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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박수치기, 웃기, 샌드위치 먹기, 팔꿈치 핥기 … 조롱·야유 넘친 지구촌 시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거리 민주주의
스티브 크로셔 지음
문혜림 옮김, 산지니

2011년 옛 벨라루스 소비에트 공화국은 루카첸코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내는 시민을 연행한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던 루카첸코에게 박수를 보낼 이유가 없다는 걸 영악한 지배세력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벨라루스 시민이 선택한 저항의 방식은 열렬한 박수갈채였다.

같은 해 중국 베이징에서는 수상한 행인이 대거 출몰했다. 중국 공안당국은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하며 번화가를 맴는 그들을 체포했다. 베이징 시민의 웃음 행보는 사실 반정부 시위였다. 중국의 재스민 혁명은 실없는 웃음에서 비롯됐다.

이 책은 1986∼2016년 전 세계에서 벌어졌던 시위현장 79건을 보여준다. 시위를 단순히 복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빛났던 조롱과 야유의 찰나를 포착한다. 88년 폴란드의 난쟁이 낙서 시위, 97년 홍콩의 우산 시위, 2014년 태국의 샌드위치 먹기 시위 등 작지만 유효했던 창의적 저항이 지금 봐도 흥미롭다. 지은이의 업이 그 현장을 돌아다니는 일이었다. 86년부터 독립언론 기자로 전 세계 변혁의 현장을 취재했고 현재는 국제앰네스티 사무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는 ‘버넘의 움직이는 숲’이 등장한다. 버넘 숲이 움직이지 않는 한 맥베스가 왕위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마녀들의 예언에서다. 그러나 숲은 움직인다. 반란군이 나뭇가지로 위장해 이동할 때 버넘 숲이 움직이는 것처럼 비친다. 세상은 이렇게 진화했다. 지난 연말의 촛불도 그러했다. 지은이는 빠뜨렸으나 역자가 말미에서 세상을 바꾼 촛불을 소개한다.

그래도 수단의 팔꿈치 시위는 못 따라 하겠다. 수단을 30년 동안 통치한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이 2012년 시위대를 향해 “팔꿈치를 핥으려는 짓(불가능한 일이라는 뜻)”이라고 하자 수천 명이 제 팔을 비틀어 팔꿈치를 핥는 사진을 온라인에 올린 적이 있었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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