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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군사연습 중단도 고려, 뜨거운 주전론 일단 식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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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방찬영 카자흐스탄 키맵대 총장·김영희 대기자 긴급 대담 

한반도가 8월 위기설로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북한과 미국이 강도 높게 상대방을 공격하는 언사를 쏟으며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지도자가 둘 다 예측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번 북핵 위기는 과거보다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북핵 위기의 본질과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김영희(81) 중앙일보 대기자와 방찬영(81) 카자흐스탄 키맵대 총장이 만나 긴급 대담을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방 총장은 1991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경제특별보좌관으로 임명돼 소련으로부터 분리·독립한 카자흐스탄의 경제시스템 개혁을 주도했다. 특히 북한의 비핵화와 경제 발전을 연계하는 전략적 구상안 연구에 몰두했다. 그의 한반도 평화 구상을 담은 책 『김정은 위원장의 위대한 도전』이 8월 중 출간될 예정이기도 하다. 10일 세 시간에 걸친 이 대담의 전문(全文)은 오는 17일 발간되는 월간중앙 9월호에 실린다.

그간 한·미·중·일·러 공통정책 없어 #북 비핵화 전제, 미군 문제도 논의를 #베를린 구상엔 구체적 로드맵 빠져 #유럽도 참여 ‘북한판 마셜플랜’ 필요 #중국이 북한에 핵 포기 압력 넣게 #문 대통령, 담대한 결심 필요한 때

방찬영 카자흐스탄 키맵대 총장과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사진 아래)가 지난 10일 북한 핵 문제 해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프리랜서 이원근]

방찬영 카자흐스탄 키맵대 총장과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사진 아래)가 지난 10일 북한 핵 문제 해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프리랜서 이원근]

북한이 추구하고 있는 핵미사일 정책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방찬영 총장=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목적은 두 가지다. 미국의 위협에 맞서는 억지력 확보, 그리고 체제의 생존이다. 북한은 체제 생존을 위해 핵무기를 거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김영희 대기자=김정은은 지금 미국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인정 투쟁’을 벌이고 있다.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가 주고받는 동등한 수준의 말 폭탄을 보면 김정은은 이 인정 투쟁에서 상당한 전과를 올리고 있는 셈이다. 일단 그의 언행 하나하나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현 단계에서 어떤 전략으로 북한을 설득해야 할까.
▶김=핵 폐기로 정통성이 약화될 때 제일 위협적인 세력이 군부다.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이 북에 고위 군사회담을 제안했다. 상당히 지혜로운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군부 엘리트를 남북대화나 협상 등 문제 해결에 개입시키고, 그들에게 기득권으로 ‘평화의 배당금(peace dividend)’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은 평화라는 목표만 제시했다. 그런데 목표로 가는 로드맵이 안 나와 있다. 문 대통령은 핵 동결이 입구이며 비핵화가 출구라고 했다. 입구에서 출구까지 가는 정교한 로드맵을 만들어 북한·미국·중국을 납득시켜야 한다. 여기서 문 대통령이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북한판 마셜플랜을 제안하는 것도 고려할 가치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 부흥을 위한 마셜플랜은 미국 혼자 돈을 냈지만 북한판 마셜플랜은 6자회담 참가 5개국과 적어도 유럽연합(EU)이 참여하는 국제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백억 달러 규모의 지원 플랜을 만들어 북한을 유인해야 한다.

▶방=정통성의 문제는 지금 성격이 달라졌다. 북한의 현재 경제체제는 이미 사회주의가 아니다. 북한 경제의 70%가 장마당에서 형성된다. 국가 영역에서 창출되는 것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김 대기자께서 북한판 마셜플랜을 거론하셨는데 북한에 대한 당근 제공은 한 나라가 주도해야 한다. 핵은 한국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한국이 비핵화를 위한 대북 지원을 주도하면서 북의 시장경제 수용을 유도해야 한다. 북한의 경제개혁과 발전이 중국에 의해 이뤄지면 북한은 중국의 속국이 된다.

방찬영 카자흐스탄 키맵대 총장(왼쪽)이 지난 10일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대담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이원근]

방찬영 카자흐스탄 키맵대 총장(왼쪽)이 지난 10일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대담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이원근]

그간 5자관여국(한국·미국·중국·일본·러시아)은 왜 북한 비핵화를 위한 전략 도출에 실패했을까.
▶방=관여국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정책(shared common policy)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공조를 얻기 위해서는 그들 나라의 전략적인 입지와 전략적인 이해, 우려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중국의 공조를 받기 위해선 비핵화가 완결되는 시점에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한다는 안을 제시해야 한다. 중국은 북한이 붕괴되었을 때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일하는 것과 통일 후 미군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지는 것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주한미군 문제는 사실 복잡한 사안이다. 미·중 관계와 남북관계가 마치 동심원처럼 중첩돼 있는 것이다. 비핵화 시 미군 철수는 중국과 헤게모니 다툼을 벌이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 당장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미군 철수 또는 감축 문제 정도는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런 입장을 미국과 중국에 전달하는 것이 현명하다. 6자회담이 북한 비핵화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동북아의 지정학적 틀에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구상을 소홀히 하고 오로지 비핵화에만 올인했기 때문이다.

방찬영 카자흐스탄 키맵대 총장(사진 위)과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가 지난 10일 북한 핵 문제 해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프리랜서 이원근]

방찬영 카자흐스탄 키맵대 총장(사진 위)과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가 지난 10일 북한 핵 문제 해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프리랜서 이원근]

5자관여국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타협안의 핵심은 무엇이 되어야 하나.
▶김=미국에서도 많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조지 W 부시 정부, 오바마 정부 시절 연이어 국방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게이츠의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7월 11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북한 체제를 인정하고 경제제재를 포기하라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어라 ▶북한의 10개 내지 20개의 핵탄두 보유를 인정하라 ▶한국 내 군사력 구조를 조정하라 등을 제시했다. 뉴욕타임스에 실리는 전문가들의 칼럼도 대부분 이런 방향의 논조다. 특히 한·미 합동군사연습의 대폭 축소나 중단이 많이 거론된다. 한·미 합동군사연습 중단은 고려해볼 만하다. 지금 전쟁 분위기가 너무 고조되고 있다. 이 뜨거운 주전론(jingoism)을 일단 식혀야 한다.

▶방=반드시 북한에 양자택일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5자관여국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지속함으로써 제재와 압박으로 인한 체제 붕괴 위협을 감수하거나, 아니면 비핵화를 수용하는 대가로 경제개발기금을 공여받아 시장지향적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 현대화로 체제 생존을 추구하든가 양자택일하도록 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를 수용한 후에도 미군이 그대로 주둔한다면 중국이 북한에 대한 결정적인 핵 포기 압력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니까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결정해야 한다. 북한의 핵 포기와 미국의 영향력 강화가 동시에 추진되는 것을 중국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미군은 철수한다는 카드를 문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정도 담대한 결심을 하지 못하면 북핵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사회=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정리=문상덕 기자 glutto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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