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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취향]건축가가 말하는 여행 즐기는 법, "좋은 장소 찾았다면 그곳을 즐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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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여행이라고 하면, 우리는 모름지기 멋들어진 카메라를 들고 세계 곳곳의 유명 건축물을 둘러 볼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멋있고 유명한 건축물보다는 그 건축물을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 주변의 쓰레기통과 맨홀 뚜껑, 또 화장실은 어떻게 생겼는지에 더 관심을 가지는 건축가가 있다. 서울과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 안지용(44) 매니페스토 디자인랩 대표 얘기다.

안 대표의 여행 스타일은 그가 지금까지 해온 일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미국건축가협회상을 두 차례나 수상했고 2015·2016년엔 한국건축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건축가 100인'으로 선정될만큼 촉망 받는 건축가이지만 그의 활동 영역은 건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상에 없던 자전거 보관시설(바이크 행어)을 디자인하고, 일본 장인과 함께 나무 수저를 만드는가 하면, 버려질 위기의 폐 가죽을 가지고 업사이클링 가방을 만들어 낸다. 이 제품들로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꼽히는 레드 닷 어워드, IDEA, IF를 모두 석권했다. 건축가라기보다 사람이 사용하는 모든 공간과 물건에 관심을 가지는 '디자이너'에 가깝다.
사람이 사용하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그의 여행법 또한 여느 사람들과 다르다. 유명한 문화재나 건축물을 보고 소문난 맛집을 가기보다 그 도시의 ‘문화’를 보는 여행을 즐긴다. 한 해에 떠나는 해외 여행만 4~6번. 올해만해도 이미 중국 상해·청두, 영국 런던,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국내 여행은 두 달에 한번 꼴로 떠난다. 거의 모든 여행에는 8살 딸 세연양 과 함께 한다. 아이와 함께 하는 문화를 즐기는 여행, 과연 어떻게 하는 걸까.

문화를 즐기는 여행자…건축가 안지용 매니페스토 대표 #초등생 딸과 버스 타고 훌쩍 떠나는 역사·건축 찾아가기 #버스 타고 가다 좋은 곳 발견하면 그곳서 마음껏 시간 보내 #세계 곳곳의 공원에서 뛰어 노는 게 여행의 절반

여행 어떻게 가나.

일단 일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해외나 국내 출장을 갈 일이 많다. 굳이 따로 여행 계획을 잡지 않더라도 이 기회를 노려 일이 끝난 후 2~3일 정도를 붙여 반드시 여행을 하고 온다. 일이 끝나는 시기에 맞춰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따로 낸다.

여행을 하는 이유는.

‘영감’을 얻기 위해서다. 혼자보다는 딸 또는 팀원들과 함께 가는데, 어떤 형태로 가더라도 결국 일상 생활에서의 뻔한 시선을 바꿔 새로운 문화와 장소를 경험하는 것 하나하나가 신선한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 준다.

지난 7월 갔던 영국 런던 여행에서 아침에 일어나 딸과 함께 호텔 앞 하이드 파크를 걷다가 공원과 멀지 않은 과학박물관에 들렀다.

지난 7월 갔던 영국 런던 여행에서 아침에 일어나 딸과 함께 호텔 앞 하이드 파크를 걷다가 공원과 멀지 않은 과학박물관에 들렀다.

모든 여행에서 영감을 얻게 되는 건 아닐텐데.

미리 준비를 하고 간다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코타키나발루(말레이시아)에 간다고 하면 그저 휴양을 하러 떠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나와 딸 아이가 거기서 어떤 영감을 받을지를 가기 전에 고민하고 그에 대한 공부와 준비를 하고 간다. 대자연을 느끼고 오기로 마음 먹었다면 서울에서는 볼 수 없던 식물이나 새, 동물 등을 공부하고 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무 생각 없이 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영감과 추억을 얻어오게 된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한마디로 ‘카르페디엠’이다(※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 여행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즐거움도 크다고 하지만 사실 그 자체가 은근히 스트레스를 준다. 비교적 별 생각 없이 가서 그 순간을 즐긴다. 그래서 오히려 여행에서의 즐겁고 경이로운 순간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여행지 선정은 어떻게 하나.

사실 지금까지 내가 직접 여행지를 선정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 출장지이거나 딸 아이가 ‘어디 가고 싶다’고 하면 그때부터 내 역할이 시작된다. 가장 먼저 그 곳에서 역사적으로 재미있는 일은 뭐가 있는지 역사책을 뒤진다. 그 다음엔 아무래도 건축가이다 보니 건축적으로 볼 게 있나, 이 환경에서 사람들은 왜 이런 건축물이 필요했을까를 공부한다.

여행 계획은 어떻게 짜나.

여행의 주제를 정하고 현장에서 그날 그날이 상황에 맞춰 코스를 짠다. 그렇다고 대강, 슬슬 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열심히 찾는다. 단, 하루에 할 일 혹은 볼 거리 하나만 정한다. 그것에서부터 뭘 할 수 있을지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케줄이 진행된다.

"곳곳의 공원에서 뛰어 노는 게 여행 중 절반입니다." 영국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우연히 엘리자베스 여왕의 출근 장면을 목격하고 뛰어가는 딸 세연이의 모습. 새들과 노는 게 더 즐거워 보였다.

"곳곳의 공원에서 뛰어 노는 게 여행 중 절반입니다." 영국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우연히 엘리자베스 여왕의 출근 장면을 목격하고 뛰어가는 딸 세연이의 모습. 새들과 노는 게 더 즐거워 보였다.

낯선 곳에서 불안하지 않나.  

