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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암을 극복한 사람들의 공통된 한마디 “욕심·두려움 내려놓고 현재를 즐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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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암 완치율 평균 70% 시대, 치료효과 높이는 심리요법

암 환자들이 지난 3일 서울아산병원에서 명상 수업을 받고 있다. 이들은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고 말한다. [사진 서울아산병원]

암 환자들이 지난 3일 서울아산병원에서 명상 수업을 받고 있다. 이들은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고 말한다. [사진 서울아산병원]

폐암 4기 황옥순(76·여)씨는 6년 전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시한부 6개월’ 판정을 받았다. 그는 이듬해 폐·복강의 암 덩어리를 떼는 수술을 받았다.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평소처럼 즐겁게 생활했다. 병원 검진도 빼먹지 않았다.

완치자가 증언하는 마음의 힘 #췌장·후두암 2기 이상 난치 환자들 #평소와 다름없이 좋아하는 일 몰두 #심리치료 도입 나선 병원·정부 #웃음교실, 명상·미술치료 병행 활발 #정부도 환자 스트레스 관리 지원 #아직 체계적 시스템 미흡 #치료에 도움 된다는 연구 늘지만 #건보 적용 안 돼 민간요법 머물러

그 덕분이었을까. 지난해 기적처럼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살았다. 그게 병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암 환자는 해마다 20만 명 이상 발생한다. 암을 경험한 사람도 146만여 명(2015년 초)으로 전체 인구의 2.9%다. 사실상 ‘완치’를 의미하는 5년 생존율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2010~2014년 평균치는 70.3%. 암 환자 10명 중 일곱은 병을 극복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암이 우리 삶에 가까워지고, 완치율이 높아질수록 그 비결에 대한 관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완치 암 환자 들여다보니=황씨 사례처럼 ‘마음가짐’이 병을 이기는 데 영향을 미칠까. 이와 관련해 암 완치 환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정신적 안정’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박지숭 사회복지학 박사는 50~60대 암 완치 환자 6명의 심층 인터뷰를 토대로 한 논문을 보건사회연구원 학술지에 게재했다고 3일 밝혔다. 그동안 통계 위주의 연구는 많았지만, 환자 경험을 구체적으로 다룬 연구는 드물다.

박지숭 박사가 인터뷰한 이들은 췌장암과 후두암 등 2기 이상의 암을 앓아 치료가 쉽지 않던 환자였다. 그런데도 완치에 성공한 데는 ▶항암 치료를 충실히 받으면서 본인 스스로 치유 노력을 했고 ▶과도한 욕심을 버리고 ▶병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았으며 ▶운동·합창 등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고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유방암 3기였던 56세 주부 A씨는 치료를 받으러 다니던 병원의 합창단에 참여하면서 암에 대한 공포를 극복했다. 암에 걸린 뒤 남을 탓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고마움을 가지면서 평온을 찾았다.

박지숭 박사는 “암에 걸리면 그 전과 많은 점이 달라져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암 환자들에겐 의학적 치료 못지 않게 심적 안정을 가져다주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실제로 암 환자들은 큰 불안감에 노출되곤 한다. 일산병원이 2002~2010년 환자 100만 명을 분석한 결과, 남성 암 환자(51.7%)의 정신질환 유병률은 일반 남성 환자(27%)의 두 배에 가까웠다. 여성도 비슷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암 환자 심적 안정은 어떻게=지난 3일 서울아산병원 암교육정보센터에서 은은한 음악이 흘러 나왔다. 암 환자 10여 명이 평온한 표정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내 몸의 상태는 내 마음의 상태입니다.” 명상 수업 강사가 차분한 어조로 조언을 이어갔다. 50대 여성 환자는 “엉덩이 쪽이 많이 아팠는데 명상 후에 몸도, 마음도 많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암 환자의 심적 안정과 치료를 돕는 대표적 방법 중 하나가 이 같은 심리치료다. 대형 병원 중 항암 치료에 더해 심리치료를 하는 곳이 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세브란스병원 등에선 수년 전부터 웃음교실이나 명상·미술치료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투병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따른 치료 포기, 정신 질환 등을 막아보자는 취지다.

정부도 최근 환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뛰어들었다. 지난달 수술·항암화학요법 등 초기 치료를 마친 환자들을 대상으로 ‘암 생존자 통합지지센터’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국립암센터와 전국 6개 국립대병원 암센터에서 환자 영양과 스트레스 관리법 등을 교육하고 상담한다. 강민규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장은 “시범사업은 올 연말까지지만 내년 이후에도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환자들의 반응은 좋다. 3년 전 비인두암 3기 판정을 받은 이덕경(46·여)씨는 매일 눈물을 흘리고 면회도 거절하는 등 좌절감이 컸다. 하지만 병원에서 미술·음악 치료를 받으며 여유를 찾고 건강도 좋아졌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이 멀다. 이런 시스템이 완전히 자리잡지 못한 데다 환자 인식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금웅섭 연세암병원 암지식정보센터장은 “외국은 일찌감치 관심을 갖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곳이 많다. 우리는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않고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장직장암 환자 윤해정(41·여)씨는 “주변 환자들에게 심리치료를 추천했는데 ‘그게 뭐냐’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심리치료가 건강보험 대상에 포함되기도 어렵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학적 효과를 보여주는 근거가 아직 부족한데다 의료계에서도 건보 적용 요청을 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도 아직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심리치료로 환자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연구는 잇따라 나온다.

전문가들은 적절한 심리치료와 암 환자 회복을 위해선 환자 본인의 의지와 함께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종흔 국립암센터 지원진료센터장은 “암을 이겨내려면 스트레스를 잘 관리해야 한다. 정신건강 상담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보완적 치료로 명상, 미술치료 등을 받으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박지숭 박사는 “마음이 불안한 환자들을 민간요법에 내버려두기보단 병원·지역 복지관 단위에서 다양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종훈·박정렬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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