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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人流]아르마니·프라다서 일하다가 돌아온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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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오정(45)·박은숙(44) 부부의 선택은 여러모로 상식적이지 않다. 이들의 직업은 모델리스트. 디자이너가 그린 그림을 입체적으로 변형시키는 패턴을 만드는 일이다. 패션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열 중 아홉은 디자이너를 꿈꿀 터인데, 이들은 애초 모델리스트를 목표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고는 15년간 아르마니·알렉산더맥퀸·프라다·미우미우 등 세계적 브랜드에서 내공을 쌓다가 올 초 돌연 한국으로 U턴했다. 요즘처럼 누구나 국내보다는 해외 무대에서, 작은 브랜드보다는 이름난 대기업과 일하고 싶은 시류에 부러 역행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도 부부는 "만나는 사람마다 대체 왜 돌아왔냐며 걱정인지 추궁인지 모를 말들을 한다"고 여유롭게 웃었다. 이들의 속내가 더 궁금해졌다. 글=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모델리스트 오정(왼쪽) 박은숙 부부. 이탈리아 패션 하우스에서 일한 두 사람은 올 초 귀국, 서울 삼성동에 패턴 스튜디오 폴앤컴퍼니를 열었다.

모델리스트 오정(왼쪽) 박은숙 부부. 이탈리아 패션 하우스에서 일한 두 사람은 올 초 귀국, 서울 삼성동에 패턴 스튜디오 폴앤컴퍼니를 열었다.

두 사람은 귀국 직후 서울 삼성동에 패턴 스튜디오 '폴앤컴퍼니'를 열었다. 시즌마다 국내 브랜드의 패턴 작업을 맡는 독립 사업체다. 국내 대기업의 경우 소속 모델리스트를 두는 게 관례인 상황. 그는 대신 역량 있는 젊고 실험적인 디자이너들과의 작업에 비중을 뒀다. 이미 지난 5월 국내 대표 디자이너 브랜드 중 하나인 KYE(계한희 디자이너)와 손발을 맞췄다, 지금은 10월 서울패션위크를 앞두고 디자이너들과 미팅도 이어진다. 아직 공개할 단계가 아니지만 "국내 대표 브랜드와 만나는 중"이라고도 했다.

모델리스트 오정·박은숙 부부

-메인 무대인 이탈리아에서 굳이 돌아왔다.
"(박) 국내 패션 시장이 녹록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누가 우리를 알아봐 줄 거냐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유가 있었다. 프라다·펜디·베르사체 같은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들은 삼성전자가 휴대폰 만드는 식으로 옷을 만든다. 그만큼 규모가 크고 세분화된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시스템 하에서 움직인다. 그 체계 속에 모델리스트도 포함된다. 15년 간 경험한 이 노하우를 국내에 전수하고 싶었다."

-모델리스트의 역할이 특별한가.
"(오) 상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는 사람이다. 방향을 제시하는 패션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장교라면,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는 모델리스트는 하사관이다. 디자인을 판독할 줄 알아야 한다. 새 옷이 하나 그려졌다 치자. 이걸 어떻게 완 벽하게 제작할 것인가라는 건 별개의 문제다. (박) 우리가 아는 세계적 브랜드가 디자인으로만 탄생하지 않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에서 패션 디자인을 하겠다는 한국인이 넘쳐난다. 하지만 자칫 공부가 공부로만 끝날 수 있다. 디자인을 뒷받쳐주는 힘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한국은 하루 안에 모든 부자재를 구해 샘플을 만들 수 있는, 동대문 시장이라는 자원이 있다. 완성도만 높이면 된다. 다시 삼성 휴대폰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유학 갔을 때만 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공짜로 줘도 안 가졌다. 하지만 이제는 기술력을 갖추니 제 값을 주고 다 산다. 우리 패션도 그럴 수 있다. 모델리스트의 역할이 거기에 있다."

모델리스트의 작업 도구.

모델리스트의 작업 도구.

-모델리스트를 하게 된 이유는.
"(오) 1998년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기계회사가 외환위기로 문을 닫았다. 처음엔 막막했는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뭘까 생각했다. 그게 옷의 설계, 모델리스트였다. 사내에서 기계 설계자들 만나며 느꼈던 디자인의 매력, 그리고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따라 종종 옷을 사러 다니며 쌓인 패션 감각이 하나로 합쳐졌다. 무작정 코오롱패션산업연구원 모델리스트 과정을 등록했다. 거기서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당시 디자인과 1년 선배였고 먼저 졸업해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러다 결혼 직후 함께 모델리스트 과정(Instituto Carlo Secoli)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2000년 10월, 결혼식을 올린 지 일곱 달 뒤였다."

