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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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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지난 5월 말, 호기심에 정신과에 가 봤다. 놀란 점 몇 가지. 수많은 정신과가 검색되는데 예약은 한결같이 어렵다. 대기 환자들이 넘쳐서다. 광화문 모처에 들어서니 아차 싶었다. 내가 힘든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40대 여성은 소리 내 울면서, 다른 젊은 남성은 좀비처럼 텅 빈 눈동자로 차례를 기다렸다. 10분마다 3만원씩 올라가는 상담료 책정 시스템에도 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을 하다 보니 ‘그깟 3만원쯤’이라는 생각이 드는 데도 놀랐다.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선 별로 없다.

뒤늦게 이효리에 버닝하고 있는 지금, 정신과는 사치였다고 반성한다. JTBC ‘효리네 민박’에서 우연히 들은 노래 한 곡이 계기다. 고(故) 김광석의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스쳐 가는 의미 없는 나날을 두 손 가득히 움켜쥘 순 없잖아.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가시 돋친 폐허 속에 남겨진 너의 평범함을 외면하진 마.” 매일이 의미 없어 보이고 삶의 현장이 상처투성이일지라도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그저 묵묵히 살아내면 살 만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혼자 골똘히 생각한다고 해도 일도 사랑도 가족도 친구도 마음대로 안 된다. 하지만 김광석이 이미 1994년에 노래했듯 너무 깊이 생각하진 않으련다. 우린 생각이 너무 많다. 오죽하면 프랑스 심리치료사 크리스텔 프티콜랭의 책이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2017년 대한민국에서도 절찬 판매 중일까.

김연수 작가의 글이 떠오른다. "수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결국 우리는 여전히 우리라는 것, 나는 변해서 다시 내가 된다는 것.”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정신 좀 차리지 마세요. 끝까지 예뻐지세요.”

자살 유도 노래처럼 보이지만 실은 삶을 찬미하는 명곡,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에서 나카시마 미카(中島美嘉)는 “목표란 어차피 추한 거야. 죽을 궁리만 하고 마는 건 분명 삶에 너무 진지해서야”라고 노래하다 이렇게 끝맺는다. “당신 같은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조금은 기대를 해 볼게.”

무섭던 무더위 기세도 꺾였다. 사람들은 곧 춥다며 투덜댈 게다. 모든 괴로움은 지나가고, 새로운 괴로움이 또 오겠지. 일단 지금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자.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