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비운 고진영, 9홀 연속 버디 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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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2라운드에서 8홀 연속 버디를 잡아낸 끝에 올 시즌 첫 승을 거둔 고진영(가운데). 제주도 전통 물항아리인 허벅에 담긴 물세례를 받고 있다. [KLPGA=연합뉴스]]

2라운드에서 8홀 연속 버디를 잡아낸 끝에 올 시즌 첫 승을 거둔 고진영(가운데). 제주도 전통 물항아리인 허벅에 담긴 물세례를 받고 있다. [KLPGA=연합뉴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고진영(22)은 올해 부상으로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지난 11일 제주 오라 골프장에서 개막한 삼다수 마스터스 1라운드에선 오랜만에 5언더파를 기록했다. 첫날 경기를 마친 고진영은 “친한 친구가 2라운드에서 6언더파를 치면 선물, 7언더파를 치면 더 큰 선물을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욕과는 달리 고진영은 2라운드 전반 9개 홀에서 보기만 2개를 기록했다. 첫날 스코어를 까먹고 중하위권으로 떨어질 위기였다. 고진영은 “선물은 아예 포기했고, 신중하게 샷을 해서 컷만 통과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삼다수 마스터스 제패 시즌 첫승 #2라운드 전반 9홀에 2타 잃은 뒤 #“컷만 통과” 마음 먹자 신들린 샷 #3라운드도 6타 줄여 17언더 우승 #박인비는 3오버파로 공동 56위 #국내 대회 첫 우승 또 뒤로 미뤄

그런데 그때부터 거짓말처럼 상황이 달라졌다. 아이언샷은 핀에 척척 붙고, 먼 거리 칩샷도 홀에 빨려 들어갔다. 신들린듯한 샷을 하면서 고진영 자신도 놀란 표정이었다. 고진영은 11번 홀부터 18번 홀까지 8개 홀 연속 버디를 잡았다. 8개 홀 연속 버디는 KLPGA투어 이 부문 타이기록이다. 조윤지가 2015년 사우스 스프링스 골프장에서 벌어진 E1 채리티 마지막 라운드에서 8개 홀 연속 버디를 기록했다.

고진영은 13일 열린 최종 3라운드 첫 홀에서도 버디를 했다. 9개 홀 연속 버디인 셈이다. 그러나 KLPGA는 이어진 라운드에서 연속 버디는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에서는 양희영(28)이 2015년 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9개 홀 연속 버디를 기록했다. 남자 투어인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도 9홀 연속 버디가 기록이다.

8연속 버디가 기록된 리더보드를 가리키는 고진영.

8연속 버디가 기록된 리더보드를 가리키는 고진영.

결국 고진영은 2라운드에서 버디 8개에 보기 2개로 6언더파를 기록하면서 친구로부터 선물을 받게 됐다. 둘째 날 합계 11언더파로 공동 2위를 기록한 고진영은 마지막 날에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최종 3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6개를 잡아낸 끝에 합계 17언더파로 2위와 4타 차의 여유 있는 우승을 차지했다. 올 시즌 상금 20위에 머물렀던 고진영은 “선수 생활을 하면서 항상 앞만 보며 달려왔다. 상반기에 우승도 없고 힘든 시간을 보내서 부모님이 함께 제주도 여행을 하자고 하셨다. 13년 만의 가족여행이었다. 그런데 한라산에서 좋은 기운을 받아서 우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국내 투어에서 출전한 박인비(29)는 3오버파 공동 56위에 그쳤다. 미국 투어에서 18승, 일본에서 4승을 거둔 그는 국내 대회엔 18차례 출전해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크리스 스트라우드. [EPA=연합뉴스]

크리스 스트라우드. [EPA=연합뉴스]

◆PGA 챔피언십 무명 스트라우드 반란=지난 11년 동안 PGA 투어 289차례 대회에 출전해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던 크리스 스트라우드(35)도 마음을 비운 뒤 대박을 터뜨렸다. 스트라우드는 지난 7일 미국 네바다주 리노 몽트뢰 골프장에서 벌어진 PGA투어 바라쿠다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스트라우드는 마지막 홀에서 이글을 잡아 연장전에 나간 뒤 3명이 치른 연장전에서도 이겼다. 그는 “그동안 우승을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는데,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올해 초 마음을 비웠다. 우승에 연연하지 않기로 결심한 뒤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다. PGA 투어 카드를 잃은 그는 올 시즌 1부 투어 중 상위 선수들이 주로 불참하는 대회와 2부 투어 대회에 번갈아 나갔다. 세계랭킹은 413위로 떨어진 상태였다.

스트라우드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상금 60만 달러를 받았다. 그는 또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PGA 챔피언십의 마지막 남은 한 장의 출전권을 보너스로 받았다. 오랜만에 메이저 대회에 참가한 스트라우드는 이번에도 욕심을 버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경기 도중 스코어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 캐디에게 과학이나 야구·풋볼 등 골프 말고 다른 얘기를 하자고 했다. 그게 확실히 통했다”고 말했다.

스트라우드는 1, 2라운드 연속 3언더파를 기록했다. 13일 벌어진 3라운드에서도 한 타를 줄여 선두에 한 타 뒤진 공동 2위까지 올라갔다. PGA투어 289개 대회에 출전해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던 스트라우드는 290번째 대회에서 우승한 뒤 291번째 대회에서 또 다시 우승 기회를 잡은 것이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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