하나만으로 이 도시가 왠지 정겹게 느껴졌다. 참고로 로카르노 인구는 1만5000명. 서울의 웬만한 동보다 적다.

가장 오른쪽에 보이는 하얀색 건물이 로카르노 시청. 1층엔 레스토랑이 있다.

가장 오른쪽에 보이는 하얀색 건물이 로카르노 시청. 1층엔 레스토랑이 있다.

관련기사

시청 옆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는 골목에는 부티크 상점과 카페가 많았다. 마당 있는 집에는 어김없이 야자수 한두 그루와 꽃잎 틔운 목련이 있었다. 동백나무도 더러 보였다. 마리나는 “스위스의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나무 대부분이 19세기 중반부터 수입된 것”이라며 “로카르노를 포함한 티치노주는 지중해성 기후여서 아열대 식물이 잘 자란다”고 설명했다. 야자수는 중국과 중동, 목련은 미국 플로리다, 동백은 일본에서 주로 수입했단다.

아기자기한 상점과 카페가 많은 로카르노 뒷골목.

아기자기한 상점과 카페가 많은 로카르노 뒷골목.

대광장 남서쪽에는 뷔스콘테오(Visconteo) 성이 있었다. 13세기 처음으로 축조된 뒤 수많은 전쟁을 거치며 파괴와 복원을 거친 성이다. 현재는 생태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최근에 흥미로운 학설이 제기됐다. 한 이탈리아 역사학자가 15세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이 성의 재설계에 참여했다고 주장한 것. 실제로 15~16세기 이탈리아 북부에서 활동하던 다 빈치의 노트에서 뷔스콘테오의 밑그림이 발견됐다 한다. 그렇다고 큰 기대를 걸진 마시길. 지금은 원래 성의 5분의 1밖에 남아 있지 않으니. 진짜 화려한 중세 성을 보고 싶다면 로카르노에서 기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벨린초나로 가는 게 낫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 3개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뷔스콘테오 성. 원형의 5분의 1만이 남아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벨린초나성.
벨린초나성 한편에는 포도밭이 있다.

로카르노는 가톨릭 신자들에겐 성지순례코스로 인기다. 로카르노 바로 옆 마을 오르셀리나(Orselina)에 있는 성당 마돈나 델 사소(Madonna del sasso) 때문이다. 1480년 8월, 프란치스코 수사 바톨로메오 디베리아가 성모 마리아를 알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신앙이 없는 사람도 이 성당에서 종교적 감동에 버금가는 체험을 한다. 전망이 워낙 빼어나서다. 성당이 해발 540m 벼랑에 세워져 있는데 겹겹 산에 둘러싸인 마조레 호수가 지중해처럼 눈부시다.

마돈나 델 사소 성당과 마조레 호수.

마돈나 델 사소 성당과 마조레 호수.

1480년 한 수사가 성모 마리아를 알현했다는 마돈나 델 사소 성당.

1480년 한 수사가 성모 마리아를 알현했다는 마돈나 델 사소 성당.

스위스 태생의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카르다다 케이블카.

스위스 태생의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카르다다 케이블카.

성당 바로 위쪽엔 카르다다(1330m)산으로 가는 케이블카 탑승장이 있다. 스위스의 여느 산처럼 여름엔 하이킹, 겨울엔 스키를 즐기는 곳인데 이곳 케이블카는 조금 특별하다. 티치노 태생의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케이블카와 탑승장을 디자인했다. 깜짝 놀랄 만한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기구에 스토리를 입힌 아이디어는 놀라웠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가벼운 산책을 즐겼다. 여느 스위스 산처럼 가장 목 좋은 곳엔 레스토랑이 있었다. 바깥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산 중턱에 구름이 깔려 호수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마저도 낭만적이었다. 구름 위에 둥둥 떠서 밥을 먹는 기분이었다. 비록 융프라우(4158m)나 몽블랑(4810m)에 비하면 아기같은 산이었지만.

케이블카 타고 오른 카르다다산에서 내려다보이는 호수 전망도 근사하다.

케이블카 타고 오른 카르다다산에서 내려다보이는 호수 전망도 근사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마돈나 델 사소를 거쳐 다시 광장 쪽으로 내려왔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졌는데 형형색색 수국이 만개해 있었다.  마리나가 “중세에는 이 계단을 매일 무릎으로 다니며 수행한 수사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수백년 전 수사들의 피땀 어린 길이어서였을까. 걸음걸음이 조심스러웠다.

수국 만개한 마돈나 델 사소 성당 뒷길.

수국 만개한 마돈나 델 사소 성당 뒷길.

로카르노 광장에 도착하니 뙤약볕이 내리쬐었다.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위. 마침 젤라또를 파는 남자가 보였다. 포마드 기름이라도 발랐는지 ‘올백 머리’가 유난히 반짝이던 남자는 전형적인 이탈리아인처럼 능글능글한 웃음으로 젤라토를 떠줬다. “그라치에(이탈리아어로 ‘감사합니다’)!”를 주고 받은 뒤 호수 쪽으로 갔다. 지중해가 아닌 호숫가에서 지중해성 기후를 만끽하며 먹는 젤라또는 유난히 달고 맛있었다.

분위기가 지중해 못지않은 마조레 호수.

분위기가 지중해 못지않은 마조레 호수.
젤라토 파는 남자.

◇여행정보=로카르노를 찾아가려면 기차를 타는 게 일반적이다. 스위스 최대도시 취리히에서 기차로 약 2시간30분 걸린다. 대한항공이 인천~취리히 노선을 주 3회 운항한다. 다른 유럽도시를 경유하는 항공편을 이용하면 보다 저렴하다. 이탈리아 밀라노가 더 가깝기도 하다. 기차로 약 2시간 거리다. 카르다다 케이블카는 왕복 28스위스프랑(약 3만3000원). 기차 이용권인 스위스패스 소지자는 반값 할인. 자세한 여행정보는 스위스관광청 홈페이지(myswitzerland.com) 참조.

유럽 소도시 여행⑤로카르노 #이탈리아어 쓰는 스위스 속 이탈리아 #다 빈치 흔적 남아있는 성 #15세기 성모 마리아 알현한 성당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케이블카까지

관련기사

로카르노(스위스)=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