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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지만 궁금한 스타일 지식] 브라질리언 왁싱, 파나마 햇…이 나라들과 무슨 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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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비키니 수영복을 입는 여름에는 브라질리언 왁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다. [사진 핀터레스트] 

비키니 수영복을 입는 여름에는 브라질리언 왁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다. [사진 핀터레스트] 

평소 패션에 대해 '왜 그럴까' 궁금한 것들이 있다. 오래전부터 이유를 모른 채 일상적으로 즐기거나, 혹은 너무 사소해서 누구에게 물어보기 멋쩍은 그런 것들이다. '사소하지만 궁금한 스타일 지식'은 쉽게 접하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패션 상식을 소개하는 코너다. 이번에는 '스타일의 원조'다.

성기·항문 주변 완벽한 제모 시술 #브라질 출신 자매들이 뉴욕서 선보여 #파나마 햇도 원조 대신 판매국 이름

'아메리칸 드림' 담은 브라질리언 왁싱  

영화 '아메리칸 뷰티' 포스터를 본딴 이미지. [사진 핀터레스트]

영화 '아메리칸 뷰티' 포스터를 본딴 이미지. [사진 핀터레스트]

요즘 같은 여름, 대표적 '미모 관리'로 꼽히는 게 브라질리언 왁싱이다. 왁싱이란 왁스를 녹여 피부에 발랐다가 굳으면 떼어내 털을 제거하는 방법. 그중에서도 브라질리언 왁싱은 성기와 항문 주변의 털을 제거하는 시술을 뜻한다. 미관상의 목적도 있지만, 청결을 위해 택하는 경우도 많다. 여성은 대개 아슬아슬한 비키니와 섹시한 란제리를 착용했을 때 털이 보이지 않으려고, 남성은 사타구니에 땀이 차 생기는 가려움이나 습진 예방하고자 브라질리언 왁싱을 감행한다. 시술 부위가 민망하고 통증을 동반하지만, 해외에서는 페디큐어만큼이나 보편적인 관리법으로 알려지며 국내에서도 이에 도전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그런데 왜 이 제모법을 두고 '브라질리언'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브라질에서 처음 생겨났다고 짐작하기 쉽지만 사실은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브라질리언 왁싱의 시작은 뉴욕 맨해튼 한복판이다. 지난해 BBC 온라인판은 『왁스 앤 더 시티(Wax and the City)』의 저자인 로라 말린(Laura Malin) 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에 대한 자세한 내막을 소개한 바 있다. 말린은 브라질리언 왁싱을 한 마디로 '아메리칸 드림'으로 요약했다.

브라질리언 왁싱을 뉴욕 맨해튼에서 처음 선보인 브라질 출신의 일곱 자매 'J 시스터즈'. [사진 J 시스터즈 홈페이지]

브라질리언 왁싱을 뉴욕 맨해튼에서 처음 선보인 브라질 출신의 일곱 자매 'J 시스터즈'. [사진 J 시스터즈 홈페이지]

주인공은 브라질 해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일곱 명의 자매들이다. 이름이 모두 J로 시작해 'J 시스터즈'라 불리는 이들은 아버지의 파산으로 동네 뒷마당에서 이웃들을 상대로 손톱 정리를 해주며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러다 1982년, 뉴욕에 놀러 갔던 넷째 조슬리(Jocely)는 여비가 떨어지자 아예 불법으로 눌러 앉아 네일숍에 취직한다. 당시 매니큐어는 한번 칠하면 오래 가는 대신 손톱이 망가지기 쉬웠는데, 조슬리는 이를 잘 복구해주는 손재주로 입소문이 난다. 여기에 단골이던 거물급 무기상 하나가 시간당 100달러를 내고 하루 전체를 예약하는가 하면, 배우 브룩쉴즈나 가수 로드 스튜어트 등 당시 셀럽들을 소개해주면서 조슬리의 몸값은 한없이 치솟는다. 마침내 그는 87년 자매들을 모두 불러들여 맨해튼에 미용숍을 연다.

1946년 한 여성 모델이 비키니를 입은 모습. 당시에는 완벽한 제모가 일반적이지 않았다. [사진 버슬] 

1946년 한 여성 모델이 비키니를 입은 모습. 당시에는 완벽한 제모가 일반적이지 않았다. [사진 버슬] 

하지만 브라질리언 왁싱을 처음 시도한 건 자매 중 제니아(Janea)다. 그는 과거 '브라질 해변에서 아름다운 소녀가 걸어가는데, 아슬아슬한 비키니 사이로 털이 삐죽 나온 것을 보고 거울이 깨지듯 이미지가 망가졌다'는 경험에서 92년 '완전 제모'를 시도해 본다. 당시 그 어떤 가게에서도 이 시술을 거부하자 스스로 거울을 보며 첫 피실험자가 된다.