-유학 생활은 어땠나.
"(박) 지금이야 패턴 전문 학교에 한국인이 6~7명씩 있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인은 커녕 동양인도 거의 없었다. 말도 잘 안통했다. 그래도 참 열심히 했다. 졸업 전 업체의 인턴십 선발에서 둘이 1·2등을 했다. (오) 나는 입학 직후부터 패션지 보그의 커버 사진에 나온 옷을 보고 무작정 패턴을 만드는 날이 허다했다. 목표가 있어서였다. 입학하자마자 이탈리아 애들한테 떠듬거리면서 '난 아르마니에서 일할 거다'라고 큰 소리를 쳤다. 그 완벽한 재킷에 푹 빠져서 꼭 내 손으로 아르마니의 옷을 만들고 싶었다."

부부가 작업하고 있는 패턴 도안.

부부가 작업하고 있는 패턴 도안.

-실제 졸업 뒤 아르마니에서 일했다.
"(오) 아내의 도움이 컸다. 내가 하도 아르마니, 아르마니 하니까 열 개도 넘는 계열 브랜드의 본사 주소를 다 외우고 있었다. 이탈리아 패션 업체들은 대놓고 하는 공채가 없다. 신문에 작게 브랜드 이름 대신 본사 주소만 적고 'oo 모집' 이러면 끝이다. 그런데 아내가 아르마니 블랙 라벨(고급 기성복 라인) 주소를 발견하고 알려줬다. 지금도 외운다. 보르고 21이다. 학생이라 포트폴리오도 없이 사진만 5장 보냈는데 면접 통보가 왔다. 만 하루 현장실습을 하고 나서 당시엔 채용이 안 됐는데, 패턴 라인 디렉터가 "언젠가 꼭 다시 보자"고 했다. 졸업 뒤 지안프랑코 페레·베르수스에 다니다 정확히 3년 뒤 채용 연락이 왔다. 아내도 발렌티노·돌채앤가바나에 이어 아르마니에 합류했다."

스튜디오에 빼곡히 걸려 있는 패턴들.

스튜디오에 빼곡히 걸려 있는 패턴들.

-일 해보니 어땠나..
"(오) 모든 게 전문적이라는 게 가장 놀라웠다. 블랙 라인에 하나에만 아우터 모델리스트가 5명, 이너웨어에 10명이나 됐다. 드레스·스커트·바지를 다 따로 맡았다. 우리 역시 내가 아우터를, 아내가 이너를 전문으로 삼았다. 그렇게 6년을 일하고 나니 '이적 회전문'의 리스트에 올랐다. 거기도 어느정도 급이 되면 다른 브랜드에서 연락이 오니 비슷한 사람들끼리 옮겨 다닌다. 나는 알렉산더맥퀸에서 프라다·미우미우로, 아내는 아르마니에서 바로 프라다·미우미우로 이적했다. 딸이 태어나면서 아무래도 몸값을 좀 올릴 필요가 있었다(웃음). 이탈리아 변호사 연봉 수준을 받았다. 어쨌거나 옮길 때마다 디자이너로부터 배우는 게 확실히 달랐다."

과거 작업했던 컬렉션 의상들. 왼쪽 위에 보이는 패딩(위 사진)은 2014 미우미우 가을겨울 컬렉션으로 런웨이(아래 사진)에 나왔다. [폴앤컴퍼니, 중앙포토]

과거 작업했던 컬렉션 의상들. 왼쪽 위에 보이는 패딩(위 사진)은 2014 미우미우 가을겨울 컬렉션으로 런웨이(아래 사진)에 나왔다. [폴앤컴퍼니, 중앙포토]

-어떻게 달랐나.
"(박) 아르마니는 교과서적이었다. 체계적 과정을 통해 완벽한 테일러링을 원했다. (오) 이에 반해 맥퀸은 스스로 헤쳐가야 했다. 패턴을 두고 학교에서 배운 원칙을 다 깨뜨려도 좋다는 식이었다. (박) 프라다 미우미우는 다양한 소재에 도전할 수 있었다. 흔치 않은 모피·패딩 종류는 물론이고 PVC까지 쓸 정도로 디자이너가 소재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내공을 쌓고 돌아왔다. 그런데 왜 꼭 지금이었나.
"(오) 한국에서 모델리스트를 전문가로, 디자이너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풍토가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는 걸 확신했다. 젊은 디자이너들의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고, 서울패션위크부터 백화점 팝업 스토어나 편집숍처럼 이들을 성장시키는 채널이 많아지고 있다. 스폰지처럼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그들 작업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적기였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면, 언젠가 우리가 디자인 한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꿈을 준비할 시기이기도 했다. 입생로랑부터 발렌시아가·맥퀸·릭오웬스까지 쟁쟁한 디자이너들이 모두 모델리스트 출신이었다. 우리도 해 볼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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