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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일하는 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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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임기 첫 여름 휴가를 떠나는 걸 두고 뒷말이 많다. 17일간이나 백악관을 비워서가 아니다. 트럼프의 말 뒤집기 때문이다. 백악관 낡은 냉난방 시스템 공사로 참모진도 21일까지 출근하지 않는다. 트럼프는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 휴가 때 2004년 펴낸 자신의 책 『억만장자처럼 생각하기』를 인용해 “휴가를 뭐 하러 가나. 일을 즐기지 못하면 직업을 잘못 택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번 휴가지를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으로 한 걸 두고서도 “휴가가 아니라 마케팅 공세”란 비판도 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이후 28번의 주말 중 13번이나 이곳과 플로리다·버지니아 소재 자기 소유 골프장만 찾아서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도 정적들에겐 비난받으면서도 긴 휴가를 보내는 걸 전통처럼 지켜왔다. 트럼프처럼 자기 고향 집이나 별장을 찾은 대통령도 많았다. 린든 존슨,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자기 목장에서 휴가를 길게 보냈다. 부시 대통령은 재임 8년 중 크로퍼드 목장에서 산악자전거를 타거나 멋대로 자란 덤불을 치우며 490일을 보낸 기록을 갖고 있다.

대통령 공식 별장을 사용하기는 ‘볕 좋은 남쪽’을 사랑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플로리다 최남단 키웨스트 해군 기지에서 193일을 지냈다. 그래서 이곳에 ‘리틀 백악관’이란 별칭까지 붙었다. 빌 클린턴과 오바마 대통령은 각각 173일, 93일 동안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 별장을 이용했다. 두 사람은 유명 관광지인 매사추세츠주 마사 와인 농장도 휴가지로 애용했다.

긴 휴가를 대신해 미국 대통령은 휴가 중에도 직무를 보는 경우도 많다. 트럼프 대통령도 현재 상황이 한가하게 자신의 골프클럽을 홍보하고 있을 여유 있는 처지가 아니다. ‘최대 압박’으로 제재 강도를 높인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은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넣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에 성공했다. 상원에선 공화당 의원 반란표로 자신의 공약인 ‘오바마케어(건강보험법) 폐기 법안’이 잇따라 부결됐다. 로버트 뮬러 러시아 내통의혹 특별검사는 칼끝을 장남 트럼프 주니어에 이어 대통령에게 겨눈다.

린지 월터스 백악관 대변인은 3일 “이번 휴가는 일하는 휴가(working vacation)”라며 “휴가지에서도 계속 집무를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8월 위기설로 한국이 어지러운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휴가 중에 ‘ICBM을 보유한 북한’에 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해 보면 어떨까 싶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캘리포니아 샌클레멘테 저택에 초청한 끝에 핵미사일감축협정 합의를 끌어냈다.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