초기 별 반응이 없던 브라질리언 왁싱은 '스타 마케팅'으로 전환점을 맞는다. 여성 라이프스타일 온라인 매체 '버슬'에 따르면, 99년 배우 기네스 펠트로가 방송에 나와 '이 시술이 내 삶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고백한 게 불을 지폈다. 뒤이어 2000년 9월에는 인기 시트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브라질리언'이라는 이름의 에피소드가 방영되기도 했다. 주인공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 역)가 첫 경험을 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냈는데, 이것이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 브라질리언 왁싱은 미국 전역에 퍼지면서 모든 미용숍이 필수적으로 다루는 시술이 됐고, 원조인 J 시스터즈 살롱은 예약이 밀려 드는 맨해튼 최고 뷰티숍으로 자리매김한다. 이 자매들은 『왁스 앤 더 시티』 저자인 말린과의 인터뷰에서 '왜 이걸 J 시스터즈 왁싱이라 하지 않고 브라질리언 왁싱이라고 했지?'라며 후회했다고 한다.

'파나마 햇' 인기에 에콰도르는 억울하다

퍼나마 햇을 쓴 배우 클로이 모레츠.[중앙포토]

퍼나마 햇을 쓴 배우 클로이 모레츠.[중앙포토]

영화 '1월의 두 얼굴'에 등장하는 파나마 햇. [중앙포토]

영화 '1월의 두 얼굴'에 등장하는 파나마 햇. [중앙포토]

모자는 멋쟁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액세서리다. 특히 최근에는 스트리트풍의 스냅백에 이어 복고 무드를 타고 베레모가 등장한다. 파나마 햇도 전성기를 맞았다. 크림색에 윗부분은 움푹 패이고, 테 주위로 컬러 띠를 두른 이 밀짚 모자는 휴가철을 맞아 바캉스 패션의 필수품이 됐다.

이 모자를 두고 패션용어사전에서조차 파나마 햇이라 부르지만 정작 원조는 에콰도르다. 이미 16세기부터 잉카인들은 야자수인 '파야 토킬라' 잎을 엮어 모자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17세기 중반 에콰도르 해안 마을에서 가내 수공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왜 에콰도르 햇이 아니라 파나마 햇인 걸까.

남미 전문 스타일 매체인 '라틴 포스트'에 따르면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파나마는 북미와 중미, 남미를 잇는 무역의 구심점이었던 이유가 컸다. 매일 수백 척의 배와 사람들이 이곳을 오갔고, 에콰도르 사업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은 자국에서 만든 모자를 수백 개씩 날라다 팔았다. 캘리포니아로 금을 찾아 떠나는 남자들과 부유한 여행객들이 여기서 모자를 사갔다. 그들은 당연히 파나마의 특산품일 거라고 짐작하지 않았을까. 더구나 1906년에는 파나마 운하 건설 현장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이 모자를 쓰고 방문하면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러는 사이 누구랄 것도 없이 이 모자를 '파나마 햇'이라 부르게 됐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여기에 남성잡지 GQ의 분석은 보다 현실적이다. 파나마 햇은 하나의 네이밍 전략이었다는 것. "에콰도르보다 파나마가 고객들에게 더 익숙했고 매력적인 곳이었다는 점이 작용했다"는 이야기다.

남북아메리카 사이에 위치한 파나마. [구글 지도 캡처]

남북아메리카 사이에 위치한 파나마. [구글 지도 캡처]

요즘은 콜롬비아나 칠레·미국·중국에서도 파나마 햇을 만든다. 그럼에도 여전히 최고는 '메이드 인 에콰도르'다. 특히 마나비 해변 도시인 몬테크리스티에서 나는 수공예 고급 제품이 유명하다. 2.4㎠당 꼬임이 얼마나 있냐에 따라 품질을 나누는데 100개 이하면 하급으로 1600~2500개 이상이면 고급으로 분류된다. 몬테크리스티에서 만든 수공예 모자는 3000여개 안팎이고, 하나를 만드는데 한달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2012년 이 직조법은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수공예로 파나마 햇을 만드는 에콰도르의 직조법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됐다. [사진 핀터레스트]

수공예로 파나마 햇을 만드는 에콰도르의 직조법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됐다. [사진 핀터레스트]

2014년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2003년 51만7000달러(5억8000만원)였던 에콰도르의 파나마 햇 수출액이 2013년 600만 달러(67억4400만원)까지 치솟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같은 해 에콰도르 지적재산권 기구는 파나마 햇에 대한 디자인 보호권 확보를 추진하기도 했다.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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