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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감사장도 못받았소" 유병언 최초 신고하고도 보상금 한푼 못받은 80세 농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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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보상금은커녕 (경찰의)감사장 한 장도 못 받았았소. 그라믄 인자 누가 시신을 발견했을 때 경찰에 신고하겄소.”

보상금 소송 패소 이후 중앙일보 기자와 만난 첫 제보자 #80세 농민 박씨 "앞으로 누가 시신 발견하면 신고하겠나" #경찰이 수사한다면서 쑥대밭 만들고, 전기도 끌어써 #3년 전 시신 발견 이후 악몽 등 정신적 고통 시달려

세월호 사건 당시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의 시신을 발견하고도 신고보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한 박모(80)씨는 14일 오후 중앙일보 기자와 만나 목소리를 높였다. 전남 순천시 서면에서 농사를 짓는 박씨는 이날도 밭일을 하고 있었다. 약 3년 전인 2014년 6월 12일 오전 9시 유씨의 시신을 발견한 바로 그 장소에서다.

약 3년 전 유병언의 시신을 발견하고도 신고보상금을 한푼도 못 받은 전남 순천시 서면 주민 박모씨가 14일 오후 자신의 밭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약 3년 전 유병언의 시신을 발견하고도 신고보상금을 한푼도 못 받은 전남 순천시 서면 주민 박모씨가 14일 오후 자신의 밭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수박 심어놓은 게 잘 자라고 있는지 보려고 아침에 밭에 나왔는데 주변 매실 밭에 심하게 부패한 시신 한 구가 있는거여. 놀라서 밭에서 내려와 근처 삼거리 슈퍼마켓으로 달려가 얼른 신고했제.” 박씨는 당시 상황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박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부패가 심해 백골화가 진행 중인 시신을 수습한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 및 감정을 의뢰했다. 시신은 7월 22일 유씨로 확인됐다. 세월호 사고(4월 16일) 이후 유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지만, 유씨의 소재 파악에 어려움을 겪던 검찰과 경찰은 역대 최대 액수의 신고보상금 5억원을 내건 상태였다.

2014년 당시 유병언 수배 전단. [연합뉴스]

2014년 당시 유병언 수배 전단. [연합뉴스]

그러나 경찰은 박씨에게 신고보상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박씨가 시신의 신원을 모른 채 ‘유씨’가 아닌 ‘신원을 알 수 없는 변사체’를 신고했을 뿐이라는 판단에서다. 박씨는 이런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국가를 상대로 1억100만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지만 법원도 같은 취지의 판단을 했다.

유병언 전 청해진해운 및 세모그룹 회장의 생전 모습. [중앙포토]

유병언 전 청해진해운 및 세모그룹 회장의 생전 모습. [중앙포토]

박씨는 경찰도, 법원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유병언이 잡는다고 전국의 경찰이 동원됐는디 결과적으로 내가 신고해서 수색이 마무리된거 아니요. 만약 내가 시신을 발견 못했다면 수색에 몇 달, 몇 년이 더 걸릴지 누가 알겄소"라며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당씨 유씨의 시신이 발견된 박씨 소유의 매실밭과 주변 고추밭·수박밭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경찰이 현장을 통제한다며 대거 몰려와 수십명의 인원을 배치하고 유류품을 수거하려고 밭에 들어와 헤집어놓으면서다. 경찰은 농사를 망친 데 대해서만 보상했다. 실비로 약 1300만원이다.

세월호 침몰 현장. [중앙포토]

세월호 침몰 현장. [중앙포토]

당시 경찰은 박씨에게 신고보상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해 논란이 되자 감사장이라도 수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마저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박씨는 "감사장을 준다길래 그렇다면 (한 단계 높은) 표창장이라도 달라고 했더니 결국 감사장도 안주더라.서운한 마음에 ‘귀찮고 복잡한 일만 생기는데 신고 안할걸 그랬다’고 하자 ‘어르신, 그럼 징역간다’는 말이 돌아왔다"고 했다.

약 3년 전 유병언의 시신을 발견하고도 신고보상금을 한푼도 못 받은 전남 순천시 서면 주민 박모씨가 14일 오후 자신의 밭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약 3년 전 유병언의 시신을 발견하고도 신고보상금을 한푼도 못 받은 전남 순천시 서면 주민 박모씨가 14일 오후 자신의 밭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박씨는 변사체를 발견한 이후 한동안 악몽 등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현재도 당시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 재판 결과에 불복해 항소하는 방안을 아들과 논의 중이다.

박씨는 "유병언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을 주고도 밥 한끼 얻어먹지 않았다. 내 신고로 아끼게 된 국고 중 일부라도 줘야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냐"며 다시 밭일을 시작했다.

순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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