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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초유' 방송 인터뷰하다 딱 걸린 토막 살인범

중앙일보

입력

[사진 The Telegraph]

[사진 The Telegraph]

영영 놓칠뻔했던 살인 사건의 범인이 기적 같은 우연의 연속으로 붙잡혔다.

2011년 6월 30일 조지아 주 메이컨의 한 아파트 단지는 경찰과 취재진, 방송 카메라로 웅성대고 있었다. 지역매체인 텔레그래프는 이 아파트 앞에서 걸어가는 행인을 발견하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사진 The Telegr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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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까지 내려오는 부스스한 곱슬머리에 낯을 가리는 듯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조금 주저했지만 인터뷰에 응했다.

피해자는 어떤 사람이었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음, 저는 이웃주민이었어요. 누구에게나 밝게 인사하는 여자였습니다"라고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리포터는 그 뒤 혹시 주변에 그녀를 해할 사람이 있었냐는 질문을 했다. 그러자 그는 "주변에 그런 사람은 없구요. 납치되거나 가출했다고 생각해요. 일단 그녀의 집에 침입한 흔적도 없고 문도 잠겨 있었거든요"라는 사건을 잘 모르는 일반인은 절대하기 힘든, 경악할 만한 발언을 했다.

그 뒤 리포터는 "혹시 시체가 발견됐는데 어떻게 된 건지 아는 부분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갑자기 그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가고 있음을 발견한 리포터가 "괜찮으신가요"라고 물을 정도였다. 그는 "앉아서 쉬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한 뒤 뒤돌아 서서 비틀거리며 걸어가더니 주변 잔디밭에 들어가 주저 앉았다.

[사진 The Telegraph 영상 캡처]

[사진 The Telegraph 영상 캡처]

경찰이 이 아파트 단지 쓰레기통에서 나흘 간 실종됐던 머서대 로스쿨생인 27세 여성 로렌 기딩스(Lauren Giddings)의 시신을 발견한 것은 바로 이날 아침이었다. 의문의 인터뷰를 한 이 남성은 기딩스와 마찬가지로 로스쿨을 갓 졸업한 25세의 스테판 맥대니얼(Stephen McDaniel). 두 사람은 로스쿨 동기이자 이웃이었다.

기딩스는 가족과 친구들의 애타는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쓰레기통에 담긴 비닐봉지에 상반신이 담겨 있는 채로 발견됐다. 머리와 팔은 잘려나간 상태였다. 기딩스는 사법시험 통과까지 한 단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계속되는 인터뷰에서 맥대니얼은 매우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건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상세하게 알고 있기도 했다.

횡설수설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이러한 맥대니얼의 반응은 수사관들의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수사팀은 주변 사람들에게 "똑똑하지만 변덕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스테판 맥대니얼을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하며 수사의 초점을 맞췄다. 이후 맥대니얼의 집에서 완벽한 물증이 발견되며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맥대니얼은 수개월 동안 기딩스를 스토킹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기딩스 아파트의 마스터키와 일반 열쇠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의 컴퓨터엔 기딩스의 사진 수백장이 저장돼 있었다. 맥대니얼의 컴퓨터 기록은 그가 기딩스의 SNS 계정을 수시로 염탐했음을 보여줬다. 맥대니얼이 때때로 포르노를 보면서 동시에 그녀의 사진을 검색했음도 확인되었다. 이후 그의 집에서 기딩스의 속옷이 발견된 것에 수사관들은 놀라지 않았다.

경찰은 맥대니얼이 기딩스 몰래 그녀의 아파트에 자유로이 드나들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고 밝혔다. 경찰이 맥대니얼이 촬영했다가 삭제한 비디오를 찾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나무막대 끝에 카메라를 테이프로 고정해 기딩스의 집을 염탐한 것으로 드러났다.

맥대니얼은 결국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며 2011년 6월 26일 새벽 4시 30분 마스크를 착용하고 로렌 기딩스의 아파트에 침임했다고 자백했다.

맥대니얼이 그날 아파트에 은밀히 침입했을 당시 기딩스는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맥대니얼이 기딩스의 침대에 접근한 순간 그녀가 갑작스럽게 잠에서 깼다. 첫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그가 발각된 순간이었고 예고된 비극의 시작이었다.

당황한 맥대니얼은 로렌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격렬한 몸싸움 도중 맥대니얼의 마스크가 벗겨졌다. 그가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기딩스는 "스테판 제발 멈춰"라고 애원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사진 The Telegraph]

[사진 The Telegraph]

기딩스의 숨이 끊어졌을 때 맥대니얼은 그녀를 욕조로 끌고가 시신을 방치한 뒤 집을 나섰다. 그날 밤 맥대니얼은 활톱을 가지고 돌아와 기딩스의 몸을 분해했다. 후에 맥대니얼의 아파트에서 기딩스의 DNA가 묻은 톱날의 덮개가 발견되었다. 맥대니얼은 6월 28일 사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사체가 발견되기 이틀 전이었다.
이후 놀라운 우연이 겹쳐졌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트럭이 이날따라 늦게 도착한 것이다. 원래 오전에 수거됐어야 할 쓰레기는 경찰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아파트 쓰레기통에 남아 있었다. 경찰은 기딩스 집 주변을 수색하다 사체를 발견했고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수사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만약 쓰레기차가 기딩스의 사체가 담긴 쓰레기를 이미 수거한 뒤 폐기물하치장에 그냥 파묻기라도 했다면 아마 미제 실종 사건으로 남았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스테판 맥대니얼은 모든 범행을 자백·시인했고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정우영 인턴기자 chung.w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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