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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기자의 心스틸러]내가 아직도 양꼬치엔 칭따오로 보이니 '품위있는 그녀' 정상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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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에서 안재석 역할을 맡아 이태임과 천연덕스러운 불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 정상훈. 극중 트와이스의 'TT'를 즐겨듣는 정상훈은 속옷 바람으로도 깜찍한 안무를 구사한다. [사진 JTBC]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에서 안재석 역할을 맡아 이태임과 천연덕스러운 불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 정상훈. 극중 트와이스의 'TT'를 즐겨듣는 정상훈은 속옷 바람으로도 깜찍한 안무를 구사한다. [사진 JTBC]

10.4%(닐슨 코리아, 수도권 유료가구 기준)으로 JTBC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는 금토드라마 ‘품위있는 그녀’는 기본적으로 여자들의 이야기다. 승무원 출신으로 상류층 사회에 진입했지만, 품위 그 자체인 것 같은 여자 우아진(김희선 분)이 있고, “상류층 사람들은 밑바닥 사람들과 달리 머리를 쓰더라”며 이에 편입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여자 박복자(김선아 분)가 있다. 이들이 며느리와 간병인으로 처음 인연을 맺게 된 대성펄프 집안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욕망 넘쳐나는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서 #코믹과 정극 오가는 연기로 활력 불어넣어 #개그맨 오해 많이 받지만 벌써 20년차 배우 #"배우다 보면 다 도움 된다" 의외로 학구파

회장님 간병인에서 사모님을 거쳐 부회장으로 고속승진한 박복자는 물론 재산상속을 위해 아들과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첫째 며느리와 이혼해야 하니 미리 내 몫을 넘겨달라고 떼쓰는 첫째 딸 등 돈이 곧 인생의 목적이자 수단인 여자들이 한집에 모여 산다.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사님들까지 자신이 모시는 사모님 편을 들다가 상대편 사모님 눈치를 보고 박쥐처럼 움직이며 정보보고를 하는 등 각자의 욕망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자연히 둘째 아들이자 우아진의 남편 안재석 역을 맡은 배우 정상훈(41)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그는 첫째 아들도 쫓겨난 집에 함께 살아남은 유일한 남성이지만, 후계자가 되기에는 이들의 이전투구 사이에서 살아남기 역부족인 지나치게 순수한 영혼이기 때문이다. 딸 미술 선생님과 바람을 피우다 걸려도 “걱정하지 마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는, 이혼 소장이 날라와도 “함께 잘살아 볼 수는 없는 거냐”고 되묻는 답답이 중 답답이다.

'품위있는 그녀'에서 본처 및 불륜녀와 함께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 정상훈. [사진 JTBC]

'품위있는 그녀'에서 본처 및 불륜녀와 함께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 정상훈. [사진 JTBC]

다른 드라마 같았으면 민폐 캐릭터이자 발암 유발자로 낙인 찍혀 단단히 욕받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상훈은 조금 다르다. 모두가 속마음을 숨기고 돈을 쫓아 돌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본심을 드러내 보이며 사랑을 말하기에 되려 미워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본처와 첩이 같이 살게 된 유엔빌리지에서 “그럼 나는 어디서 자냐”며 처량하게 거실에 텐트를 치고  기타를 치며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부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심지어 노래도 제법 잘 부른다. 이 복병의 심스틸러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사실 2015년 ‘SNL 코리아’ 시즌6에서 방영된 ‘글로벌 위켄드 와이’라는 코너에서 ‘양꼬치엔 칭따오’를 맡으며 주목을 받은 탓에 그를 개그맨으로 아는 사람도 많지만 정상훈은 1998년 시트콤 ‘나 어때’로 데뷔한 20년차 배우다. 무려 송혜교와 러브라인이 있었던 비중있는 역할이었지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서울예대 개그클럽 선배들과 연극 공연 도중 캐스팅된 그는 “목숨을 걸 수 있겠냐”는 PD의 질문에 “목숨 뿐이겠습니까”라고 답했지만 목숨 건 연기는 무리수일 뿐이었다.

'양꼬치엔 칭따오' 역할로 인기를 얻으면서 칭다오 전속모델로 활약한 정상훈. [사진 칭다오]

'양꼬치엔 칭따오' 역할로 인기를 얻으면서 칭다오 전속모델로 활약한 정상훈. [사진 칭다오]

하지만 그는 ‘형님 따라 강남갈지언정’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조금 더 버티면 언젠가 정말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신념으로 정성화의 뮤지컬 ‘아이 러브 유’를 보고 대학로에 진출해 ‘맨 오브 라만차’ ‘오케피’ 등에서 열연했고, 다시 “이제 가장인데 좀더 안정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신동엽의 권유로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비록 그가 서는 무대는 달라졌지만 그 경험들을 통해 내실을 더 다질 수 있었던 것이다. 정상훈은 “극장에서의 경험이 유학생활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때 했던 많은 실험과 시행착오가 생방송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항상 장난기 가득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의외로 학구파인 점도 그가 남다른 캐릭터를 만드는 데 한 몫 했다. “버티는 동안 공부도 많이 하고, 많이 보고, 많이 들으면 좋은 배우가 될 거라는 믿음”이 중국어와 경상도 사투리를 접목한 개그를 만들어 내고 2012년 결혼 이후 두 아들의 육아경험을 담은『아빠, 나 어떻게 키울래요?』라는 책까지 펴냈다. 야무지게 칭다오 CF 모델을 꿰차고 상표권 등록을 한 것도 모자라 육아와 함께 다져진 요리 실력도 설탕 백선생 디스 등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깨알같이 선보이고 있으니 이 또한 남는 장사 아닐까. 배우고 경험하면 어떻게든 쓸모가 있다는 지론에 부합하는 것이다.

오는 30일 개봉을 앞둔 코미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임창정과 호흡을 맞춘 정상훈. 공형진까지 엉뚱 삼총사는 현금수송 차량을 털고 숨어든 나이트 클럽에서 인질극을 벌인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오는 30일 개봉을 앞둔 코미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임창정과 호흡을 맞춘 정상훈. 공형진까지 엉뚱 삼총사는 현금수송 차량을 털고 숨어든 나이트 클럽에서 인질극을 벌인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마침 올해는 오는 30일 개봉을 앞둔 ‘로마의 휴일’을 시작으로 ‘컨트롤’, ‘게이트’에 이어 내년 ‘흥부’까지 4편의 영화가 제작 및 준비 중이다. 상대 배우들도 임창정ㆍ공형진(‘로마의 휴일’), 오달수ㆍ정웅인(‘컨트롤’), 이문식(‘게이트’), 김원해(‘흥부’) 등 코미디 연기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선배들이 총출동한다.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개그맨도 좋지만 배우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그의 바람을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스스로 웃음을 참지 못하고 틈만 나면 웃기고 싶어 한다는 뮤지컬 팬들의 조언을 귀담아 치고 빠지는 법을 배운다면 올해야말로 웃긴 남자가 아닌 연기파 정상훈의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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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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