요즘은 워낙 휴대폰의 IT 환경이 좋아 조금만 공들여 찾으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 주로 구글맵을 잘 쓴다. 올해 아이와 런던의 재래시장 ‘버로우 마켓’에 갔을 때도 시장을 죽 둘러본 후에 버스를 타고 가장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마을로 이동했다. 우연히 찾아낸 곳이었는데 애플사의 사옥이 있는 곳으로 맨체스터 구단이 그곳에 주거지역을 짓고 있더라. 모르고 갔는데 축구구단이 주거시설을 짓는다는 게 재미있었다. 딸 세연이도 런던의 2층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 동안 마치 관광버스를 타는 것처럼 풍경을 보며 좋아했다. 함께 간판을 읽고 구글을 찾아보고 하는 게 마치 게임 같기도 해서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자녀와 즐겁게 여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가지 원칙이 있는데, 한 장소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내가 마음에 드는 곳에 가서 충분히 여유 있게 시간을 즐겨야 그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아이의 피로도도 적어진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가다 좋은 곳을 발견하면 그곳에서 마음껏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보니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곳곳의 공원에서 뛰어 노는 게 여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때가 많다.

타워 오브 런던을 따라 한참을 걷고 난 후 타워 브릿지 건너편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그때 딸 아이가 펜으로 슥슥 그린 '타워 브릿지' 스케치. 꽤 잘 그렸다. 날 닮은 게 분명하다.

타워 오브 런던을 따라 한참을 걷고 난 후 타워 브릿지 건너편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그때 딸 아이가 펜으로 슥슥 그린 '타워 브릿지' 스케치. 꽤 잘 그렸다. 날 닮은 게 분명하다.

여행에서 주로 사용하는 교통수단은 무엇인지.

가능하면 버스, 기차, 비행기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다. 간혹 여유로운 해변 도시에 가면 차를 빌리기도 하지만 직접 운전하는 스트레스가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최근 다녀온 여행지는.

지난 7월 영국 런던에 다녀왔다. 출장 갈 일이 있어 갔다가 일이 끝난 후 며칠을 휴가 내 아이와 함께 지냈다. 버려진 공장이나 오래된 다리 밑의 공간을 잘 살려 시장, 미술관, 사무실, 주거지로 재생하는 현장들을 온몸으로 느꼈다. 국내 여행으로는 올 4월에 군산에 다녀왔다. 주말 아침, 딸과 ‘오늘 뭐하지?’라고 얘기하다 근대 건축 투어를 할 수 있는 군산이 생각나 오전 11시 버스를 타고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역에서 내려 박물관부터 시작해 인력거, 삼륜 바이크를 타고 이곳 저곳을 꼬리물기 하듯 다니는 여행에 둘이 꽤 즐거웠다.

가장 인상적인 여행지를 꼽는다면.

프랑스 파리다. 그 전에도 혼자는 여러 번 갔었지만 딸과 함께 간 첫번째 여행지여서 어떤 곳보다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르누보’라는 한 시대의 예술, 건축 사조를 주제로 잡고 여행했다. 구글·위키피디아를 이용해 아르누보 시대의 대표 건축가와 현존하는 작품을 검색하고, 여기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갈 곳들을 공부하며 정했다. 딸과 함께 보물찾기를 하듯 골목 어귀에 남아있는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 조각상 등을 발견하고 좋아했다. 사유지여서 주인에게 부탁해서 들어가보고 집에 들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몰래 따라 들어가보기도 했다. 주제를 잡고 가니 왜 거길 가야 하는지 스스로 이유를 만들게 돼 그 어느 때보다 기억에 남는 파리 여행이 됐다.

여행에 반드시 챙겨가는 물건이 있는지.

스마트폰이 좋아진 이후에 다른 장비를 안 챙긴다. 평소 읽고 싶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잘 읽히지 않던 책 한 권 정도를 뽑아 가는 게 전부다. 디카나 필름 카메라도 들고 다녀봤지만, 여행이 끝나면 잘 안 꺼내게 되더라. 오히려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온라인 클라우딩 서비스에 올려놓고 언제든지 들어가서 본다.

건축가는 건물 사진을 많이 찍을 거라고 생각했다.

난 좀 다르다. 사실 유명한 건축물의 사진은 이미 인터넷에 수 백 수 천 장의 사진이 올라와있다. 그것도 너무 훌륭한 품질로. 그걸 내가 다시 찍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난 오히려 그 도시 사람들이 건축물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찍는다. 어디에 주로 앉아있는지, 어느 지점에서 먹는지…. 그들의 문화 말이다. 그 외엔 맨홀뚜껑, 쓰레기통, 화장실, 소화전 등 공공재들을 찍는다.

선호하는 숙소가 있나.

사실 전에는 숙소도 여행의 중요한 경험이라는 생각으로 현지의 에어비앤비를 이용해보기도 하고 유명하다는 부티크 호텔도 찾아 다녀봤는데 좋은 것보다는 서비스 측면에서 불편했던 기억이 많아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은 오히려 양질의 서비스가 보장된 브랜드 호텔을 선호한다.

짐 싸는 노하우가 있는지.

뭐든지 간편한 게 좋아 여행엔 작은 기내용 캐리어 하나만 꾸린다. 대신 꼭 접었을 때는 주먹만하지만 펼치면 커지는 나일론 소재 가방을 꼭 챙긴다. 아이가 있다면 여행가서 짐이 늘어날 확률은 100%다. 요즘은 ‘바구’(Baggu) 가방을 주로 쓰는데 아주 가볍고 튼튼하다. 특히 아이가 고르는 부피 큰 장난감이나 옷을 넣기 아주 좋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안지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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