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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회 우승한 로봇 ‘오페어’ 보니…아직은 걸음마 가능성은 무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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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의 바이오지능 연구팀이 개발한 인공지능을 소프트뱅크사의 인간형 로봇 '페퍼'에 탑재한 로봇 '오페어(AUPAIR)'. 임현동 기자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의 바이오지능 연구팀이 개발한 인공지능을 소프트뱅크사의 인간형 로봇 '페퍼'에 탑재한 로봇 '오페어(AUPAIR)'. 임현동 기자

"히유." 인간형 로봇 '오페어(AUPAIR)'가 한숨을 크게 쉬었다. 오페어가 작동을 멈춰 재부팅을 하면 시스템이 꺼지며 나는 소리가 "히유"다. 오페어 연구팀의 한철호(27·서울대 컴퓨터공학부 박사과정 수료)씨는 "하루에 저 소리를 100번 넘게 들은 날도 있었다"고 말했다.

"오페어!"
연구원이 큰 소리로 불렀지만 오페어는 다른 곳만 쳐다보고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침실로 가라고 명령했지만 자꾸 식당으로 향했다. 연구팀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오페어에 무선 인터넷으로 연결된 컴퓨터를 조작해 명령어를 다시 입력했다. "오페어 키우느라 속이 얼마나 썩었는지 몰라요. 4000만원짜리라 말을 안 듣는다고 때릴 수도 없고." 연구팀 리더인 이범진(28·컴퓨터공학부 박사과정 수료)씨가 오페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런 모습만 보면 오페어는 무용지물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오페어는 지난달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2017 세계 로보컵(RoboCup) 대회'의 가정용 로봇(홈로봇) 부문에서 우승했다. 로보컵은 인공지능(AI) 로봇의 자율이동 능력을 겨루기 위해 20년째 열리고 있는 수준급의 국제대회다. 오페어는 이 대회에서 칵테일 파티에서 주문받기, 여행 가이드 역할 수행, 애니메이션 '뽀로로' 보고 대화하기 등의 과제를 수행해 최고점을 기록했다. 대회 심판관은 "불가능할 줄 알았던 과제들을 오페어가 해냈다. 대회의 새 기준을 세웠다"고 평가했다.

오페어는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가 이끄는 바이오지능 연구실에서 태어났다. 오페어의 성능과 개발 과정을 직접 보려 지난 4일 연구실로 갔다. 내심 '오페어가 반갑게 맞아주고 음료도 가져다 주겠지'라고 상상했지만, 연구실에서 마주친 오페어는 기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인간형 홈로봇은 아직 걸음마 단계

"주문하실 분은 손을 들어 주세요."

오페어가 연구실에 딸린 거실로 나와 말을 걸었다. 각자 손을 흔들거나 로봇을 부르면 오페어는 눈을 마주친 후 다가와 "무엇을 주문하시겠어요?"하고 물었다. 콜라·사이다·맥주 등의 주문 내용을 기억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오페어가 이동하는 모습을 연구팀이 조마조마한 눈빛으로 따라갔다. 오페어는 주방에 진열된 음료를 확인한 뒤 거실로 돌아와 "콜라는 있습니다. 맥주는 없는데 다른 음료를 주문하시겠어요?"라고 물었다. 음료를 직접 들고 오진 않았지만 누가 어떤 음료를 주문했는지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오페어가 과제 수행에 성공하자 연구팀은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서울대 연구팀이 오페어를 학습시키기 시작한 지는 3달 남짓 됐다. 연구팀은 대회 출전을 위해 지난 4월 일본 소프트뱅크사가 개발한 인간형 로봇 '페퍼(pepper)'를 구매했다. 키 121㎝에 바퀴로 이동하는 페퍼는 보고 듣고 말하기 위한 센서가 장착된 인간형 로봇이다. 손 흔들기 등 간단한 몸 동작을 할 수 있지만 물건을 옮기진 못한다. 장 교수팀은 여기에 인간의 '뇌'에 해당하는 AI를 심었다. 장 교수는 "불어에서 유래한 오페어는 외국인 가정에서 아이를 돌봐주는 등 집안일을 돕는 가정도우미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AI 홈로봇 오페어(AUPAIR)

