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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결의, 문재인의 결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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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국제부장

이상렬 국제부장

6일 새벽(한국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과한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안 2371호에 대한 질문은 한 가지다. 피니시 라인(finish line)을 눈앞에 두고 있는 북한의 핵 질주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이번에도 원유 봉쇄는 빠졌다. 북한이 핵 개발에 필요한 달러를 조달할 수 있는 제재 구멍(loophole)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까지의 행태로 미뤄볼 때 북한은 중국·러시아의 비호 속에서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호의를 악용하며 핵미사일 완성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북핵 막기 위해 한반도 전쟁 불사하겠다는 트럼프 #문 대통령, 김정은 핵개발 무산시킬 결의 다져야

새 제재 결의안 2371호가 종전보다 진일보한 것은 맞다. 북한을 감싸고 돌던 중·러가 이나마라도 움직인 것은 미국의 결의와 무관치 않다. 그 한 장면은 미국 공화당의 거물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뇌종양 투병을 하던 병실에서 걸어 나온 것이다. 왼쪽 눈썹 위에 혈전 제거 수술 자국이 선명한 채로 그는 오바마케어 폐지 논의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져 대안 없이 오바마케어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당당하게 무산시켰다.

매케인이 이것만 한 것이 아니다. 그는 대북제재의 도깨비 방망이로 불리는 북한·러시아·이란 제재 패키지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북핵을 용납할 수 없다는 매케인의 집념이 더해져 표결은 찬성 98, 반대 2의 압도적 결과로 나타났다.

북핵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결의는 대북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을 통해 소개됐다. “북한이 장거리 핵미사일을 개발하도록 내버려 두느니 북한과 전쟁을 하겠다”는 이른바 ‘전쟁 불사’ 발언이다. 그레이엄 의원은 트럼프가 “만일 전쟁이 있다면 그건 저쪽에서 있을 것이며 수천 명이 사망한다면 그건 저쪽에서 죽을 것이고 여기에서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에게 말했다고 전했다. 그레이엄의 전언에 등장하는 ‘저쪽’은 한반도이고 ‘여기’는 미국 본토다.

트럼프가 그레이엄에게 했다는 말은 철통 같은 동맹, 미국의 대통령에게서 나온 발언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섬뜩하다. 아무리 한·미 동맹의 상징이 ‘함께 갑시다(We go together)’라고 해도 역시 미국 대통령에겐 동맹보다 자기 나라, 자기 국민이 먼저였던 것이다. 그것은 상식이기도 하고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이기도 하다. 동시에 한반도의 전쟁을 극단적으로 우려하는 중국을 제대로 자극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반응은 한가하기 그지없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공식 라인을 통해 나온 이야기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북한에 대한) 군사옵션도 포함된다”는 발언에 대해선 또 뭐라고 할 것인가.

중국을 제재 쪽으로 돌아서게 만든 또 한 가지는 압박일 것이다. 미국 상·하원이 통과시킨 대북제재법에 따라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금융기관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은 언제든 가능해졌다. 여기에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 초강력 무역 제재를 가할 수 있는 ‘통상법 301조’ 발동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음을 내비쳤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에겐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의 팔을 비틀게 만들 카드가 있는가.

그러나 역사상의 많은 위기 사례는 현실적 수단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결의임을 말해준다. 병상에서 뛰쳐나와 대북제재에 표를 던진 매케인의 결의, 동맹국 국민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지언정 북의 핵미사일이 자기 나라 국민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트럼프의 결의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휴가 중 김정은의 핵 개발을 무산시킬 결의와 전략을 충분히 가다듬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해서 물어보고 따져보기를 바란다. 그레이엄 의원이 전한 당신의 전쟁 불사 발언이 사실이냐고. 그게 당신의 진심이냐고. 한국 국민은 당신의 발언에 놀라움과 실망감을 금하지 못한다고.

이상렬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