-키: 121㎝

-몸무게: 29㎏
-이동 수단: 바퀴
-최대 이동속도: 시속 2㎞
-출생: 2017년 4월
(※일본 소프트뱅크사의 인간형 로봇 '페퍼'에 서울대 바이오지능 연구팀이 개발한 인공지능(AI)을 탑재)
-장기: '뽀로로' 보고 아이와 대화하기, 음료 주문 받기, 아침에 잠 깨우기

이때부터 연구팀과 오페어는 동고동락하기 시작했다. 처음 오페어는 신생아와 다를 게 없었다. 간신히 전후좌우를 천천히 움직였고 명령어 입력이 조금만 잘못되면 멈춰버려 재부팅을 해야 했다.

오페어가 세 달 만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건 연구실에서 10년 넘게 개발해온 AI 기술 덕분이다. 연구팀은 오페어의 두뇌에 해당하는 컴퓨터에 그동안 개발해온 음성인식, 대화기능, 상황판단 능력 등의 AI 기술을 추가했다. 오페어와 컴퓨터는 무선 인터넷으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AI를 탑재했다고 로봇이 갑자기 똑똑해 지는 건 아니다. 연구팀이 밤낮 가리지 않고 오페어를 따라다니며 학습시키고 발생한 오류를 수정했다. 이제 오페어는 사람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카메라로 본 사물을 식별하고, 상황을 판단해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일 정도를 할 수 있다.

오페어의 머릿속을 보여주는 화면은 처음엔 백지 상태였다. 지금은 연구실 지도가 그려져 있고 이동 가능한 영역이 표시돼 있다. 모두 오페어가 직접 연구실을 돌아다니며 학습해 그린 지도다. 오페어가 보고 있는 시야는 화면에 영상으로 나타나는데, 사람인 경우 성별, 옷의 색, 앉아 있거나 손을 들었는지 여부 등이 표시된다. 명령어 창에는 오페어와 컴퓨터가 주고 받는 신호가 쉴 새 없이 기록되고 있다.

기술력의 차이는 대회에서 증명됐다. 7~10분 간의 제한시간 동안 오페어는 주어진 과제를 수행했지만 다른 팀의 로봇은 장애물에 걸려 이동조차 못하거나 같은 질문만 반복하다 제한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장 교수팀은 2위인 호주의 시드니 공대팀 점수의 두 배가 넘는 점수를 받아 우승했다. 오페어의 성능을 믿지 못한 외국 팀들이 "한국 팀이 부정행위를 하는 것 같다"고 공식 항의를 할 정도였다.

 2017 세계 로보컵 대회의 홈로봇 부문에서 우승한 서울대 오페어 팀(장병탁 교수와 이범진·이충연·최진영·백다솜·박경화·한동식·최성준·한철호·패트릭 이마스 연구원). 임현동 기자

 2017 세계 로보컵 대회의 홈로봇 부문에서 우승한 서울대 오페어 팀(장병탁 교수와 이범진·이충연·최진영·백다솜·박경화·한동식·최성준·한철호·패트릭 이마스 연구원). 임현동 기자

◇AI 로봇의 가능성은 무한대

인간형 홈로봇이 걸음마 수준이라고 해서 AI 로봇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미 한 가지 목적만 수행하는 AI 로봇은 상용화해 실생활에서 사용 중이다. 음성인식 비서, 로봇 청소기, 무인 자동차 등이 대표적이다.

장 교수는 "PC, 스마트폰처럼 몇 년 뒤엔 모든 가정에 AI 로봇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의 박경화(29·컴퓨터공학부 박사과정 수료)씨는 "단순히 인간을 돕는 로봇을 넘어 사회성을 갖춘 사람같은 로봇도 개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 기술을 인정받은 연구팀이지만 외국으로 개발 인력이 유출되는 것에 대한 걱정도 크다. 페이스북·구글·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은 고액 연봉을 제시하며 관련 분야의 고급 두뇌를 입도선매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대기업까지 한국의 인력에게 '러브콜'을 보낸다고 한다.

장 교수는 "아직은 한국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인력 유출이 계속되면 기술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에게 능력에 맞는 대우를 하고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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